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향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 -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

그림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그림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몹시 무더운 아침 무렵, 동우와 석용은 햇빛을 피해 자양동 거리의 지하도를 따라 걷다가 자판기 사진을 찍는 기계를 보았다.

사진 찍을래?

석용이 물었다.

아니.

동우가 대답했다.

두 사람은 자판기 사진을 찍는 기계에 들어가 자판기 사진을 찍었다.

플래시가 터지는 기계가 아니었는데도 어째서인지 얼굴이 전부 하얗게 뭉개져 있어 두 사람은 사진을 오래 들여다볼 것도 없이 각자 주머니에 넣고 다시 걸었다.

창문만 보면 뛰어내리고 싶게 만드는 약이 있대.

석용이 말했다.

그걸 먹게 되면, 창문을 볼 때마다 웃으면서 전력으로 달려간다는 거야. 뛰어내리려고. 기분이 어떨까. 아무래도 이상하겠지. 영영 안 올 줄 알았던 사람이 저편에서부터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겠지. 창문이 마치 그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성큼성큼.

성큼성큼, 이라고 말을 하면서 석용은 보폭을 크게 하여 동우를 앞질렀다.

가스를 마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대. 그런 건 그냥 애들 장난 같은 거고 이건 장난이 아니라는 거야. 진심 같은 거지. 진심은 아니고…… 진심 같은 거. 더 좋은 거.

석용의 말을 듣고 있던 동우는 잠깐 딴생각을 했다. 그것은 일 층에 대한 생각이었다. 창문을 보고 전력으로 달려가 바깥으로 뛰어내렸는데 그곳이 겨우 일 층이었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무 일도 없이 바닥을 딛고 서 있는 두 발을 내려다보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동우는 아무 일도 없이 바닥을 딛고 서 있는 자신의 두 발을 내려다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이상하겠지. 실망이 너무 커서 어리둥절하기도 하겠지. 뭐야? 씨발 이게 뭐야……

내 말 듣고 있어?

석용이 물었다.

아니.

동우가 대답했다.

두 사람은 약속 장소에 조금 늦게 도착하여 성아에게 사과를 했다.

늦어서 미안.

잘 왔는데 왜 사과를 하냐.

늦어서.

괜찮아.

동우와 석용과 성아는 약속 장소로 정해두었던 양철 광고판 앞에 모여 땀에 젖은 얼굴을 찡그리고 얼마간 서 있었다. 가까이에 빨래방이 있어 장미 문양이 인쇄된 산호색 비닐에 납작하게 말린 옷가지나 이불을 가득 담아 나오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싸구려 세제 냄새. 지름길. 굴착기 소리. 세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순서 없이 구경하고 나서 본 것들을 전부 잊어버렸다.

제 동생 어디로 갔는지 알아요?

킥보드를 탄 아이가 물었다.

알아.

세 사람이 대답했다.

그런데 기억이 안 나.

세 사람은 걸었다. 은행나무 아래를 지나서 공용광장에 들어서자 음수대에 반사된 햇빛이 세 사람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다. 세 사람은 누군가 자신의 얼굴에 일부러 자꾸 햇빛을 비추는 것 같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는 얼굴이 없었다. 배를 다 드러내고 벤치에 누운 늙은 남자가 혼자 웃고 있을 뿐이었다. 야, 너희. 이것 봐라. 세 사람은 남자가 보여주는 몇 개의 흉터를 보았다. 담배로 지졌나? 석용이 혼잣말을 했다. 그게 아냐. 내가 쓸개 수술을 받았거든. 남자가 말했다.

다 나았네요.

동우가 말했다.

맞아. 멋지지?

남자가 물었다.

멋지네요.

성아가 대답했다.

