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클리프 아펠·샤넬 등 발레와 컬래버… 발레 ‘고급’ 이미지 통한 홍보 효과 기대
발레와 명품, 어쩌다 사랑에 빠졌을까.
국립발레단은 10월 20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신작 <주얼스>(JEWELS)를 선보인다.
<주얼스>는 신고전주의 발레의 창시자 조지 발란신(1904~1983)이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의 보석에서 영감을 받아 1967년 창작해 뉴욕에서 첫선을 보인 작품이다. 전체 3막으로 이뤄져 있으며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 세가지 보석을 각기 다른 음악과 의상, 움직임을 통해 표현한다. 특별한 스토리 라인이 없이 음악과 어우러진 무용수들의 동작을 통해 표현되는 작품으로, 최초의 전막 네오클래식 발레로 평가받고 있다.
1막 ‘에메랄드’에서는 가브리엘 포레의 곡을 발췌해 프랑스 낭만주의 발레를 오마주했다. 2막 ‘루비’에서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곡과 함께 현대적인 재즈풍의 발레를 표현했다. 3막 ‘다이아몬드’에서는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곡으로 러시아 고전주의 발레를 보여준다. 국립발레단 간판 무용수들이 총출동한다.
전 세계 어디서든 <주얼스> 공연이 있을 때마다 후원을 해온 반클리프 아펠은 상위 0.1%를 타깃으로 하는 프랑스의 하이 주얼리 브랜드다. 1895년 보석공 아들인 알프레드 반클리프와 보석 딜러의 딸 에스텔 아펠이 결혼하면서 1906년 탄생했다. 두 가문의 성을 합쳐 반클리프 아펠의 이름이 나왔다. 1950년대부터 이란(페르시아)의 소라야 에스판디아리 바크티아리 왕비 등 전 세계 왕실과 톱스타들의 주얼리를 주문제작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965년 모나코 왕 레니에 3세가 할리우드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와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주얼리를 주문하자 반클리프 아펠은 세 줄의 진주 목걸이를 다이아몬드 클립으로 고정한 목걸이 세트를 완성했다. 1966년에는 이란 팔레비 왕조의 의뢰를 받아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루비 등 보석 1541개로 장식된 황제의 왕관을 만들기도 했다.
반클리프 아펠의 첫 발레리나 클립은 1940년대 초 제작됐다. 그리고 이는 곧 반클리프 아펠의 시그니처 디자인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발레리나의 춤동작을 포착해 1941년 제작한 스페니시 댄서 클립은 가장 상징적인 발레리나 클립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조각된 댄서는 다이아몬드 얼굴에 루비와 에메랄드로 만든 머리장식을 하고 루비와 에메랄드의 부채를 들고 있다. 주름진 드레스는 다이아몬드와 루비, 에메랄드로 빛난다. 이외에도 많은 반클리프 아펠의 주얼리가 발레를 모티브로 완성됐다.
■발레와 만난 명품, 후원은 기본
당초 이달 예정됐다가 코로나19로 인해 오는 2023년으로 내한공연이 미뤄진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의 <모댄스>
(MoDanse)는 의상과 향수로 유명한 ‘샤넬’과 컬래버를 이룬 작품이다. 발레 자체가 코코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1883~1971)의 일대기를 다루고, 샤넬 크리에이트브 디렉터가 무대 의상 디자인에 참여했다. 무용수들은 샤넬 패션하우스에서 제작한 80여벌의 무대의상을 입고 춤을 춰 패션쇼를 방불케 한다. 2019년 6월 볼쇼이극장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당연히 샤넬이 후원한다.
코코 샤넬의 삶과 업적을 위한 첫 발레를 무대에 올린 이는 현존하는 최고의 프리마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42)다. 그는 무용계 아카데미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두 번이나 수상했으며, 세계 최정상 발레단인 러시아 볼쇼이발레단과 이탈리아 라 스칼라발레단에서 동시에 수석무용수를 맡고 있다. 내한공연에서도 자하로바가 볼쇼이발레단 수석무용수 25명과 함께 공연을 펼치기로 예정돼 있었다.
자하로바는 2019년 ‘보그 이탈리아’와 인터뷰에서 “수년 전 제 프로듀서와 저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 생각했고, 오랫동안 안무가와 감독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발레를 위한 주제를 찾고 있었다”며 “어느 순간 코코 샤넬과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사이의 사랑이야기가 제게 제안됐고, 그 주제는 매우 흥미로워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코코 샤넬의 회고록을 읽고, 영화를 보고, 코코가 살던 파리의 아파트를 방문했다. 자하로바는 “코코는 강한 성격과 힘, 근성을 가진 동시에 연약함을 지니고 있으며 예술성을 끊임없이 추구했지만 결국 혼자 남겨졌다”며 “바로 그 이미지가 발레에서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댄스>에 대해 “사랑과 일, 예술, 승리와 외로움에 대한 발레”라고 소개했다.
<모댄스>는 총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패션의 대명사 코코 샤넬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가브리엘 샤넬’, 2부는 자하로바를 비롯한 무용수들이 관능적인 무대의상을 입고 헨델의 절제된 바로크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숨결처럼’이다. 1부에서 자하로바는 가브리엘 샤넬이 돼 춤을 춘다. 그는 샤넬처럼 화장을 하고 머리를 손질하고 옷을 입는다. 안무는 1막은 유리 포호프, 음악은 일리아 데무츠키가, 2막의 안무는 마우로 비콘체니가 맡았다.
