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 선정한 2021 '올해의 책' 열 권… ‘불평등, 기후변화, 기술주의’, 지금 여기 문제 다룬 책들읽음

이혜인·김지혜·선명수 기자
경향신문 선정 2021년 올해의 책.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경향신문 선정 2021년 올해의 책.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감염병 유행 장기화 속에, 2021년은 여러모로 삶이 팍팍했던 한 해였습니다. 이상기후로 인한 산불이나 홍수 뉴스가 곳곳에서 들려와 현실이 된 기후위기를 느끼게 했습니다. 감염병 위기로 인한 고통이 누구에게나 같지 않고, 자영업자나 건강 취약계층을 더 강하게 타격하는 장면들도 계속됐습니다.

책은 일상에 흩어져 있는 현실의 문제를 뾰족하게 모아 정확한 언어로 설명해주는 매개체입니다. 책을 통해 우리는 현실의 문제를 공동체가 함께 겪고 있음을 인지하고, 새로운 해법을 찾습니다. 올 한 해 경향신문이 ‘책과삶’ 지면을 통해 소개한 책 중에 ‘올해의 책’ 10권을 골랐습니다. 서평을 담당한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들이 회의를 거쳐 정했습니다.

능력주의가 특권과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짚은 <한국의 능력주의>, 불완전함과 함께 살아가는 기술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사이보그가 되다>, 서울 양동 쪽방촌 주민의 삶을 보여주는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금융자본주의가 양산하는 보람 없는 일자리를 말하는 <불쉿 잡>이 선정됐습니다. <플루토피아> <냉전의 마녀들> <기후의 힘>과 같이 역사학자, 고기후학자가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쓴 양서들은 과거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짚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문학 부문에서는 소설 두 편, 에세이 한 편이 선정됐습니다. 한강이 5년 만에 내놓은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4·3사건을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최은영의 <밝은 밤>은 여성 4대의 삶을 선하고 따뜻한 감수성으로 전합니다. 한국계 미국 이민 2세대인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는 자신의 삶을 통해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경험을 말합니다.

경향신문이 선정한 2021 '올해의 책' 열 권… ‘불평등, 기후변화, 기술주의’, 지금 여기 문제 다룬 책들

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 김원영 지음 | 사계절

‘장애와 기술의 결합’ 경험자들의 ‘불완전함과 함께 사는 기술’ 이야기

사이보그는 기계를 몸에 결합하거나 이식한 유기체를 일컫는다. SF소설가 김초엽과 변호사 김원영은 “우리는 기계와 결합한 유기체라는 점에서만 보아도 ‘사이보그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청각장애가 있는 김초엽은 보청기를 착용하고, 지체장애가 있는 김원영은 휠체어를 탄다. <사이보그가 되다>는 두 사람이 장애와 과학기술이 결합하는 공통 경험을 바탕으로 함께 쓴 책이다. 테크놀로지와 결합한 장애인의 몸을 ‘사이보그’라는 상징으로 접근해 인간 몸과 과학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만나야 하는지를 묻는다. 책은 과학기술 영역에 장애가 없는 상태가 이상적이라고 보는 ‘비장애중심주의’, 기술이 장애에서 인류를 해방시킬 것이라는 ‘기술 유토피아’가 깔려있다는 점을 짚는다.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시대에 ‘완전함에 도달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불완전함과 함께 살아가는 기술’을 말하는 책이다.

▶관련기사 : 장애라는 다름과 함께해야 할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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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능력주의

박권일 지음 | 이데아

형식적 공정성에만 집중하는 ‘능력주의’의 허상을 걷어내보자

‘능력주의’는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이데올로기다. 최근 몇년간 권력자들에게 과도하게 주어지는 특권과 비리 문제가 터져나올 때마다, 능력주의는 몇번이고 다시 소환돼 화두가 됐다. 공정한 과정에 따라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기만 한다면, 특권으로 인한 불평등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책 <88만원 세대>의 공저자로 잘 알려진 박권일 사회비평가·작가는 <한국의 능력주의>에서 이 같은 인식으로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능력주의 신화를 신랄하게 꼬집는다. 그는 “능력주의는 기회와 과정의 근본적 불평등, 즉 ‘실질적 불공정’을 은폐하고 형식적 공정성에만 집중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책은 한국 능력주의의 기원을 추적하고, ‘이상적 능력주의’의 허상을 걷어낸다. 공회전하는 능력주의 담론의 핵심을 짚는다.

