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성공한 수비’였다읽음

오동진 영화평론가
10월 6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6회 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레드카펫 행사가 열리고 있다.  정지윤 기자

10월 6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6회 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레드카펫 행사가 열리고 있다. 정지윤 기자

올해로 26회째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전략은 ‘방어’와 ‘단계적 복원’이었다. 방어는 당연히 코로나19를 겨냥한 것이다. 10월 6일 개막식이 있기 수개월 전부터 영화제와 정부 당국은 은밀한 합의에 이른 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국의 방역 수준은 거의 4단계를 오르락내리락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정책 당국은 10월에 있을 영화제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시그널을 보냈다. 공식적으로 방역을 풀고 영화제를 과거처럼 열라는 ‘지시’는 아니었다. 조금 열어도 되지 않을까, 라는 눈치 정도였다. 공무원들 특유의 책임 회피의 언사가 오갔다. 모두의 머릿속에는 더 이상 방역으로 나라경제를 옥죌 수는 없다는 판단이 있었다. 국민의 피로도가 최고조라는 분석도 이어졌다. 누군가 물꼬를 터야 하되 책임은 자체적으로 져야 할 것이다. 어차피 10월, 11월은 위드 코로나 정책을 시행할 시기다. BIFF가 총대를 메기에 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제를 하는 입장에서 정부의 은연중의 언사만 믿고 판을 벌일 수는 없는 일이다. 또 한편으로는 ‘알아서 좀 열고 가라’는 지시 아닌 지시를 못 들은 척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럴 때는 베팅을 해야 한다. 판을 벌이되 확진자가 나오지 않도록 최고의 방어진지를 펼 수밖에 없다. 삼국지 적벽대전에서 주유와 제갈량이 썼던 팔괘진(八卦陳)을 펼쳐야 한다.

■팔괘진을 펼쳐라

이번 BIFF에 가려면 한명의 예외도 없이 PCR 검사서를 제출해야 했다. 이건 2차 접종을 완료한 사람도 벗어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출입 과정이 엄격했음에도 중간 과정은 더하면 더했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영화제 중반까지 있는 사람들은 다시 한 번 PCR 검사를 받아 검사서를 제출해야 했다. 또 이걸 받았다고 해서 폐막식까지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폐막식에 참석하려면 이틀 전까지 PCR 검사서를 다시 제출해야 했다. 2중, 3중의 막을 쳤던 셈이다. 곳곳에 열화상 체온측정기, 그리고 모든 행사장을 들어가기까지는 배지 외에도 각종의 비표를 확보해야 했다. 이건 일종의 전쟁과 같은 양상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이는 매우 잘한 일로 평가됐다. 대체휴일이 낀 주말이 두 번이나 있었던 영화제 기간 총 열흘 동안 관객들이 부분적으로 대거 몰릴 수밖에 없었고, 전국에서 기자들까지 오가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폐막을 하루 앞둔 10월 14일 현재 확진자는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전력 방어에 성공한 것이다.

