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다른 시각으로 고통 마주할 때 우리의 삶은 다시 쓰인다

이길보라

페미니즘과 과학과 운명학의 언어로 삶을 재구성한다

*이 글은 당사자의 동의하에 작성되었습니다.

홍칼리 <신령님이 보고 계셔 - 홍칼리 무당 일기>(위즈덤하우스, 2021) 표지 일러스트 김라온.

홍칼리 <신령님이 보고 계셔 - 홍칼리 무당 일기>(위즈덤하우스, 2021) 표지 일러스트 김라온.

유학 중 깊어진 파트너의 우울증, 남들 눈이 두려워 홀로 감내했지만
아픔의 원인을 사회 구조 문제라고 의심하는 순간 세상은 다르게 보여
수어로 말하고 눈으로 읽게 됐을 때, 불쌍한 장애인 딸이 아닌 코다가 된 것처럼

파트너는 우울증을 앓는다. 이 간명한 사실을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수군거릴 것 같았고 지금이라도 당장 헤어지라고 할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을 왜 만나느냐는 말을 들을까 두려웠고 어쩐지 숨겨야 할 것 같았다.

어려웠다. 특히 타지에서 생활할 때 더욱 그랬다. 네덜란드에서의 유학 생활을 시작할 때였다. 일본 국적의 파트너는 직장을 그만두고 외국 생활에 합류했다. 나는 석사 과정을 이수하고 그는 프리랜서로 일하기로 했다. 멋지게 살아보려 했으나 현실은 달랐다. 네덜란드 특유의 긴 겨울과 그치지 않는 비, 프리랜서로서의 경험 전무, 불안정한 생계, 예정보다 늦게 발급된 체류 비자, 네트워크와 커뮤니티의 부재,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라는 벽에 부딪혔다. 파트너의 우울은 깊어졌다. 어릴 때부터 우울증을 앓았지만 이렇게 깊게 자주 발현되지는 않았다. 해가 뜨면 괜찮을 거라고, 비자가 발급되면 나아질 거라고, 경제적으로 안정되거나 친구들이 생기면 회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증상은 더 깊어졌다.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우울증을 겪어본 경험도 없고 가족 중에 내력이 있는 사람도 없었다. 짜증과 한탄만 늘었다. 유학이라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시기에 파트너는 왜 이곳까지 와서 나를 괴롭히나 생각했다. 아침마다 유학생의 도시락을 챙겨주고 밤에는 과제를 도와주던 다정한 파트너는 우울이 올 때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잠했다. 그는 자신이 없는 것처럼 행동해달라고, 알아서 다스려볼 테니 제발 모른 척해달라고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말 상대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되고 싶었고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고도 싶었다. 가끔은 나도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더 괴로워 보였다. 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었다.

우울은 나에게까지 왔다. 유학 생활을 하며 독박 돌봄을 해야 하는 처지를 생각하다 슬퍼졌다. 왜 이런 선택을 했나 후회했다. 비 오는 날씨를 제법 좋아했지만 끔찍이 싫어하게 되었다. 파트너가 가슴을 후비는 말을 하면 이를 악물고 학교에 갔다. 잘 지냈냐고 묻는 동기들 앞에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울었다. 동기 중 하나는 내가 말할 수 있도록 어깨를 다독였다. 몇몇은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한 얼굴로 집에 놀러왔다. 고민 끝에 파트너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최근 이주하여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했다고, 그에게 나는 유일한 네트워크이자 가족이라는 사실을 공유했다. 동기들은 만날 때마다 잘 지냈는지, 파트너는 어떤지 필요한 게 있다면 말하라며 안부를 물었다. 그러다가도 잘 모르겠을 때는 한국에 전화를 걸었다. 우울증으로 오래 진료받고 있는 동료가 가족이나 친구가 이렇게 해주면 도움이 된다며 경험에 입각한 조언을 했다. 출장을 갈 때면 이웃에게 파트너를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급박한 상황이 벌어져 감당하기 어려울 때는 현지에서 의사로 일하는 친구에게 SOS를 요청했다.

새로운 돌봄 관계를 위한 상상력

그러던 중 파트너가 자해를 했다. 증상이 점점 심해졌지만 24시간 내내 그를 돌볼 수 없었다. 혹시라도 집을 비운 와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노심초사했다. 고민 끝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학교를 통해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상담사를 소개받았다. 그의 모국어인 일본어로 소통할 수 있는 의사도 찾아두었다. 그가 한 번 더 자해를 하자, 나는 일본에 있는 그의 부모에게 연락했다. 부모는 그의 우울증을 인지하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공통 언어가 없었지만 간단한 영어와 손짓, 발짓을 동원하여 소통했다. 파트너의 우울이 심해졌다고 전했다. 무언가를 해달라는 것은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지만 종종 안부를 물어달라고 부탁했다. 최악의 상황에는 시간을 내어 네덜란드로 와달라고 요청했다. 책임을 나누고 싶었다. 독박 돌봄의 구조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우울증은 개인이 혼자 짊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고 숨겨야 하는 것도 아니다. 부모는 그에게 자주 연락했고 친구들은 우울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고 그와 소통했다. 무심한 듯 다정한 관계망을 만들었다.

하미나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동아시아, 2021) 표지.

하미나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동아시아, 2021) 표지.