▶관련기사: 박권일 “능력만 있으면 혐오·차별 정당화…그게 한국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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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마녀들

김태우 지음 | 창비

세계 18개국서 모인 21명의 여성, 한국전쟁의 참상을 기록하다

1951년 5월15일,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 한 무리의 여성들이 유서를 쓰고 북한으로 향했다.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여성단체로 꼽히던 ‘국제민주여성연맹’의 초청으로 한국전쟁 조사위원회 활동을 하기 위해 모인 여성들이었다. 덴마크, 체코슬로바키아, 네덜란드, 영국 등 18개국에서 모인 21명의 여성들은 10여일 동안 신의주, 평양, 황해도, 평안남도 등의 지역을 방문했다. 민간인 대상 공중폭격, 집단 고문, 성폭력 등 전쟁의 참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기록했다. 본국으로 돌아간 여성들은 활동 의도를 의심받으며, ‘마녀사냥’과 같은 고초를 겪는다.

김태우 한국외대 한국학과 교수는 조사위원회의 보고서와 미 공군의 기록, 조사위원들이 본국에 돌아가 남긴 개인 기록·언론 활동들을 치밀하게 파헤쳤다. 기록복원물로서의 의의도 상당하나, 한 편의 전쟁소설과 같이 읽기 쉽게 쓰여 더욱 의미 있는 저작이다.

▶관련기사: 21명의 여성은 유서를 쓰고 전쟁 중이던 북한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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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지음 | 후마니타스

도심 빈민가 양동 쪽방촌 사람들, 살고 싶은 곳에 살 권리를 말하다

서울 남대문경찰서와 밀레니엄 힐튼 호텔 사이쯤에는 수십년 가난의 역사가 쌓인 양동 쪽방촌이 있다. 한국전쟁 직후 피란민을 시작으로 각자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오면서 마을이 생겼다.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나, 정비해야 할 도심 빈민가로 여겨졌다. 서울시가 2019년 재개발계획을 가결하면서 주민들이 절반으로 줄었다.

11명의 기록활동가로 구성된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이 2020년 10월부터 약 1년간 양동 쪽방촌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적었다. 인터뷰에 응한 주민 8명이 각자 양동에 들어와 살게 된 생애사가 생생한 구어체로 담겼다. 이들의 빈곤이 개인의 잘못이나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누구나 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서 계속 살 수 있어야 할 권리에 대해 말한다.

▶관련기사: 비록 쪽방촌이지만 우리에겐 삶의 터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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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쉿 잡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김병화 옮김 | 민음사

‘의미 없는 직업’으로 돌아보는 노동과 일터의 진정한 의미

‘불쉿(Bullshit) 잡’은 ‘맡겨진 업무가 너무나 무의미하고 불필요해서, 그 일을 하는 사람조차도 쓸모가 없다고 여기는 허튼 직업’을 의미한다. 인류학자인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자신이 하는 일을 ‘불쉿 잡’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현상을 포착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 책을 썼다.

상사나 관리자를 중요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직업, 실제 목표를 이루는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서류를 양산하기만 하는 직업 등이 ‘불쉿 잡’이다. 저자는 금융자본주의의 성장으로 인해 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돌봄 노동자, 제조업 공장 노동자 등은 늘지 않고 회계 직원, 정보기술(IT) 전문직, 컨설턴트 직종이 늘면서 ‘불쉿 잡’이 증가했다고 말한다. 노동과 일터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관련기사: 저는 쓸모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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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피아

케이트 브라운 지음·우동현 옮김 | 푸른역사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사이 국가 주도 ‘원자력 도시’의 역사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대 초반 미국과 소련은 원자력 기술에 대대적인 투자와 연구를 진행했다. 미국 워싱턴주의 리치랜드와 소련 우랄 지역의 오조르스크 지역에는 플루토늄 생산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살 수 있는 도시가 국가 주도로 조성됐다. 이 지역 노동자들은 질 높은 주거, 급여 등 ‘소비자적 권리’인 풍요를 제공받는 대신, ‘생물학적 권리’인 건강과 ‘정치적 권리’인 자치는 포기했다. 책의 제목인 ‘플루토피아’는 ‘플루토늄(plutonium)’과 ‘장소(topia)’ 또는 ‘이상향(Utopia)’의 합성어다.

책은 1940년대 초반부터 플루토피아가 형성돼온 과정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방사능 피폭 문제를 두루 다룬다. 도시사, 환경사, 냉전사가 어우러진 핵의 역사다. 원자력발전에는 ‘안전’의 문제를 넘어 국가 주도의 지역 간 불평등이라는 속성이 내재돼 있다는 점을 짚는다.

