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게 여기(전북 완주)에 다 있을 줄 알았는데, (귀촌해서 살아보니) 여기에 조금, 저기에 조금 흩어져 있는 거예요. 당장 내게 가장 필요한 것들을 찾아가며 선택하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어요. 무조건적인 지지가 필요한 날에는 인근 전주에 있는 비혼 여성 공동체를 찾아가기도 해요. 굳이 생활터전을 귀촌한 지역으로 한정지을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이곳에 와서도 조금 더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지역을 찾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외로움과 공허함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완벽한 곳은 세상에 없는 게 아닐까 생각도 들어요.”
서울 살던 비혼 여성 이보현씨(42)는 2015년 완주 봉동읍으로 귀촌했다. 완주와 인근 전주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올해부터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글을 쓰며 산다. 몇년 전에는 다른 지역 농촌 여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친구와 함께 ‘귀촌녀의 세계란’이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했다. 완주는 물론, 구례·순창·홍성·봉화·제주 등지의 귀촌·귀농 여성들을 전화로 연결하거나 직접 찾아가서 사는 이야기 듣고 이를 팟캐스트 방송으로 내보냈다. 농촌 여성들을 상대로 기본적인 용접, 목공, 전기 기술 등을 가르쳐주는 ‘여성들을 위한 일상 기술 캠프’ 등을 기획하고, <안 부르고 혼자 고침>이라는 생활기술 실용서를 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지난 7년 간의 귀촌 생활을 돌아보는 <귀촌하는 법: 도시에 없는 여유와 나다움을 찾아서>(유유출판사)라는 책을 새로 펴냈다.
이씨는 “나 답지 않게 만드는 환경을 피할 수 있는 쪽으로, 내가 원하는 곳으로 조금씩 방향을 틀었더니 지금 여기”라고 했다. 책에도 “막연하게 귀촌하면 떠오르는 텃밭농사, 식량자립, 마을 생활, 경제 안정, 삶의 여유, 자아 실현은 거의 이루지 못했다. 사실을 직시해야 했다. 사는 지역을 바꾼다고 사람이 저절로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차갑지만 엄연할 진실.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나는 나일 뿐이다”라고 썼다. 대신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카페 일을 하고,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자격증도 땄다. 젠더폭력 예방교육 강사도 됐다. 친구들과 함께 온라인 쇼핑몰도 운영한다. “다행히 월 150만 원씩은 들어오고 있어요. 많이 쓰지 않아서 그 정도만 벌어도 안심이거든요. 연말까지는 이런 저런 일로 계속 그렇게 들어올 것 같은데, 내년 벌이가 없어서 고민이긴 해요.”
귀촌을 했다고 해서 자신이 귀촌 전 고민했던 것들이 모두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다시 서울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삶이 불안하고 위태롭다고 느끼지만 사람들로 빽빽한 거리와 하늘을 가린 높은 빌딩 대신 저 머리 산까지 보이는 밭 풍경을 매일 보고 만경강을 보며 걸을 수 있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고 했다.
하지만 시골에서 비혼 여성으로 사는 삶이 녹록지는 않다. 농촌 마을의 끈적한 관계가 부담돼 면단위 주택이 아닌, 읍내 아파트에 살지만,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남편은 어디 있냐”고 묻고, 어떤 이들은 짝을 지어주려고도 한다. ‘원래 시골은 그렇다’며 혐오와 차별 문제가 대수롭지 않게 다뤄지기도 하고, 성희롱 등 성폭력을 겪기도 한다. “어느 날 현관문 도어락이 올라가 있는 거예요. 동네 남성 지인들이 ‘아래층 사람이 술 취해서 실수로 그럴 수도 있지’ 또는 ‘동네 꼬마들이 장난으로 그런 걸 거다’ 라는 얘기를 하길래 ‘당신들 그런 말 하면 안된다. 그런 태도가 위험 신호를 보내는 나를 더 주눅들게 할 수 있다’고 한참을 얘기했어요.” 책 서문에도 “귀촌의 환상을 깨고 실상을 알려 주겠다고 쓴 책은 아니지만 남들이 덜 하는 슬픈 이야기를 많이 했다”면서 “내가 선택하고 유지하고 있는 나의 생활에 대해 진심으로 썼다. 헷갈리는 마음도 진심”이라고 적었다.
비청년 비혼 가구로서의 자신의 존재가 지워진 것 같은 경험도 한다. “청년(만 39세 이하)을 우대하는 정책 때문에 업체들이 40세 직원을 내보내고 39세 이하인 사람들을 지원금 받아 채용하는 경우도 있어요. 비청년 비혼 1인 가구 여성의 선택지는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세대, 은퇴한 중장년, 청년 세대보다 훨씬 적고 거의 눈에 보이지 않아요. 저는 우리 고양이 봐줄 사람도 너무 필요하고, 제가 갑자기 쓰러졌을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필요한데... 농촌의 1인 가구를 어떻게 정책적으로 보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나의 귀촌은 귀촌이 아닌가요?”라고 되물었다.
그는 귀촌 생활을 함께 할 동료들을 찾으러 다닌다. 팟캐스트를 하며 귀촌 여성들을 만났던 것도,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살며 서로를 응원해 줄 친구들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의 다음 책 주제도 지역에서 협력하며 사는 여성 공동체에 대한 내용이란다. 최근에는 전북 남원의 ‘협동조합 마고’ 등을 찾아 여성들을 인터뷰했다고 했다. 7년 전 완주에 와서 시작된 “부드럽지만 촘촘하고 느슨하지만 절대 끊어지는 않을 연결”을 찾는 일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귀촌할까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그는 어떤 말을 들려줄까. “귀촌을 꿈꾸지만 여전히 서울에 남아 있는 것도, 서울을 떠나 귀촌해 사는 것도, 모두 지금 자신의 상황에서 할만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서울 생활도 만만치는 않지만 할만하니까 있는 것이고, 시골로 가서 사는 것도 만만치는 않지만 할만하니까 선택한 거거든요. 하고 싶은대로 하세요. 그게 무엇이든 만만치는 않지만 당신이 감당할만할 겁니다.”
▼
글 이재덕 기자 duk@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