세 사람은 다시 걸었다. 세 사람의 옆으로 네 사람의 남자와 두 사람의 여자, 그리고 모자를 쓴 도장공이 지나갔다. 이대로 광장의 중심에서 비껴나 조금 더 걸어가면 오래된 공터와 농구대가 나타날 것이었다. 농구대가 눈앞에 나타나면, 농구대의 둥근 테에 매달린 과거의 기억들을 새롭지 않게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었다. 탈구된 팔다리. 체육 시간. 푸른 뜰. 철봉들. 작은 아코디언. 배앓이. 식곤증. 포도당 알약들. 그러나 세 사람은 거기까지 걷지 않았다.

세 사람은 걷다가 멈추어 섰다. 술 자국이 묻은 담장 너머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바이엘 3권이네.

성아가 말했다.

바이엘 3권. 오른손으로 건반을 네 번 누를 때 왼손으로는 열두 번을 눌러야지. 동우와 석용과 성아는 모두 같은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것은 교정시설에서 음악 수업을 담당하던 여자의 목소리였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여자의 목소리는 잡음이 섞이는 일 없이 세 사람의 머릿속에서 여전히 선명했다. 바이엘은 보통 초등학생 때나 배우는 거야. 너희는 지금껏 뭐 했니? 학교에서 병신같이 친구들 괴롭히는 짓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지?

하하 정말이야. 성아가 웃었다.

재미있어?

석용이 물었다.

아니.

성아가 대답했다.

오늘은 평일이었다.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이 아닌 보통날. 아무 날도 아닌 날. 동우와 석용과 성아는 친구인 유림이 새벽 일찍 자살했다는 연락을 받고 다시 서로에게 연락을 하여 만나기로 했다. 먼저 메시지를 보낸 것은 성아였다. 「일하냐」 「아니」 「만나자」 「그래. 근데 너 지금 누구한테 만나자고 하는 거야?」 「너」 「나?」 「아니 둘 다. 너희 어디야?」 「얘네 집」 「뭐 하는데」 「게임 중이야 방금 우리 건물에 소음을 내는 세입자가 들어왔어. 이거 쓰레기 차 비워야 하나?」 「비우지 마」 「그게 무슨 게임이야?」 「프로젝트 하이라이즈」 바깥에서 만나기로 한 세 사람은 만나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뭔가 좀 이상하다.

석용이 말했다.

비가 온다고 했는데. 비도 없고 엄청 덥기만 하다.

석용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여름은 원래 더워.

동우가 말했다.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야.

석용은 얼굴 위로 쏟아지는 햇빛을 견딜 수 있는 만큼 견디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시야에 남은 태양의 잔상이 눈을 감았다가 뜰 때마다 조금씩 흐트러졌다. 야 뭔가 좀 이상하다……

이렇게 더운데 성질나게 계속 걸을 거야?

성아가 물었다.

밥 먹자.

동우가 대답했다.

세 사람은 보행로 주변에 자리 잡은 간이식당에 들어가 백반을 시켰다.

닭강정 먹고 싶어. 석용이 말했다. 나는 냉동 피자 먹고 싶다. 파인애플 들어 있는 거. 성아가 말했다. 동우는 말없이 서랍에서 젓가락을 꺼냈다. 천장 모퉁이에 비스듬히 달린 선풍기가 일정한 간격으로 소리를 내며 돌고 있었다. 가게의 주인이 주방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백반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고 했다. 동우와 석용과 성아는 백반이 나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 정도야.

성아는 살균기에 들어 있던 컵을 꺼내 물을 담아 마셨다. 동우는 차가운 물이 담긴 컵을 건네받아 뺨에 대고 열을 식혔다. 석용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동전을 주워 식탁 위에 놓았다.

돈 주웠다.

석용이 말했다.

동전이야.

성아가 말했다.

그럼 이거 네가 다 사는 거지.

동우가 물었다.

그럼 내가 다 사지.

석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빌린 돈 안 갚아도 되고.

