'D.P.' 원작자 김보통 “가난이 특기였던 나···눈에 불을 켜고 쫓았다”

박주연 기자

넷플릭스 드라마 <D.P.> 원작자 김보통 작가

김보통 작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얼굴을 공개한 적이 없다. 김 작가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사생활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크다”면서 인형탈을 쓴 사진을 제공했다. /넷플릭스 제공

김보통 작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얼굴을 공개한 적이 없다. 김 작가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사생활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크다”면서 인형탈을 쓴 사진을 제공했다. /넷플릭스 제공

<D.P.> 원작자이자 한준희 감독과 함께 각본을 쓴 김보통 작가는 DP 출신이다. 예명을 쓰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그는 “‘내게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 이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지난 9월 8일 서면 인터뷰에서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방부의) 이제는 좋아졌다’는 말이 ‘그러니 이걸로 충분하다’로 귀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다음은 김 작가와 일문일답.

-당초 DP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 이유는.

“헌병(현 군사경찰)은 군대의 순경과 같은 존재임에도 내가 복무하던 부대에선 폭언과 가혹행위, 구타가 자행되던 곳이었다. DP조였던 나는 부대원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게 괴로우면서도 가담하지 않는 것으로 자위했다. 말년 병장이 됐을 때 ‘더 이상 가혹행위는 없도록 하자’고 말했다. 그때 제 바로 아래 후임이 ‘김 병장님은 맞지도 않았으면서 그런 소리 할 자격 없다’며 ‘내가 병장이 되고 나니 왜 때렸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 충격을 받았다.”

-<D.P.>에도 그런 장면이 나왔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것도 무서운 일이지만 나는 그제야 방관자도 가담한 것임을 깨달았다. <D.P.>는 폭력의 굴레가 이어지도록 방관한 나 자신에 대해 참회하는 이야기에 가깝다.”

-<D.P.>를 보고 군대에서 겪은 트라우마가 되살아났다는 30~40대 남성들이 적잖더라.

“제대 후 수십년이 지나도 입대하는 꿈을 꿔 밤잠을 설치는 분들이 많다. <D.P.>가 그 상처를 후벼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다음 세대는 그런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도록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볼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이 상처가 왜 생겼고, 누가 상처를 줬고, 어떻게 해야 같은 상처가 생기지 않을까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만화를 그리고, 각본을 쓰면서 특히 중점을 둔 점은 뭐였나.

“탈영병을 체포하는 장면에서 통쾌함이 느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탈영병을 잡는 DP조나, 잡힌 탈영병이나 둘 다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했다. 모두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징집된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들인데 절대적인 악이나 선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체포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도 그랬다. 탈영이라는 사건을 둘러싼 모든 사람이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다.”

-정해인, 구교환 두 배우의 상반된 케미가 돋보였다. 구교환 배우가 연기한 한호열은 원작에는 없는 인물이다.

“나의 DP 시절 이야기를 감독님께 많이 했다. 나는 안준호(정해인 분)처럼 윤리적 고민을 진지하게 하지는 않았다. 나의 DP 생활은 요절복통 모험활극에 가까웠다.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들은 감독님이 한호열 캐릭터를 제안하셨다. 그래서 구교환 배우의 출연작들을 봤고, 이후 내 머릿속에서 구교환 배우가 끊임없이 떠들기 시작했다. 나의 말을 그의 입을 빌려 한다는 심정으로 대사를 썼다.”

-신승호 배우가 연기한 황장수는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건가.

“내가 군복무하던 시절 부대원들을 지독하게도 괴롭혔던 몇몇 선임들을 합쳐놓은 인물이다. 김성균 배우가 연기한 박범구 상사도 군생활 당시 군탈담당관이었던 중사분을 모델로 했다. 탈영병만 잘 찾아오면 가타부타 다른 말이 없는 분이셨다. 과묵했지만 간혹 차를 타고 둘만 있을 때면 사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해 친근감도 느끼게 한 분이다.”

-DP 경험이 만화와 드라마에 얼마나 반영됐나.

“언어폭력 중엔 내가 직접 들었던 것들이 녹여져 있기도 하다. 만화를 연재할 당시엔 작중 등장하는 가혹행위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당시 언론에 보도된 가혹행위 사례를 검색해 참고했다. 드라마에 보여지는 가혹행위들은 각본 작업 도중 추가되거나 원작에 있던 내용의 일부를 가져온 것이 많다.”

-DP로 차출되려면 일반 병사와는 다른 특기가 있어야 한다는데.

“나는 가난이 특기였다. DP는 통상 선임인 조장이 제대하면 조원을 조장으로 승급시키며 하급자 중 부사수를 선발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조건이 고려되는데, 내 경우엔 선임 조장과 조원이 둘 다 체포실적이 적어 동시에 보직해임을 당했다. 당시 헌병대장이 부대원 중 가장 절박하게 탈영병을 쫓을 애를 뽑으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소득수준이 낮은 가정환경, 대학 재학, 권투 경험을 바탕으로 DP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게 왜 가장 절박하게 탈영병을 쫓을 이유가 되나.

“터무니없이 적은 활동비로 식비, 이동비, 숙박비 등을 써야 하는데다 당시 아버지가 암에 걸려 부모님이 하시던 가게도 망하는 바람에 정말 하루라도 빨리 탈영병을 찾지 않으면 끼니를 굶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눈에 불을 켜고 활동했다. 헌병대장 생각이 적중한 셈이다.”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뭔가.

“‘내게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이다. 덧붙이자면 ‘(국방부의) 이제는 좋아졌다’는 말이 ‘그러니 이걸로 충분하다’로 귀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류는 그렇게 진보해 왔으니까.”

-드라마가 공개된 후 사랑하는 사람을 군대에서 잃은 분들이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고 밝혔다.

“사랑하는 사람이 구타를 당해 사망하거나, 가혹행위를 당하다 자살하거나 의문사로 처리된 후 눈물로 세월을 보낸 분들이 연락을 해주신다. 그분들은 그 사건에 대해, 그 사람에 대해 말조차 못 꺼낸 채 살아오다 <D.P.>를 통해 이런 비극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음을 이야기해줘 감사하다고 말씀해주신다. 이것밖에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 죄송하면서도 내가 해야 할 이야기를 했구나 싶다.”

-2009년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2013년 퇴직했다. 트위터에 올린 낙서를 보고 웹툰 <송곳>으로 유명한 최규석 작가가 만화를 그려보라고 제안해 2013년 <아만자>로 정식 데뷔한 것으로 안다. 회사는 왜 그만뒀나.

“아버지부터가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셨지만 막상 대학에 갈 때는 가정형편상 야간대학 생물학과에 진학하셨다. 그때의 한 때문인지 ‘없는 집 자식이 꿈을 가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셨다. 어차피 그 꿈은 좌절될 것이니 차라리 안 바라면 자신과 같은 절망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신 거다. 평범하게 살기 위해선 좋은 회사에 다니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셨다. 그 뜻을 따랐고, 그게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신 후 회사에 더 있으면 죽을 것 같아 그만뒀다.”

-향후 계획은.

“딱히 계획은 없다. 되는 대로 산다. 사실 내가 만화가로 전직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냥 내 인생을 살고, 그 인생의 중간중간 회사원이었다가, 수필가(2017년 에세이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출간)였다가, 드라마 작가로 살 뿐이다. 아마 아버지가 안 돌아가셨으면 지금도 회사에 다니고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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