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 이미지 버리고 우리 곁의 20대 태일이를 그리고 싶었다”

윤호우 논설위원

애니메이션 ‘태일이’ 홍준표 감독

1970년 평화시장, 부당한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해 뜨겁게 싸웠던 청년 ‘전태일’의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태일이>를 제작한 홍준표 감독이 10일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홍 감독은 “전태일은 힘들지 않게 일하는 세상을 꿈꾸며 변화를 희망했다. 이 시대의 태일이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br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1970년 평화시장, 부당한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해 뜨겁게 싸웠던 청년 ‘전태일’의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태일이>를 제작한 홍준표 감독이 10일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홍 감독은 “전태일은 힘들지 않게 일하는 세상을 꿈꾸며 변화를 희망했다. 이 시대의 태일이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1985년생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연출작으로는 단편 <카뷰레타>(2009), 단편 <바람을 가르는>(2012), 단편 <맵: 프롤로그>(2013), 단편 웹 애니메이션 <요일마다>(2017) 등이 있다. <바람을 가르는>은 제9회 인디애니페스트에서 새벽비행상을 수상했다.개성 있고 창의적인 아티스트로 구성된 ‘스튜디오 루머’를 2013년 설립한 이래 줄곧 애니메이션 작업을 해오고 있다. <태일이>는 홍 감독의 첫 장편이다.

전태일이 스스로 몸을 불사르며 외쳤듯
지금 여기의 ‘2030 태일이’는 아직도
근로기준법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꿔

전태일 열사는 한국 사회에서 잊혀진 적이 없다. 하지만 51년 전 전태일이 스스로 몸을 불사르며 외쳤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요구는 지금도 실현되지 않았다. 직종만 달라졌을 뿐 전태일은 도처에 있다. 다음달 개봉을 앞둔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 <태일이>가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첫선을 보였다. 이 영화를 만든 홍준표 감독은 1985년생이다. 그런 홍 감독이 과연 1960년대 말 평화시장의 전태일을 어떻게 그려냈을까. 부산영화제에 참석하고 돌아온 홍 감독을 지난 10일 만났다. 홍 감독은 “일단 전태일 열사라는 단어를 버리는 데 초점을 뒀다”며 수없이 많은 수정작업 끝에 “우리 주변에 있는 20대, 30대 태일이를 생각하도록 형상화했다”고 말했다. 실제 인터뷰 도중 홍 감독은 ‘전태일 열사’보다 ‘태일이’란 호칭을 더 많이 사용했다. 그는 “지금은 태일이 때와 달라졌다고 하지만 진짜 달라졌느냐고 물을 수 있다”면서 “이것이 다시 전태일을 이야기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 시대의 20대 태일이, 30대 태일이도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바란다”는 홍 감독과 마주했다.

-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태일이>를 2회 상영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코로나 방역 때문에 70석이 만석이었는데 다 찼다. 영화가 끝나고 많은 분이 자리에 남았다. 관객과의 대화(GV) 때 관람객의 눈과 한 분씩 마주쳤다. 영화를 잘 봤다는 눈빛이었다.”

- 상영 후 객석에서 나온 질문은.

“전태일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 데다 소재 자체가 무거워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무겁지 않게 봤다는 이야기였다. 어떤 분은 배우들에게 애니메이션이라면 성우 더빙을 생각했는데 목소리 연기가 생동감이 있었다고 했다. 한 편의 만화영화가 아니라 연기파 배우들의 걸작 영화를 본 것 같다고 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잠깐 비는 시간이 있어 왔다는 분인데, <태일이>라는 애니메이션이라고 하기에 <완득이>처럼 재미난 것으로 알았다고 한다. 편하게 보다가 상상치 못한 이야기가 펼쳐질 줄 몰랐다고 했다. 그래서 더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 말하고자 하는 것과 관객들 반응이 일치했나.

“생각했던 것이 상당 부분 적중했다. 일단 ‘전태일 열사’라는 상징적인 단어를 버리는 데 초점을 뒀다. 그래서 제목도 <태일이>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젊은 태일이가 되는 것이다. 바로 옆 친구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다. 상영 후 관객들이 이야기가 아련하게 다가왔다면서 전태일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다는 말을 했다. 주변에 있는 20대, 30대 태일이에 대해 생각하게끔 하는 영화라는 이야기였다.”

- 지난해 11월13일이 전태일 열사 50주기였다.

“그때 맞춰 개봉하려 했는데, 코로나19 등으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좀 더 탄탄하게 만들자고 해서 개봉을 1년 늦췄다.”

- 전태일에 관한 작품이라면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을 많이 생각할 것이다. 영화의 모티브는 고 조영래 변호사의 책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1983)이다. 애니메이션은 영화와 어떻게 다른가.