세 사람은 입을 다물고 백반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동우와 석용은 옆자리에 앉은 남자들이 젓가락으로 두부를 네 등분하여 잘라 먹는 것을 보았고 성아는 보지 않았다. 성아는 카운터에서 배즙을 판다는 글씨를 읽고 있었다. 배 상자. 알코올 버너. 냉장고. 모기향. 맥아 음료. 옥수수튀김. 직접 재배한 재료들로만 만든 햇배 배즙 팝니다. 세 사람은 백반을 다 먹고 식당을 나올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얼마 빌렸는데?

동우가 물었다.

삼만 원.

석용이 대답했다.

세 사람은 유림을 대신하여 원룸에 남아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기 위해 역까지 걸어가다가 누군가 일반호출로 예약해둔 우버 택시를 발견했다. 그것을 몰래 빼앗아 탔다. 성아는 택시를 예약한 사람이 뒤따라올 것도 같아 뒷좌석에 앉아 뒤를 돌아보았다. 정말로 누군가 달려오고 있었다.

온다. 온다.

성아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와? 석용이 성아가 보고 있는 쪽을 함께 돌아보며 물었다. 두 사람은 남자가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떤 것이 속임수라는 걸 알게 되어도 그것에 속으려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언제라도 다시 속을 수 있다고 평소에 두 사람은 생각했다. 빨리. 더 빨리 와야지.

마치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두 사람은 주먹을 쥐고 남자를 노려보았다.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하며 달려오던 남자는 빠르게 택시를 지나쳐 골목을 돌아 사라졌다.

아니었네.

성아가 다시 앞을 보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기대를 했는데 말이야.

석용과 성아와 동우는 얼굴을 모르는 예약자가 앞서 설정해둔 목적지로 가기로 했다.

136번지, 맞아요?

운전기사가 물었다.

네.

세 사람이 대답했다. 택시가 출발했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남서 방향으로 달리는 택시의 속력에 비례하여 엉망으로 흔들거렸다.

에어컨을 틀어둔 택시 안에서 멀미를 하던 성아는 차창을 열고 아까 먹은 것을 토했다. 도로 가장자리에 무성하게 자란 풀 위로 토사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운전기사가 라디오를 끄고 속력을 낮추었다. 옆에 앉은 석용이 성아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조수석에 앉은 동우는 식당에서 가져온 물과 사탕을 성아에게 주었다.

아가씨. 시트에 토해도 돼요. 요즘은 또 벌금을 크게 내게 되어 있어서.

운전기사가 장난을 걸 듯 말했다.

그럴까요?

성아가 물었다. 운전기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바깥에 토를 다 한 성아는 이제 닫힌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졸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꿈인가, 아닌가. 성아는 싱거운 맛이 나는 사탕을 입안에서 굴리는 동안 그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완전히 잠이 들었고 완전히 잠들었기에 꿈을 꾸지는 않았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석용이었다.

어둡고 조용한 밤이었다. 석용은 바람이 흩어지는 소리를 입으로 따라 하며 걷고 있었다. 처음에는 건초 더미가 보이는 들판을 걷고 있었는데 어느새 두 발이 거리에 놓여 있었고 석용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길을 따라 줄지어 심긴 나무와 건물이 많은 거리였다. 건물이 많은데도 오고 가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젖은 도로. 물 냄새. 문을 잠그는 소리. 주유소. 정수기 물통들. 석용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가 오기로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석용은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꿈이겠지.

그때 끝이 둥글게 말린 이파리들이 갑자기 불어온 바람을 맞아 한쪽으로 기울었다. 석용은 복숭아뼈가 묘하게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석용은 검은 물이 고여 있는 그늘진 곳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발이 빠질 뻔했어…… 아니 이미 빠졌나? 석용은 아래를 들여다보다가 두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무섭잖아.

석용은 횡단보도에 다다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주황색 불빛이 깜빡거리는 차도의 신호가 보였다. 그 아래에 차도를 가로지르는 유림이 있었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석용은 유림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유림은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좁은 보폭으로 걸었다. 전등에 목을 매달기 전의 모습으로 목덜미가 희고 깨끗했다. 차도 위를 지나가는 차가 없었기에 유림은 차에 치이지 않고 오랫동안 차도를 돌아다녔다. 뭘 그렇게 열심히 걸어. 석용은 물었다.