자, 그러면 또 다른 한마리의 토끼는 잡았는가. 영화제 내용과 내부를 검산해 봐야 한다. 그런데 쉽게 말해 이 토끼는 산토끼가 아니라 집토끼였다. 해외 게스트는 최소한으로 줄였다.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된 프랑스 레오 카락스와 <드라이브 마이 카>를 가지고 온 일본의 신예 하마구치 류스케가 이번 영화제 최대 화제의 인물이었다. 대신 국내 게스트들은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는 모양새였다. 감독만으로도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장준환 등 일명 기라성들이 모두 참여했다. 배우들은 개막식 사회를 맡은 송중기를 비롯해 정우성, 유아인, 최민식, 박해일, 이제훈, 공유, 조진웅, 김규리, 박소담, 한소희, 엄지원 등 초호화 캐스팅의 면모를 갖췄다. 코로나19로 국민의 피로감이 극대화돼 있는 것처럼 국내 스타들도 레드 카펫 행사에 목말라 있음이 입증됐던 셈이다. 10월 6일 개막식이 열린 부산 센텀시티 영화의전당은 오랜만에 인파로 북적였다. 개막식이 열리는 야외 상영장은 1200명으로 인원이 제한됐다. 이번 개막식은 최소한의 여건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거뒀다는 것이 영화제 측의 자평이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봉준호 김독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스페셜 대담을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봉준호 김독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스페셜 대담을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부산국제영화제의 나비효과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면면을 보면 국내의 영화계가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는 국내 문화계에 영향을 줄 것이고, 나라 전체의 경제문화 회복세에 도움을 줄 것이다. 누군가는 물꼬를 터야 하고, 도미노 효과를 일으켜야 한다면 이번 BIFF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 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콘텐츠이다. 영화 프로그램이 잘 짜여 있는지는 영화제의 가장 큰 이슈이다. 영화제는 늘 새로움을 지향해야 한다. 얼마나 새로운 영화들을 포진시켰는지, 세계 영화권과 세계 영화산업의 트렌드를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BIFF의 최초 모토는 ‘아시아’였다. 변방의 아시아를 세계 관객들과 만나게 하는 주요 창구로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팬데믹 이전에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과 궤를 맞춰 ‘신남방정책’을 도입하기도 했다. 아세안 10개국과의 영화적 교류를 적극 넓혀나가겠다는 것이었던 바, 코로나19가 이 확대 전략을 다소 주춤하게 만들었다. 이번 제26회 BIFF는 그 의미를 다시 복원시키는 데 주력했다. ‘중국영화 새로운 목소리’전이나 ‘원더 우먼스 무비’전 같은 것이 그것이다. 특히 후자는 아시아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들을 모은 것이었다.

아세안 10개국에 대한 배려는 영화제의 브랜치에 해당하는 ‘아시아 콘텐츠 필름 마켓’에서 구현됐다. 마켓은 3년 전부터 ‘아시아 콘텐츠 어워드(ACA)’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일본, 중국, 대만, 홍콩 등 15개 지역에서 만들어진 비(非)극장 영화, 곧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영화들과 TV시리즈, 숏폼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상식이다. 마켓의 이 시상식은 사실상 영화제가 지향하는 양 갈래 길을 합치려는 의도로 기획된 것이다. 아세안 국가와의 교류를 강화해 중국시장 의존도를 줄여나갈 것(사드 배치 이후 한한령 사태로 한국 콘텐츠의 중국시장 진출은 부당한 취급을 받고 많은 회사가 문을 닫아야 했다. 아세안은 6억5000만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다)과 또 하나는 세계적 콘텐츠 시장의 추세에 맞게 OTT 작품들을 끌어안는다는 것이었다. 이에 발맞춰 영화제 스스로도 ‘온 스크린’ 부문을 신설했다. OTT 영화를 상영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봉준호의 <옥자>가 칸영화제에서 공식 초청을 받지 못한 것을 기억하면 BIFF는 이제 그 같은 행태가 시대착오적임을 천명하고 스크리밍 서비스의 오리지널 작품들을 적극 껴안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이번 ‘온 스크린’ 부문에는 <마이 네임>, <지옥>, <포비든> 등 넷플릭스 작품들이 선정됐다.

이번 영화제에는 모두 70개국 223편의 영화가 왔다. 부산 중구에서 별도로 여는 ‘커뮤니티 비프’ 행사에는 63편의 영화가 초청됐다. 그러니 총 286편이다. 이들 영화는 6개 극장, 29개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예년처럼 300편이 넘고 10개 이상의 극장에서 진행됐던 때를 생각하면 다소 축소된 느낌이 들긴 한다. 그러나 현재 상황을 생각하면 최대치다. 영화제는 어쩌면 축구와 같다. 압박축구가 아니라 공간축구다. 공격형 미드필더가 윙백들의 도움을 받아 오프사이드 반칙을 피해가며 적진을 파고드는 것이다. 지금 영화제가 딱 그런 형국이다. 방역의 진지를 피해가야 하며 정치와 경제, 사회문제의 높은 파고를 파고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올해 개막식에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무대에 올라 개막선언을 했다. 코로나19와 박형준의 수비를 뚫고 BIFF는 과거의 수준과 수위, 위상을 회복시켜야 한다. 올해까지는 수비에 집중했다. 내년에는 시원한 공격축구를 선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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