“영화를 보면 조영래 변호사(극중 이름 김영수)가 이후 세대에게 전태일 열사의 삶을 전해주는 이야기로 구성했다. 같은 맥락이다. 50년이 흘렀지만 지금 젊은이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방식은 다르다. 좀 더 전태일을 옆에서 지켜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열사 이미지 버리고 우리 곁의 20대 태일이를 그리고 싶었다”
영화 <태일이>의 한 장면. 명필름 제공

영화 <태일이>의 한 장면. 명필름 제공

- 그동안 전태일 열사에 대한 영화와 만화, 연극, 음악극, 다큐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콘텐츠가 있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만의 장점을 살리려 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이야기되지 않았던 것도 표현할 수 있다. 인물에 대한 만화적인 연출이 가능하다. 움직임이나 공간이 영화보다 더 사실적으로 보이게 하는 강점도 있다. 애니메이션은 분위기와 빛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낸다. 공장이라는 공간은 대개 차갑고 괴롭게 보이지만 어떨 때는 행복하고 따뜻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처음 기획할 때부터 이런 부분을 의도했다. 공장 안에 가득 차 떠다니는 실 먼지가 있다. 똑같이 표현하고 있지만 어떨 때는 숨막히게 보이고, 어떨 때는 아름다운 반짝이가 떠다니는 느낌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 1948년생 전태일 열사는 홍 감독이나 오늘날 젊은이들과 세대가 많이 다른데.

“한 세대 정도 차이가 난다. 아버지 연배다. 그래서 요즘 젊은 세대에 맞게 친근한 느낌의 태일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 지금 젊은이들은 1960∼1970년대의 시대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 간극을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보았나.

“물론 그 당시와 지금 상황은 다르다.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 젊은 세대가 느끼는 감정은 태일이의 감정과 비슷하다. 궁지에 몰리고 그것을 뚫어낼 방법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극중 캐릭터도 지금의 인물처럼 그려져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런 간극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을 것이다. ‘아, 맞아. 지금도 그렇고 옛날에도 그랬구나’라고 이해할 것이다.”

그때와는 뭔가 달라졌다고 말들 하지만
지금 진짜로 달라졌느냐는 의문이 들고
플랫폼 시대의 더 막막한 노동 환경에
51년 전 그의 삶과 죽음을 이 땅에 소환

- 21세기의 전태일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전태일은 재단사로 일하면서 여공들의 작업환경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힘들지 않게 일하는 세상을 꿈꾸고, 변화를 희망했다. 지금의 태일이도 그럴 것이다. 전태일과 마찬가지로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바란다. 20대 태일이, 30대 태일이 할 것 없이 상식만 지켜지면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이 된다. ‘정도는 지키자’ ‘서로 상생하자’는 그런 마음이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되길 희망한다.”

- 산업재해로 많은 젊은이들이 작업 현장에서 다치고 죽고 있다. ‘제2의 김용균’으로 표현되는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전태일도 많이 외치며 세상을 바꾸려 했지만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특히 사회 초년생에게는 힘이 없다. 윗세대가 하라고 하면 해야 한다. 전태일이 살던 시대처럼 ‘이런 것이 아니다’라고 외쳐도 상황은 똑같다.”

- 지금은 새로운 플랫폼 노동 시대가 도래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공장에서 해고당했다. 그런데 지금 플랫폼 노동을 하는 젊은이들은 그 공장이라는 공간조차 없다. 노동 조건이 잘못되어도 어디에 호소해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더 막막하고 억울한 세상이 됐다. 반면 플랫폼 기업의 덩치는 더 커졌다. 이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노동 조건을) 따질 수 있는 사장이 있어 더 부럽다고 역설적으로 말할 수도 있다. 자기가 더 힘든 환경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때도 이랬는데, 지금은 뭔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진짜로 달라졌냐고 물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지금도 전태일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된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열사 이미지 버리고 우리 곁의 20대 태일이를 그리고 싶었다”

- 전태일을 형상화하는 데 무엇이 가장 어려웠나.

“처음에는 실물에 근접하게 캐리커처식으로 그렸다. 왜냐하면 전태일이라는 모습을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캐릭터 디자인이 계속 바뀌었다. 캐리커처로는 보여주려고 하는 이야기가 잘 안 나왔다. 표정 연기를 잘할 수 있는 얼굴로 보정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전태일과 닮은 이미지를 버리고 다듬는 과정에서 주인공을 영웅처럼 개성화시키지 않고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인물로 바꾸었다.”

- 목소리 배우로 장동윤(전태일), 염혜란(이소선), 진선규(아버지), 박철민(재단사 신씨), 권해효(한미사 사장)가 출연했다. 무엇에 초점을 두고 배우를 선정했나.

“태일이는 비슷한 나이 대의 인물을 찾았다. 장동윤 배우는 연예인으로 발탁되는 과정이 드라마틱했고 평소 행실도 착해 태일이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또 전태일처럼 대구 출신이었다. 녹음을 마치고 영화를 보는데 장동윤이 바로 태일이였다.”

- 진선규 배우와 박철민 배우는 전태일과 간접적인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진선규 배우는 음악극 <전태일>에서 전태일 역을 한 바 있다. 어떤 역할이든 맡겠다고 했다. 박철민 배우는 영화에서도 재단사 신씨 역을 맡았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같은 역할이다. 어머니 이소선 여사역이 중요했다. 염혜란 배우가 흔쾌히 응해주었다. 연기가 뛰어나서 대부분 첫 테이크에 끝났다. 태일이랑 어머니랑 부둥켜안고 우는 장면이 있는데, 두 사람의 연기 케미가 굉장했다.”