어차피 죽을 거면서.

유림은 석용의 말을 듣지 못한 듯 아무 대답이 없었다.

유림이 점점 멀어졌다. 석용은 유림을 따라가지 않고 멀어지도록 두었다. 나는 꿈에서도 쉽게 안 죽어. 석용은 언젠가 유림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만약 가능하다면, 유림이 죽은 뒤에 자신이 무엇을 생각했고 무엇을 보았고 어떤 소리들을 들었는지, 우리가 무엇을 먹었고 얼마나 걸었고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석용은 생각했다.

그런데 기억이 안 나.

석용은 별다른 과정 없이 잠에서 깼다.

여기는 136번지가 아니고 135-2번지인데.

네. 여기예요. 세워주세요.

택시가 멈추었다. 세 사람은 돈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아주 멀리 온 것은 아니었기에 눈에 보이는 풍경이 바로 전 보았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 와본 곳이었다. 임대 표시가 있는 커다란 건물 지하에 식자재 마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세 사람은 시원한 곳에 들어가고 싶어져 폭이 좁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양배추와 토마토, 오이, 버찌, 사이렌이 울리는 장난감을 질서 있게 쌓아둔 자리 옆에서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노랗게 색이 변한 식물들을 종이로 감싸 끈으로 묶고 있었다.

이거 잘 안 죽는다고 했는데.

직원이 말했다.

네가 어떻게 알아.

직원이 물었다.

발주 넣을 때 내가 전화해서 여러 번 물어봤어. 그래서 알아. 그게 뭐? 네가 속은 거지. 내가 속았다고? 그래. 죽었잖아. 절대 그런 일은 없어. 나는 안 속아. 애초에 병든 걸 준 거다 그 개새끼들이…… 어, 야. 거기에 던지지 마. 먼지가 나잖아…… 성아는 직원들이 나누는 말소리를 들으면서 죽은 식물을 빤히 보았다. 물기 없이 말라 죽은 잎이 꼭 옥수수 껍질 같다고 성아는 생각했다. 몸에 상처라고는 없이 곧고 깨끗하다.

보기에 좋아. 그렇지 않냐.

뭐가?

동우와 석용은 같은 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걷는 토끼를 구경하고 있었다.

성아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조금 있다가, 자신이 아까와 같은 말을 다시 한번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두 번이 아니고 다시 한번. 보기에 좋아. 그렇지 않냐.

잠깐만 지나갈게요.

빈 화분을 든 직원이 말했다.

성아는 한쪽으로 물러나 길을 비켜주었다.

감사합니다.

직원이 지나갔다.

토끼를 구경하던 석용과 동우가 성아를 돌아보았다. 와서 토끼 봐. 성아는 석용과 동우가 있는 자리까지 걸었다. 토끼 많아? 성아가 물었다. 한 마리 있는데 이제 잔다. 석용이 대답했다. 석용의 말처럼 토끼는 플라스틱 도막 뒤에 얼굴을 묻고 잠들어 있었다. 코가 움직여.

그사이 동우는 고개를 돌려 마트 벽면에 진열된 양동이와 전선 다발을 보았다. 눈을 둘 곳이 마땅하지 않아서였기 때문에 동우는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것들이 눈앞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우는 전선 다발을 한 손으로 잡고 전선의 개수를 세었다. 하나 둘 여덟 셋 다섯 일곱 아홉 둘 하나.

그거 좋은 거야?

석용이 물었다.

모르겠어.

동우가 대답했다.

