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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속지 마세요···나는 멸종위기 '토종 양비둘기'랍니다

사진·글 권도현 기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양비둘기가 전남 구례 화엄사의 푸른 가을 하늘을 날고 있다. 국내 140여 마리만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양비둘기는 화엄사에 약 20여 마리가 무리를 지어 생활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양비둘기가 전남 구례 화엄사의 푸른 가을 하늘을 날고 있다. 국내 140여 마리만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양비둘기는 화엄사에 약 20여 마리가 무리를 지어 생활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지리산 자락의 대표 명찰 구례 화엄사(사적 제505호). 이곳에서는 불자들과 등산객 뿐만 아니라 쌍안경이나 카메라 등 조류를 관찰할 때 쓰이는 장비를 들고 오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 엄마와 함께 화엄사까지 온 고영광군(11)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군은 “양비둘기를 보기 위해 어제 엄마와 함께 구례로 왔다”고 웃으며 말했다.

‘낭비둘기’라고도 불리는 양비둘기는 전남 구례와 고흥, 경기 연천 등지에서 140여마리 정도만 서식하고 있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다. 따오기, 독수리, 담비, 삵 등이 이 등급에 속해있다. 구례에는 약 60여 마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화엄사에는 약 20여 마리가 무리를 지어 생활하고 있다.

비행을 마친 양비둘기가 사찰 담벼락에 착륙하고 있다. 흰 허리와 꼬리에 흰띠는 양비둘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 권도현 기자

비행을 마친 양비둘기가 사찰 담벼락에 착륙하고 있다. 흰 허리와 꼬리에 흰띠는 양비둘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 권도현 기자

쌍안경으로 양비둘기를 관찰하던 고군은 “집비둘기에서는 못 보던 꼬리의 흰띠가 신기하고 멋있게 보인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생김새가 비슷한 집비둘기와 양비둘기를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은 꼬리 중간에 나타나는 흰띠다. 집비둘기는 깃털 무늬가 일정한 패턴없이 다양한데 비해 양비둘기는 꼬리 중간과 허리에 흰색 무늬가 존재하며, 날개 쪽에는 뚜렷한 두 줄의 검은 무늬를 갖고 있다.

양비둘기 무리 사이에 집비둘기(오른쪽 두번째)가 담벼락에 앉아 있다. 집비둘기는 깃털 무늬가 일정한 패턴없이 다양한데 비해 양비둘기는 꼬리 중간과 허리에 흰색 무늬가 존재한다. / 권도현 기자

양비둘기 무리 사이에 집비둘기(오른쪽 두번째)가 담벼락에 앉아 있다. 집비둘기는 깃털 무늬가 일정한 패턴없이 다양한데 비해 양비둘기는 꼬리 중간과 허리에 흰색 무늬가 존재한다. / 권도현 기자

화엄사 원통전 지붕 위에 앉아 있는 양비둘기(오른쪽)와 집비둘기. / 권도현 기자

화엄사 원통전 지붕 위에 앉아 있는 양비둘기(오른쪽)와 집비둘기. / 권도현 기자

대웅전 용마루 위에서 가을 햇살을 즐기던 양비둘기 무리에서 확연히 다른 무늬를 가진 집비둘기들이 눈에 띄었다. 1960년대 이후 크고 작은 행사에 동원하기 위해 수입된 집비둘기는 국내 양비둘기 감소의 가장 큰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 때는 전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양비둘기는 번식력이 뛰어난 집비둘기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무엇보다 집비둘기와의 이종교배로 인한 잡종화로 결국 멸종위기 종이 되었다.

양비둘기 한쌍이 화엄사 대웅전 단청에서 입맞춤을 하고 있다. 번식기(3월~10월) 막바지 수컷(왼쪽)은 빙글빙글 도는 구애행동을 한 끝에 암컷과 입을 맞췄다. / 권도현 기자

양비둘기 한쌍이 화엄사 대웅전 단청에서 입맞춤을 하고 있다. 번식기(3월~10월) 막바지 수컷(왼쪽)은 빙글빙글 도는 구애행동을 한 끝에 암컷과 입을 맞췄다. / 권도현 기자