▶관련기사: 핵전쟁이 낳은 풍요의 두 도시, 그 끝은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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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의 힘

박정재 지음 | 바다출판사

인류 진화부터 조선의 흥망까지 문명과 역사를 좌우한 ‘기후의 힘’

기후변화가 가져온 삶의 변화는 점점 더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 20여년간 한반도 고기후를 연구한 서울대 지리학과 박정재 교수는 “기후변화가 고대 사회의 성쇠를 결정했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고 말한다. <기후의 힘>은 인류 진화에서 조선 왕조의 흥망성쇠까지 기후가 어떻게 인류와 문명을 만들어 왔는지 지구 역사 맥락에서 조망한다.

저자는 외국의 연구 결과를 단순 차용하지 않고, 조선시대 기록 등을 뒤져 한반도의 고기후를 유추한다. 청동기 시대 중·후기 송국리 문화 쇠퇴 원인은 2700~2800년 전 갑자기 발생한 단기 가뭄 등 기후 악화와 관련이 있다. 저자는 지구온난화가 허구라는 주장에 대해 고기후학 연구 결과를 토대로 차근차근 반박한다. ‘기후의 힘’을 정확히 알고, 현재의 기후위기에 대처해나가자고 제안하는 책이다.

▶관련기사: 기후가 역사를, 역사가 기후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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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문학동네

증조할머니의 삶과 사랑 이야기 밤을 밝히는 뜨거운 위로를 건네

소설 <밝은 밤>은 여름에 찾아왔다.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등으로 ‘한국 문학의 새로운 감수성’을 열어줬다는 평을 받은 최은영이 3년 공백을 깨고 낸 신간이다. 그의 첫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은 기다림이 서운하지 않도록, 잔열이 쉽게 가시지 않는 뜨거운 위로를 건넨다. ‘증조모-할머니-엄마-나’ 모계로 이어지는 여성 4대의 삶이 선하고 따뜻한 최은영 특유의 감수성으로 그려졌다. 서른두 살 ‘지연’은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후 바닷가 작은 도시 ‘희령’으로 떠난다. 이곳에서 20여년간 연락이 끊겼던 할머니 ‘영옥’과 재회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비롯해 혹독한 세월을 가난한 백정의 딸로 살아남아야 했던 지연의 증조모 ‘삼천’의 삶과 사랑이,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넘실거린다. 밤을 밝힌 삶의 온기를 전한다.

▶관련기사: “백정의 딸, 전쟁, 이혼…서로에게 기대어 빛을 찾아가는 여성 4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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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지음|문학동네

압도적 슬픔이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제주 4·3사건 희생자들의 이야기

올가을 한강은 <흰> 이후 5년 만에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펴내며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 소개했다. 소설은 실제 한강이 꾸었던 꿈의 조각으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 ‘경하’는 벌판에 심어진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 사이에 있다. 경하는 나무들이 꼭 묘비인 것만 같다. 그는 발밑에 물이 차오르자 바다에 쓸려가기 전에 뼈들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4년 5월 광주를 그린 소설 <소년이 온다>를 발표한 직후 한강이 꾼 꿈이다. 이번 소설은 제주4·3사건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뺨 위로 떨어진 눈이 녹지 않는, 죽은 목숨들에 대한 이야기다. 몰살의 역사는 생존자 ‘정심’, 그의 딸 ‘인선’, 그의 친구 경하를 통해 천천히 전모를 드러낸다. 조용히 세상을 삼키는 작은 눈송이들처럼, 압도적인 슬픔이 흩날린다.

▶관련기사: 소설가 한강, 제주 4·3을 정면으로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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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 필링스

캐시 박 홍 지음·노시내 옮김|마티

아시아계 미국인의 분노와 성찰로 서구적 ‘보편성’에 거침없이 균열을

한국계 미국 이민 2세대인 시인 캐시 박 홍의 에세이다. 지난해 2월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범죄가 급증하며 주목받았지만, 저자는 팬데믹 이전에도 미국 사회의 아시아계 혐오 정서는 강했다고 꼬집는다. 아시아인은 미국 내에서 이른바 ‘모범 소수자’로 여겨지지만, 실상은 “진정한 소수자로 간주될 만한 존재감조차 없는” 보이지 않는(invisible) 인종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도 이방인 취급을 받아온 여성 작가가 자신의 삶을 통해 ‘보편’이란 이름의 서구의 파괴적 유산에 균열을 내는 분투의 기록이다. 백인의 시선으로 내면화해왔던 자기 혐오, 스스로를 부정하면서도 인정받고 싶어했던 욕구와 감정들을 낱낱이 털어놓으며 서구적 ‘보편성’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간다. 분노와 자기 성찰로 벼려낸 송곳 같은 책이다.

▶관련기사: 결코 사소할 수 없는 ‘소수적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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