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학교·병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회가 당연한가요” 이반 일리치가 묻다

이혜인 기자
이반 일리치의 사상에 대해 쉽게 풀어낸 <이반 일리치 강의>의 저자인 이희경 문탁 네트워크 대표는 지난달 28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질문을 성찰하고,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 일리치의 생각을 함께 나눌 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준헌 기자.

이반 일리치의 사상에 대해 쉽게 풀어낸 <이반 일리치 강의>의 저자인 이희경 문탁 네트워크 대표는 지난달 28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질문을 성찰하고,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 일리치의 생각을 함께 나눌 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준헌 기자.

학교와 병원은 근대에 만들어진 개념이자 공간이다. 근대 이후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학교와 병원의 기능 유지는 필수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사상가 이반 일리치는 지금부터 50년 전에 모두가 필수적 공간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학교와 병원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학교는 교육 기회를 평등하게 만드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배움을 독점하게 만드는 공간이 아닐까. 병원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서, 우리는 스스로의 몸을 자율적으로 돌보는 능력을 오히려 상실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와 병원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지금, 일리치의 질문은 함께 고민하고 답할 만한 가치가 있다.

최근 <이반 일리치 강의>(북튜브)라는 책을 낸 문탁네트워크의 이희경 대표(60)는 “지난해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질문을 성찰하고,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 일리치의 생각을 함께 나눌 때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팬데믹 이후의 학교와 병원을 생각한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통해 이 대표는 학교와 병원에 대한 일리치의 비판적 사유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책은 지난해 겨울 코로나19로 인해 한국도서관협회에서 진행하던 ‘길 위의 인문학’이라는 강연 프로그램이 중단되면서 마련된 비대면 강의의 내용을 구어체로 정리한 것이다. 지난달 28일 경향신문사에서 이 대표를 만나 일리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일리치는 주류 아카데미의 계보에서 한 발 비켜 나가 있던 사상가이자, 거리의 지식인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근대성의 형식들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었죠.”

일리치는 프랑스의 철학자인 미셸 푸코와 쿠바의 혁명가인 피델 카스트로같이 1926년에 태어났다. 정통 학자나 혁명가의 길을 택하는 대신 사제 서품을 받고 신부의 길을 선택했다. 당시 미국령이었던 푸에르토리코의 대학에서 부총장을 하면서 교회의 세속화와 관료제에 비판의 날을 세우다가 교황청에 의해 파문당한다. 이후 그는 멕시코에서 대안대학을 만들고,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대안적 삶을 고민했다. <학교 없는 사회>(1971), <병원이 병을 만든다>(1975) 등의 책에 그의 생각이 담겼다.

일리치는 푸에르토리코 정부의 교육위원회에 참여하면서 학교라는 공간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사회적 표준이 되면서,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지 못한 사람이 오히려 그 표준에서 멀어지게 되는 현상에 주목했다. <학교 없는 사회>에서 그는 학교가 교육 기회의 평등이 아닌 인간을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무교육제도 도입으로 학교가 교육을 독점하면서, 우리의 삶과 앎이 분리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학교는 앎에 대한 호기심을 확산시키고 배움을 일으켜 홍익인간이 되게 하는 곳이 아니라, 1등부터 100등까지 줄 세우면서 시험을 통과해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하는 ‘게임의 규칙’을 익히게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인해 학교가 멈추면서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가 주어졌음에도, 여전히 배움에 있어서 학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 ‘위드 코로나’로 다시 아이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업을 받게 하는 것이 진정한 일상의 회복인지 질문할 때”라고 강조했다.

[인터뷰]“학교·병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회가 당연한가요” 이반 일리치가 묻다

코로나19로 인해 병원의 중요성과 권한도 커졌다. 삶의 많은 영역이 ‘의료’라는 잣대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일리치는 <병원이 병을 만든다>에서 “의료 기술의 확충 혹은 의료 제도의 확대는 사람들의 건강을 증진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학교와 마찬가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일 뿐인 병원이 너무 강조되다 보면 오히려 본말이 전도되며, 우리가 그에 종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리치는 자기 몸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스스로 돌볼 수 있는 증상임에도 병원을 찾아가 진료를 받아 질환으로 진단받는 것을 ‘의원병(醫原病)’이라고 개념화했다. 이 대표는 “의사나 병원이 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에 대한 독점이 너무 일반화되면서 자기 돌봄이나 자기 치료라는 관점에서 의료가 활용되지 못한다는 점을 문제 삼는 것”이라며 “ ‘의원병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몸에 대한 자율권을 완벽하게 잃게 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가 어마어마한 과로사회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잖아요. 우리가 앞으로 삶의 동선을 어떻게 단순화하고, 과로사회를 벗어날지를 이야기해야죠. 그런데 지금은 ‘뉴노멀’ 대신 백신만 있으면 코로나를 다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어 당황스러워요. 과거로의 회귀인 것이죠.”

이 대표는 일리치가 말한 것들을 삶 속에서 실천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다. 대학 밖 인문학 연구모임의 시초인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공부했던 그는 2010년 집 주변 친구들과 세미나를 하면서 문탁네트워크라는 인문학공동체를 꾸렸다. 문탁은 함께 묻고(問) 연마한다(琢)는 뜻이다. 경기 용인시 수지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멀리서도 함께 공부하기 위해 오는 이들이 있어 전체 참여회원은 100여명이다.

지난 2월 문탁네트워크의 약사 회원이 마을 사랑방처럼 이용된 카페가 있던 곳에 ‘일리치약국’을 열었다. 회원들은 일리치약국을 중심으로 자기 몸을 이해하고, 경험을 나누는 세미나를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월경과 갱년기를 주제로 세미나를 두 차례 열고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일리치가 말한 대로 자기 몸에 대한 주체적인 배움을 실천하는 과정이다. 이 대표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정해진 법은 없다”며 “일리치가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특정한 대안이 아니라 대안을 만들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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