고무 피복으로 감싼 게 좋은 건데. 석용이 동우의 손에 있던 전선 다발을 가져와 툭툭 소리가 나도록 진열대를 가볍게 내리쳤다. 그게 감전도 안 되고 쓰기에도 편해. 내가 전에 나사 고장 난 걸 이걸로 묶어서 돌리려다가 사장님한테 혼났거든. 감전된다고. 근데 고무 피복으로 된 거여서 전혀 감전이 안 됐다. 나 그때 아무것도 몰라서…… 석용이 혼자 말을 이었다. 대강 정비소에서 하는 일이 즐겁고 직업 교육을 잘 받아 무사히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동우는 석용의 말을 전부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석용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들으며 엉킨 전선을 풀어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두었다.

내 말 듣고 있어?

석용이 물었다.

어.

동우가 대답했다.

집 얘기를 했나 봐요, 걔가. 지 기분이 나쁘다고.

통화를 하고 있던 남자가 동우의 어깨를 밀치고 지나갔다.

동우는 가만히 있었다.

사과를 안 하네.

석용이 말했다. 왜 사과를 안 하지?

세 사람은 가만히 있었다. 아직 사용하지 않은 박스가 가득 쌓여 있고 바깥을 내다볼 창문도, 시계도 없는 장소에 머무는 일에 다시금 싫증이 났다. 들어야 할 나쁜 소식을 듣지 않으려고 열려 있는 문 앞을 서성이며 매일같이 그곳을 지키고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커다란 벽이 나타난 꿈속에서, 아무리 벽을 밀어도 소용이 없을 때의 기분과 비슷했는데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그러다 언젠가 벽이 무너지면 미뤄두었던 모든 나쁜 소식들을 한꺼번에 듣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겪어야 할 모든 불행들을 한꺼번에 겪게 된다면 좋을 거야. 치료랄 것도 없이 단번에 죽게 될 거야.

세 사람은 마트 뒷문과 이어지는 계단을 올랐다.

돌로 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금세 바깥이었다. 마트 뒤편은 상가 건물에 가려져 대부분 그늘져 있었고 환풍구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는 도매상들이 모여 있어 말린 잎을 태우는 냄새가 났다. 그들은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를 내버려두고 운구차와 가스통, 소매치기, 육교, 그리고 소바 가게와 한밤에 깊은 잠을 자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세 아이의 아버지가 울고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수수께끼를 내볼게.

석용이 말했다.

마지막 계단을 반쯤 밟고 올라선 채였다.

들어봐. 늦은 밤 한 여자가 우산을 쓰고 혼자 공원에 서 있었어. 우명雨明이라는 여자였다. 비 오는 밤 달이 환하게 뜬 자리 아래에서 태어나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데 그날 정말로 비가 내렸던 것인지 달이 환하게 뜬 밤하늘을 정말로 태어나자마자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인지는 죽은 어머니가 알려주지 않아 알 수 없었어. 아버지가 알려줄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인지 우명은 살아 있는 아버지에게는 아무것도 묻고 싶지 않았지. 우명이 우산을 쓰고 혼자 공원에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한 우산을 쓴 여자들이 우명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어. 안녕 안녕 포장지가 빗물에 젖어서 못 먹고 있는 거야? 여자들은 모두 술에 취해 있었고 우명의 팔에 매달려 우리 여기서 달리기 한 번만 하자, 달리기 한 번만 하자, 하고 마치 으름장을 놓듯이 말했는데 정말로 달리기를 하지는 않았어. 우명은 한 번 두 번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그것이 이상하다 생각되어 어째서 달리기를 하지 않냐고 물었지. 달리기를 하자고 하고서, 저기까지 전력으로 달려가 저 불어난 깊은 강물에 금방이라도 몸을 빠뜨려 죽을 것처럼 굴면서 어째서 정말로 달리기를 하지는 않냐고 말이야. 그러자 여자들은 크게 웃었어. 즐거워서가 아니라 즐거워야만 해서 그런 것 같았다. 여자들은 대답을 하지 않고 떠났어. 가로등 아래를 지날 때마다 여자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고 그 밝고 환한 가로등 불빛이 여자들을 아주 지쳐 있거나 어딘가 병든 사람들처럼 보이게 했어. 여자들이 떠난 뒤에도 우명은 우산을 쓰고 혼자 공원에 서 있었어. 계속해서 불어나는 강물이 있는 곳을 바라보면서 우명이 어떤 생각을 했다고 하는데 생각을 했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그 생각이 무엇이었는지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고 구전으로도 내려오지 않아 알 수가 없다고 해.