홍 감독에게 전태일 열사의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묻고 싶었다. 제작사 측은 개봉 전에 공개되는 인터뷰라서 가장 극적인 장면을 이야기할 수 없음을 양해해달라고 했다.

- 배경이 1960년대와 1970년대라서 공간 표현이 힘들었을 것 같다.

“청계천 박물관과 전태일기념관, 인천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같은 곳을 답사했다. 그리고 평화시장에 직접 갔다. 상징적인 장소인 국민은행 앞 광장까지 걸어가면서 그림을 구상했다. 재봉틀에서 실을 어떻게 꿰고 노루발을 어떻게 들어올리는지를 알기 위해 중고 미싱기를 하나 사가지고 뜯어보고 이미지를 완성했다.”

- 배역자의 목소리 연기를 하고 난 뒤 작화에 들어갔다고 들었다. 보통 그렇게 작업하나.

“국내 애니메이션 작업에서는 후녹음을 많이 선택한다. 시간이나 비용 측면에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녹음을 했다. 배우들이 편하게 연기하도록 하고 대사를 하는 호흡에 그림을 맞췄다. 사실적인 연기와 감정 전달이 꼭 필요했다.”

- 애니메이션 감독이 된 계기는.

“만화를 좋아했다. 모두가 낙서를 하지만 누구보다 낙서를 잘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전공 대학에 들어갔다. 대구에서 스무 살 때 상경했다.”

- 대구에 살다가 상경한 것이 전태일과 비슷하다.

“할머니·할아버지집이 중구 남산동에 있는데 자주 갔다. 이 작품을 만들면서 뒤늦게 알게 됐는데, 대구에 있는 전태일 생가가 할머니·할아버지집에서 걸어서 얼마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많이 놀랐다.”

- 스튜디오 대표이다. 전태일의 메모를 보면 자신이 만들고 싶은 작업장이 나온다.

“학교를 졸업하고 스튜디오 루머를 만들어 혼자 운영하다가 <태일이> 제작을 하며 아티스트들과 함께하고 있다. 스튜디오에서 전태일이 만들고 싶어 했던 ‘태일피복’ 공장을 생각했다. 전태일이 어떤 심정으로 많은 분을 지키고 싶어 했는지 알게 됐다. 그래서 근로기준법을 지키면서 이 작품을 만들었다. 그 법을 지키려면 일하는 분들이 먼저 퇴근하고 내가 남아 있어야 했다.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이 영화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제작비·상영관 확보 ‘빨간불’…후원으로 ‘파란불’ 켜주세요

영화 <태일이>는 2011년 명필름의 첫 애니메이션 작품 <마당을 나온 암탉>이 220만 관객 동원으로 성공하면서 차기 작품으로 구상됐다. 최호철 작가의 만화 <태일이>를 본 명필름이 바로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명필름과 전태일재단이 공동제작 협약을 체결했고, 2018년 제작발표회를 가졌다. 2019년 1월 카카오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카카오같이가치’ 크라우드 펀딩에서 목표 후원 금액(1억원)보다 많이 모았다. 그러나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제작 여건이 악화됐다. 힘을 보태기 위해 영화 <블랙머니>를 제작한 ‘질라라비’가 공동제작에 참여했다. 양기환 질라라비 대표는 “론스타 먹튀 사건을 다룬 <블랙머니> 상영 때 노동계를 통한 사회적 투자자를 모집하고 노동·시민사회의 단체 관람을 이끌어낸 경험이 있다. 그 노하우로 영화 <태일이>를 살리려 제작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앞두고 명진 스님과 송경동 시인,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등 166명의 사회 각계 대표가 ‘1970인 제작위원’을 제안했다. 전태일이 산화한 1970년을 제작위원 인원으로 상징화한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태일이>의 러닝타임은 99분이다. 본편은 90분이지만 엔딩 크레디트에 9분 동안 ‘1970인 제작위원’을 비롯해 후원 개인·단체의 이름이 나갔다. 양 대표는 “9분 정도까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면서 “대기업의 자금을 받지 않고 제작위원과 후원자의 참여로 만든다는 것은 전태일 정신을 따르겠다는 또 하나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11월 개봉하는 <태일이>의 제작 상황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개봉을 미뤄온 대형 투자·배급사의 이른바 대작 영화들이 단계적 일상회복에 맞춰 영화관에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태일이>의 마케팅비 등 제작비 마련도 힘겨웠는데 상영관 확보에도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제작사는 이달 말까지 제작위원(신청 인터넷 홈페이지: bit.ly/태일이2021)과 후원자(국민은행 807501-04-236126 전태일재단)를 추가 모집하고 있다. 제작위원 참여자는 수익이 나면 정산 후 수익 비율만큼 돌려받을 수 있다. 수익금 중 일부는 비정규직 지원 등 사회연대기금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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