양비둘기 한 마리가 둥지를 만들 솔잎을 물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양비둘기 한 마리가 둥지를 만들 솔잎을 물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양비둘기 두 마리가 영역 다툼을 하고 있다. 서식지인 화엄사 내에서도 양비둘기 간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자리 다툼이 일어난다. / 권도현 기자

양비둘기 두 마리가 영역 다툼을 하고 있다. 서식지인 화엄사 내에서도 양비둘기 간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자리 다툼이 일어난다. / 권도현 기자

양비둘기는 주로 해안 절벽이나 무인도의 바위 구멍, 바위틈 등을 서식지로 삼는다. 처마 틈새나 현판 뒤가 자연 서식 환경과 비슷하기 때문에 사찰을 서식지로 삼기도 한다. 천년 고찰은 양비둘기에게 더 없이 평화로운 서식지였다. 둥지를 만들기 위해 솔잎을 물고 각황전 현판 뒤로 부지런히 움직이던 양비둘기들은 숨을 고르며 지붕 끝에 앉아 털을 골랐다. 대웅전 기와 아래 단청에서는 수컷이 암컷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구애를 한 뒤 불경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짝짓기가 이루어졌다.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서 양비둘기 복원을 담당하는 강승구 선임연구원은 “화엄사는 건물이 높고 새들이 숨을 수 있는 공간이 많다. 특히 기와의 색도 흑화색으로 바위의 색과 비슷해 화엄사를 서식지로 삼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양비둘기 한 마리가 기품있는 자세로 대웅전 기와 끝에 앉아 있다. / 권도현 기자

양비둘기 한 마리가 기품있는 자세로 대웅전 기와 끝에 앉아 있다. / 권도현 기자

멸종위기종인 양비둘기와 문화재인 화엄사의 공존이 쉽지만은 않다. 강한 산성 성분이 포함된 비둘기의 배설물이 국보 67호인 각황전에 등에 쌓여 문화재 손상을 초래하거나, 추워진 날씨로 인해 비둘기가 법당 안으로 들어와 민원이 발생하기도 한다. 화엄사 종무소 관계자는 “화엄사도 문화재이고, 비둘기들도 멸종위기종이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이라며 난감해했다.

자원활동가들이 양비둘기가 앉아 있는 각황전 지붕을 관찰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자원활동가들이 양비둘기가 앉아 있는 각황전 지붕을 관찰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종각에 떨어진 양비둘기의 배설물을 청소 중인 스님과 자원봉사자들. / 권도현 기자

종각에 떨어진 양비둘기의 배설물을 청소 중인 스님과 자원봉사자들. / 권도현 기자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양비둘기와 문화재의 공존을 위해 국가기관과 지자체, 사찰, 시민단체가 손을 잡았다. 2019년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화엄사, 지리산국립공원,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모임 등이 참여한 ‘구례 화엄사 양비둘기 문화재 공존 협의체’가 발족했다. 지리산국립공원 전남사무소는 시민조사단을 양성하고 자원활동가들을 모집해 관련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1일에도 시민조사단, 자원활동가와 스님들이 함께 사찰을 돌며 비둘기의 배설물을 청소하고 개체수를 확인하는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이날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사찰을 청소한 진암스님은 “화엄사에 사는 양비둘기도 소중한 존재인 만큼 절 인근에 대체 서식지를 마련하는 것도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양비둘기 한 마리가 담벼락 위를 걷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양비둘기 한 마리가 담벼락 위를 걷고 있다. / 권도현 기자

먹이 활동을 위해 이동하는 양비둘기들. / 권도현 기자

먹이 활동을 위해 이동하는 양비둘기들. / 권도현 기자

양비둘기 한 마리가 대웅전 단청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양비둘기 한 마리가 대웅전 단청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지난 27일에는 1년에 두 차례 열리는 협의체 회의도 진행됐다. 회의에 참석한 강승구 연구원은 “지속적으로 양비둘기 증식과 방사, 방사 후 환경적응 등 보전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면서도 양비둘기와의 공존을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의 무관심이 양비둘기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멸종위기 종이 됐지만 다시 사람이 사는 곳으로 온 만큼 교육·홍보에도 노력을 기울여 멸종위기 야생생물과 문화재 보호도 이루어지는 안전한 서식지 환경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을 하늘을 나는 양비둘기. / 권도현 기자

가을 하늘을 나는 양비둘기. / 권도현 기자

<글·사진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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