이제 여기서 수수께끼야.

여자들은 어째서 달리기를 하자고 말하고는 정말로 달리기를 하지는 않았을까?

비 소식이 있었는데도 여전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전과 같이 날이 무더웠다. 지상으로 올라온 세 사람은 그늘을 벗어나자마자 피부에 닿는 열기에 곤죽이라도 된 것처럼 늘어져 울타리에 걸터앉았다. 풀벌레가 우는 소리가 시끄러워 맥박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몸을 단련하는 여자들이 땀을 흘리며 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또 무엇이 보이나 무엇을 볼 수 있나 생각하면서 세 사람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안전장치가 세워진 산책로 너머로 보이는 한강을 보았고 그 옆에 대학 병원과 아파트 단지가 있는 것을 보았다. 초인종 단추와 작업장 계단, 외래 진료소. 지붕 아래에 있는 반투명한 창문들. 유도 표지판. 시위대의 해산 소리.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데 같은 방식으로 남아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게 돼. 뭐가? 세 사람은 왜 그것들을 보고 있는지 잘 모르고 서서, 언제 고개를 돌려야 하는지 모른 채로 그것들을 보고 있다가 피곤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너무 덥다.

석용이 말했다.

저기 밑에 아파트 이름이 뭐야.

성아가 물었다.

몰라. 안 보여.

동우가 대답했다.

자전거를 탄 학생들이 뜨겁고 습한 바람을 일으키며 방향을 비틀어 세 사람의 앞을 지나갔다.

중국인들이 저기에 많이 살아. 석용이 말했다. 낮에 와서 주소지 적고 간 거 보면…… 걔네 차 좋은 거 많이 탄다. 석용은 정비소에 값비싼 차를 맡기고 수리 기간에 대해 따져 묻지 않는 중국인들을 포치라고 불렀고 그들을 좋아했다. 수리 기간을 길게 늘려 말하고, 늘려 말한 그 기간 동안 몰래 차를 운전할 수 있어서였다. 걔네는 돈 벌고 쓰는 일 말고는 하나도 몰라.

웃기게 말하네. 그거 말고 다른 것도 알아야 되냐?

성아가 물었다.

성아의 물음에 석용이 짧게 웃다가 말았다.

알아야지.

석용이 대답했다. 그거 말고 다른 것도 당연히 알아야지 좆같게 뭘 물어?

너네 싸울 거야?

동우가 물었다.

아니.

두 사람이 대답했다. 화해했어.

세 사람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자판기에서 탄산이 있는 음료수를 한 개 뽑아 나누어 마셨다. 세 사람은 약국에서 약봉지를 들고나오는 노인들을 보았고 연달아 이어지는 알 수 없는 기계음을 들었고 빈 페트병을 번갈아 나누어 들고 걷다가 공을 주우러 가는 아이와 아이의 엄마에게서 나는 익숙한 세정제 냄새에 잠깐 동안 유림을 떠올리게 되어 뭐야 어디에 있는 거 아니야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런데 너는 새벽에 어디에 있었어, 하고 서로에게 묻지는 않았다.

세 사람은 서로에게 이런 것을 물었다.

너무 덥지 않아?