작가 하미나는 여성 우울증을 둘러싼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살피는 책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에서 독박 돌봄은 누구에게나 과중한 일이며 연인 사이 일대일의 돌봄이 문제가 된다고 지적한다. 우리에게는 “연인 혹은 부부와 같은 일대일 관계 이외의, 이전에는 없던 돌봄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위 책에는 우울증을 돌보며 살아가는 한 커플의 사례가 등장한다. 이들은 우울증을 극복했다거나 더 이상 힘들지 않다거나 이제는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여전히 고통스럽고 괴롭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 과정을 말하고 공유하고 인터뷰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20~30대 여성들은 대체 왜 우울한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한 이야기를 극복 서사로 만들지 않는다. 대신 사회를 향해 질문한다. 그동안 이 고통은 왜 주류 학문의 담론으로 다뤄지지 않았는지, 우울증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는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사회는 보다 적극적으로 돌봄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갈등과 미움, 질투와 억울함 등을 지우고 부정하기보다는 함께 머무르며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통에는 언어가 필요하다

파트너는 우울을 혼자 다스려왔다. 용기를 내어 의사와 상담을 해보았지만 잘 맞지 않아 정신과에 대한 거부감만 더해졌다. 의료비가 비싼 미국에서 오래 거주한 것도 진입 장벽을 높였다. 여러 차례 상담을 통해 자신과 맞는 의사를 찾아야 했는데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우울증이 자주 찾아왔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그는 정신분석학을 공부했다. 직접 얻은 지식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바라봤다. 그렇게 스스로를 돌봤다. 그러나 안정적이지 않은 경제 사정과 거친 날씨, 유학 중인 여성 파트너를 남성인 자신이 전폭 지원하고 도와주지 못한다는 부담감이 겹쳐 트리거(Trigger, 불안·공황·우울증과 같은 극도의 감정적 혹은 정신적인 증상을 야기할 수 있는 외부의 사건이나 상황)가 되었다.

고민 끝에 환경을 바꾸기로 했다.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때에는 이렇게 트리거가 자주 눌리지는 않았다. 그가 경제 활동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고 가족과 친구라는 관계망이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네덜란드를 떠나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는 다시 직장을 구한 후 바쁘게 지냈다. 통장에 잔액이 쌓여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종종 가족과 친구를 만나자 증세가 호전되었다. 그러나 우울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진료를 받아보자고 권유했다. 이제는 모국어로 소통할 수 있고 당신과 맞는 의사를 찾아볼 수 있지 않냐며 그를 설득했다. 자신의 우울증이 정확히 어떤 병명인지,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 어느 종류의 치료가 좋을지 상담하던 날, 그는 중요한 것을 깨달은 표정이었다. 비로소 자신의 고통을 분석할 수 있었다. 고통에 언어가 생겼다.

하미나는 우울증 진단 자체가 당사자에게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고통을 설명해주고, 나의 지난 기억을 재해석할 수 있는 자원이 되어주고, 이를 통해 나 자신을 새롭게 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우울증을 앓는 여성 당사자뿐 아니라 전통적인 성역할로 고통받는 이들에게도 언어를 부여한다. 동시에 당사자와 함께 돌봄의 시간을 통과하는 이들에게도 경험을 재구성하는 도구가 된다.

관습을 의심하고 흔들며 새로운 언어로 삶을 재구성한다

홍칼리 <신령님이 보고 계셔 - 홍칼리 무당 일기>(위즈덤하우스, 2021) 표지.

홍칼리 <신령님이 보고 계셔 - 홍칼리 무당 일기>(위즈덤하우스, 2021) 표지.

이는 무당의 이야기와도 만난다. 우울증을 페미니즘과 과학의 언어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무슨 비과학적인 무당 이야기냐고 하겠지만 이는 삶을 재구성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다는 면에서 정확하게 운명학과 만난다. 퀴어 페미니스트 비건 지향 전업 무당인 홍칼리는 “내가 힘들었던 이유가 내가 잘못해서,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신의 뜻이자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게 되면 내가 겪은 고통을 다르게 해석하고 재구성할 수 있다”고 쓴다. 고통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순간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는 책 <신령님이 보고 계셔>에서 운명학으로 고정된 언어를 해체하고 세상을 다르게 해석한다. 관습을 의심하고 흔들며 새로운 언어로 삶을 재구성한다.

페미니즘, 과학, 운명학을 통해 당사자는 고통에 이름을 붙이고 삶을 재구성하고 비로소 자긍심을 갖는다.

돌아보면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코다로서 내가 했던 경험도 마찬가지였다.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 의문을 품고 차별에 질문하고 저항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필요했다. 세상을 읽어내고 나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았을 때 나는 불쌍한 장애인의 딸이 아닌 코다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부모의 농(Deafness)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들리지 않는 게 뭐 어때서, 말 못하는 게 뭐 어때서, 대신 우리는 수어로 말해, 눈으로 세상을 읽어. 그러나 파트너의 우울증에 대해서는 함구해왔다. 그의 우울은 부끄럽고 숨겨야 하는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그의 남성성을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부모는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건강하다. 우울증을 앓는 나의 파트너도 건강하다. 장애와 질병은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만들어진다. 어떤 고통은 사회적인 담론이 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 누가 그것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당신과 나의 고통은 보다 적극적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여기서부터 다시 쓴다.

■이길보라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10) 다른 시각으로 고통 마주할 때 우리의 삶은 다시 쓰인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이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 자질이라고 믿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든다. 저서로는 <길은 학교다> <로드스쿨러>(공저) <반짝이는 박수 소리> <우리는 코다입니다>(공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가 있고, 연출한 영화로는 <로드스쿨러>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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