코코 샤넬은 유년시절을 보육원에서 보내며 배운 바느질을 토대로 20세기 여성 패션에 커다란 혁신을 불러일으키면서 패션 제국 ‘샤넬’을 이룩했다. 간단하고 입기 편하며 활동적이고 여성미가 넘치는 샤넬 스타일은 코르셋 등 몸을 억압하는 속옷이나 장식성이 많은 옷으로부터 귀족사회 여성들을 해방시켰다. 코코 샤넬은 영국인 폴로 선수 아서 카펠, 영국의 대부호 웨스트민스터 공작, 러시아 출신의 미국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등 여러 남성과 사랑에 빠졌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에는 독일군 장교와 사랑에 빠져 나치의 스파이로 활동했다. 그로 인해 프랑스인들에게 배신자로 지목됐고, 88세에 사망한 후 유해가 고국에 묻히지 못하고 망명생활을 했던 스위스의 로잔에 매장됐다.
■명품 브랜드 광고·홍보에 최적
명품과 발레의 컬래버는 공연 바깥에서도 자주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명품 브랜드가 자사 광고모델로 발레리나·발레리노를 기용하는 것이다. 세계적 발레단인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인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은 이탈리아 패션 명품 브랜드 살바토레 페라가모와 프랑스 명품 화장품 랑콤뿐만 아니라 르노삼성자동차 SM5, 롯데백화점 등의 모델로 활약했다. 세계 3대 발레단으로 꼽히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수석무용수 서희도 롯데백화점 광고모델로 출연했다. 이들 외에도 세계 최정상의 발레리나·발레리노는 명품 브랜드나 고급 이미지를 추구하는 광고주들에게 매력적 모델로 꼽힌다.
그 이유에 대해 장광열 무용평론가는 “발레가 고급예술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발레는 태생 자체가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의 궁정 연회에서 유래했다. 피렌체공화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금융가문인 메디치의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1533년 프랑스의 앙리 2세의 왕비가 되어 프랑스 궁정에 조국 이탈리아의 궁정발레를 소개하면서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이후 1581년 파리의 앙리 3세의 궁정에서 상연된 <왕비의 발레 코미크>가 기록상으로는 발레의 시초다. 장광열 평론가는 “귀족들의 예술이었던 발레는 기본 훈련법이 전 세계적으로 통일돼 있는데다 굉장히 정확하면서도 정교한 고난도 기교를 연마해야 한다”며 “대를 이어 전해진 오랜 역사의 세계적 명품의 경우도 우수한 소재와 디자인은 물론, 바느질 한땀 한땀에 장인정신이 배어 있어 발레의 고급 이미지와 잘 어우러진다”고 했다.
1967년 창작됐고, 세계 주요 발레단이 공연해온 <주얼스>가 이제야 국립발레단의 레퍼토리로 한국에 상륙한 것과 관련해 장인주 문화평론가는 경제·문화 수준을 지적했다. 그는 “지난 8월과 9월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전시된 ‘불가리 컬러전’이 코로나19 와중에도 문전성시를 이루지 않았느냐”며 “우리나라 대중이 보석에 관심을 가질 만큼 경제·문화 수준이 높아졌다는 방증이고,
<주얼스> 공연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김현아 국립발레단 홍보팀장은 “<주얼스> 같은 네오클래식 발레를 펼치려면 무용수들이 클래식 발레, 모던 발레 등 다양한 스타일의 발레를 소화할 능력이 갖춰져야 하고, 관객들도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을 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국립발레단은 저작권을 가진 ‘조지 발란신 트러스트’에 지난해 처음 공연을 의뢰해 공연권을 허가받았다”고 말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10월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지젤>(Giselle)을 올린다.
<지젤>은 귀족 신분의 남자와 평범한 시골처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배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숭고한 사랑을 담은 작품이다. 요정 등 신비로운 존재와 영적 세계와 현실의 비극적 사랑을 주로 다룬 낭만발레의 정점에서 탄생했다.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테오필 고티에가 하인리히 하이네의 <독일, 겨울이야기>에서 ‘윌리’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후 영감을 받아 집필한 작품으로 장 코랄리와 쥘 페로의 안무와 아돌프 아당의 음악으로 1841년 6월 프랑스 파리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됐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지젤>은 세계 무대에서 일찍이 예술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1985년 초연 후 한국 발레단 최초로 1999년 스페인, 이탈리아, 헝가리에 이어 이듬해에는 그리스, 독일, 스위스, 영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투어 공연을 펼쳤다. 푸른 달빛 아래 순백의 면사포와 로맨틱 튜튜를 입은 윌리들이 공기 속을 부유하듯 시시각각 대열을 맞추며 정교하게 추는 춤은 백색 발레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1막은 순수하고 발랄한 시골처녀 지젤이 알브레히트의 배신에 오열하며 광란과 죽음으로 치닫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2막은 죽어서 영혼 윌리가 돼서도 연인을 지키려는 지젤의 숭고한 사랑을 그린다.
지젤은 손유희·한상이·홍향기가, 알브레히트는 이현준·콘스탄틴 노보셀로프·이동탁이 연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