어쩌면 다른 것들을 물어볼 수도 있었다. 이를테면 어떻게 이런 상태를 계속 견딜 수 있는지. 한 번도 원해본 적 없는 시간이 뒤범벅된 얼굴로 온종일 난간에서 떨어지는 공상에 빠지면서도 어떻게 두 발을 움직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걸을 수 있는지. 오직 바다만을 생각하며 모래알 쌓인 해변을 걷다가 어떻게 곧바로 뒤를 돌아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웃고 졸고 인사하고 일하고 떠들고 시도하고 경고를 받고 잠들고 깨어나 거울에 비친 생김새를 확인하고 사람들이 나오는 영상을 재생하여 어떤 것은 쓰러지고 어떤 것은 만개하는 것에 대해, 그것들을 안정된 자세로 보기 위해 노력을 하여 자세를 고치고 무리를 짓고 다시 혼자가 되어 그럼에도 안정된 자세를 갖지 못해 어색하게 몸을 구부리고 서서, 발생을 알지 못하는 질병에 머릿속이 어떻게 온통 불구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이야 뭐가 잘못되었나?

그러나 세 사람은 묻지 않았다.

대답을 궁금해하기가 아무래도 어려웠다.

야 너무 덥지 않아?

유림이 살던 단지에 도착한 세 사람은 먼저 자전거 대여소에 들러 자전거를 빌렸다. 세 사람은 돈을 지불하고 공공 자전거의 페달을 굴러 유림이 살던 동네를 말없이 돌아다녔다. 유림이 그동안 오고 가며 여러 번 보았을 풍경을 동시에 한꺼번에 보았다. 가끔 눈이 부셨다. 정면으로 불어오는 미지근한 바람이 열이 오른 세 사람의 이마를 서서히 식혀주었다. 나뭇가지를 꺾으며 놀고 있던 무리들이 차도를 사이에 두고 세 사람을 보았다. 전시회에 다녀온 관람객들이었다. 관람객들은 전시회에서 그림과 도형을 보았다.

자전거를 잘 배웠다.

관람객들이 말했다.

성아는 자전거를 타고 있다는 이유로 유림의 남동생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석용의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고 동우는 자신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자전거를 세우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유림의 남동생이 보낸 것이었다. 「전화를 안 받아서요. 안치했어요. 언제 올 건지 알려줘요.」

언제? 동우는 잠깐 생각을 하다가 답장을 보냈다.

「집 정리 끝내고 갈게. 정리를 다 하면 가.」

동우는 핸드폰 화면을 끄지 않고 그대로 켜두었다. 성아와 석용이 뒤늦게 자전거를 세우고 동우를 돌아보았다. 동우가 멈춰 선 자리에서부터 이미 멀리 떨어져 있어 동우의 눈에 두 사람은 아주 작게만 보였다. 「너무 늦으면 못 기다려요. 여기 절차대로 할 거라서요.」 동우는 너무 늦는다는 게 어느 정도의 시간을 말하는 것인지 가늠해보았다.

「알겠어」

동우는 답장을 보냈다.

동우는 성아와 석용이 있는 곳까지 자전거를 끌고 갔다. 두 사람은 폐기물 스티커가 붙어 있는 이인용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덥고 졸리다. 한쪽 팔걸이가 칼로 그어져 있어 그 안에 고무 밴드와 스프링이 엉겨 있는 것이 보였다. 성아가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등을 떼자 접착제로 맞붙인 것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동우는 두 사람이 자전거를 세워둔 자리 옆에 자신의 자전거를 세웠다. 너 내일 뭐 해. 성아가 물었다. 내일 뭐? 일해야지. 동우가 말했다.

얘는 버스 타러 간대.

석용이 성아를 가리켰다. 성아는 어딘가로 이동하는 버스나 택시를 타면 잠을 잘 잤고 그것을 알게 된 이후로 주로 이동 구간이 긴 버스에 올라타 잠을 잘 잤다. 택시는 목적지를 말해야 했기 때문에 혼자서는 타지 않았다.

너 이제 기사 아저씨가 얼굴 외운다. 자꾸 안 내려서. 알지. 다음부터 안 태우려고.

