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문을 여니 쓰레기 신세계가 펼쳐졌다···‘호러’, 이 시대의 공포

김지혜 기자
옆집 문을 여니 쓰레기 신세계가 펼쳐졌다···‘호러’, 이 시대의 공포

호러
김혜영·권하원·배예람·경민선·이로아 지음 | 안전가옥 | 270쪽 | 1만3000원

멀쩡한 직장인인 줄로만 알았던 옆집 여자, 문을 열고 들어선 그의 집은 쓰레기 신세계였다. 사람 키를 훌쩍 넘게 쌓인 배달 그릇들은 남은 음식과 함께 썩어가고 있었고, 방바닥은 널린 캔과 병, 각종 과자 봉지 때문에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바퀴벌레는 물론이고 개미, 그리마, 거미까지 온갖 벌레들이 떼를 이룬 가운데 털 뽑힌 고양이까지 발견된다. 두 집이 공유하는 전기요금 고지서를 훔치기 위해 옆집에 잠입했던 ‘나’와 ‘룸메’는 기겁한다. 나가려 해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이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공포는 무단침입에 기물파손까지 방금 저지른 범죄들이 밝혀져 물게 될 벌금이다. 두 사람은 돈이 제일 무서웠다, 이때만 해도.

이 시대의 공포는 어떤 형상이며, 무엇에서 비롯하는가. 감염병이 일상이 됐고, 현실은 온·오프라인으로 분절됐으며, 노동 환경은 한층 더 열악해졌다. 공포 역시 종전과 다른 방식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 안전가옥의 앤솔러지 시리즈 <호러>에는 새롭게 출몰한 공포의 본질을 예리하게 꿰뚫는 호러소설 5편이 모였다. 지난 3월 안전가옥과 영화 투자배급사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이 공동 주최한 ‘호러’ 스토리 공모전 수상작들이다. 영상화를 염두에 둔 듯한 펄떡이는 이미지와 서사는 물론이고 이 시대의 결핍과 위협을 직시하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눈에 띈다. 특히 지금의 청년 세대가 경험하는 폭력과 공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가장 최신의 호러다.

책을 여는 김혜영의 소설 ‘습습 하’는 전기요금을 같이 내면서도 연결보단 단절이 당연한 두 방의 여자들 이야기다. ‘나’와 ‘룸메’는 옆집 여자의 글을 훔쳐보며 의도치 않게 그의 비밀에 다가선다. “쓰레기들 사이에 있으니 나 또한 거대한 쓰레기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쓰레기 같은 년. 그 사람이 내게 말한 대로입니다.” 옆집 여자는 성추행 피해자로 추정되며, 재판을 거쳤지만 삶은 조금도 회복되지 못했다. 쓰레기로 점철된 그의 삶에 변화가 생긴 것은, 언니로부터 ‘그것’이라 불리는 상자를 받은 이후부터다. 상자에 담긴 끝 모를 암흑은 곧장 가해자의 식도로 연결된다고 했다. 정말이었다. 상자에 샤프심을 넣으면, 가해자는 샤프심을 토했다. 머리카락을 넣으면 머리카락을, 담배꽁초를 넣으면 담배꽁초를, 벌레를 넣으면 벌레를….

옆집 문을 여니 쓰레기 신세계가 펼쳐졌다···‘호러’, 이 시대의 공포

일상이 된 감염병, 온·오프라인으로 분절된 현실, 열악한 노동 환경···
지금의 청년 세대가 경험하는 폭력과 공포 역시 종전과 다를 수밖에
‘끔찍한 허구’ 속 빠졌다 나오면 공포스러운 현실이 견딜만해질지도

‘습습 하’는 성범죄 등 신변의 위협을 상시적으로 감각하며 단절과 연결 모두에 이중적인 공포를 느끼는 청년 여성들의 심리를 탁월하게 포착했다. 그런가 하면 경민선의 소설 ‘편의점의 운영 원칙’은 청년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꼬집는다. 주인공 변정희는 “전국에 있는 심령 스폿 중에서도 가장 흉악스러운 곳으로 유명”한 편의점 야간 알바에 지원한다. 일의 위험함을 경고하는 점장에게 변정희는 “전 여기가 다른 점포보다 시급이 세서 온 겁니다”라며 자신의 ‘절박함’을 내세운다. “새벽 2시 정각에 출입문이 저절로 열리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놀라지 말 것” “사람 아닌 존재가 계산대 안쪽으로 들어올 경우, 창고 선반에 있는 무기를 사용해 몰아낼 것” 등 섬뜩하기 그지없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관건이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존재가 수시로 나타나는 편의점이지만, ‘절박한’ 이 시대의 청년 변정희는 굳건하게 원칙들을 지켜나간다.

어떤 작품들은 가상현실(VR)과 온라인 회의 등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는 현실의 모양에 주목하기도 한다. 비대면 세상에선 공포의 모양도 다르다. 배예람의 소설 ‘엔조이 시티전(傳)’은 ‘엔조이 시티’라는 VR 롤플레잉 게임을 중계하는 스트리머 ‘춘향’이 게임 속에서 귀신 장화, 홍련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소설은 고전 설화와 VR 게임이라는 비현실의 형식을 통해, 게임회사의 직장 내 괴롭힘과 같은 현실의 문제로 거침없이 달려간다. 이로아의 소설 ‘김민수(학부재학생)’는 대학 온라인 강의에 실제 존재하지 않는 대학생 ‘김민수’가 자꾸 접속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살벌한 살육전으로 번지는 이야기다. 두 작품 모두 최근의 비대면 상황에서 비롯하는 미지의 공포를 출발점으로 삼지만, 그 도착지는 결국 우리가 매일 대면하면서도 인지하지 못하던 ‘뒤틀린 세계’다.

권하원의 소설 ‘우리 안에’는 거대한 쥐떼의 습격과 임신에 대한 공포를 하나로 엮어낸 소설로, 앤솔러지에서 유일하게 재난물을 표방했다. 그저 쥐였다가, 조금 큰 쥐였다가, 이내 사람을 뜯어먹는 괴물로 변해버린 쥐들의 습격은 마치 코로나19처럼 압도적인 기세로 세계를 집어삼킨다. 재난 속에서도 계속해서 살고 사랑하려는 지금의 특수한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한층 공포스럽다. “우리가 허구의 공포 속으로 피신한 덕분에 현실의 공포는 우리를 압도하지 못하고, 우리를 꽁꽁 얼어붙게 하지 못하고, 일상생활을 제대로 살아가려는 우리를 방해하지 못한다.” ‘호러의 제왕’으로 불리는 작가 스티븐 킹은 이렇게 말했다. <호러> 속의 끔찍한 허구도 마찬가지다. 그 속에서 한참 길을 잃고 도망치다보면, 매일 숨쉬는 이 공포스러운 현실도 조금은 견딜 만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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