누가 내 얼굴을 외워.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 배를 걷어차이는 소리가 들렸다. 물을 먹은 솜이불을 막대로 털어 말리는 소리로 들을 수도 있었지만 세 사람은 그것이 누군가 배를 맞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거리가 비어 있어 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세 사람이 각자 있는 자리에서 고개를 돌리자 다섯 명의 남자들이 보였다. 숨어 있지 않았기에 계속 보고 있어도 되었다.

너는 타고났어. 뭐가 더 나은지 봐봐.

나이가 가장 어려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체구가 큰 편은 아니었고 그을린 피부에 머리숱이 많았다. 뭐가 더 나은지 보라는 남자의 말에 세 사람의 남자가 배를 맞은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동우와 석용과 성아도 뭐가 더 나은지에 대해 생각하며 남자를 보았다. 내가 말 안 했어. 나 아니야. 그 얘기를 모르는 사람도 있어? 나는 아니야. 남자가 말했다. 오해가 있어.

나이 어린 남자는 땅에 쓰러진 남자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고는 남자의 얼굴을 치료해주려는 듯이 턱을 잡고 입에 작은 공을 물렸다. 석용이 한 발 앞으로 갔다. 너는 타고났어. 뭐가 더 나은지 봐봐. 남자는 그만 무릎을 펴고 일어나 땅에 쓰러진 남자의 얼굴을 걷어찼다.

네 사람의 남자가 조용한 얼굴로 세 사람을 보았다. 세 사람은 피가 울컥울컥 쏟아지는 남자의 입을 보고 있었다.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이럴 때는 비가 와야 하는데.

뭐가 와? 이가 다 빠졌어.

성아가 말했다.

네 사람의 남자가 세 사람에게서 등을 돌려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나무줄기에 기대앉은 남자는 잠깐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턱 아래로 떨어지는 피를 닦으며 그들을 뒤따라갔다. 성아와 석용과 동우는 아무렇게나 쏟아져 있는 피 냄새를 잘 참아냈다.

세 사람은 지도 앱을 켜서 가까운 자전거 대여소를 찾았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로 했다. 앞서 돈을 지불한 시간을 넘겨 초과요금이 나왔다. 세 사람은 초과요금을 지불하고 값을 암산했다. 오 분을 더 탈 때마다 이백 원이라는 거야. 성아가 암산이 빨랐다. 세 사람은 대여소 근처의 은행을 지나가다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은행의 유리문이 열릴 때마다 에어컨 바람이 흘러나왔다. 발이 식었다. 세 사람은 유리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모습을 보면서 동시에 열린 문 사이를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보았고 담배를 피우지는 않았다. 얼굴 가까이에 불이 있는 것이 싫었다. 연습을 하면 돼. 연습을 하면 괜찮아. 연습을 많이 하면 뭐든 다 잘하게 되니까…… 한 명씩 찾아가서 죽여버리면 된다.

석용이 아까부터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동우와 성아는 석용이 같은 말을 반복할 때마다 그것을 반복하여 들었다. 이따금 맞다고도 했다. 네 말이 맞아. 연습을 하면 뭐든 다 잘하게 돼.

세 사람은 다시 걸었다. 세 사람의 옆으로 네 사람의 여자와 두 사람의 남자, 그리고 모자를 쓴 기계공이 지나갔다. 이대로 보행로의 중심에서 비껴나 조금 더 걸어가면 오래된 주택과 수영장이 나타날 것이었다. 수영장이 눈앞에 나타나면, 수영장의 높은 난간에 매달린 과거의 기억들을 새롭지 않게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었다. 사람을 졸리게 하는 발소리. 백열등. 발코니. 라디오 행진곡. 일요일. 점호. 해열제. 포도당 알약들. 그러나 세 사람은 거기까지 걷지 않았다.

세 사람은 걷다가 멈추어 섰다. 재개발로 새롭게 골조를 세워둔 건물 아래에 서자 세 사람의 얼굴에 여러 겹으로 그림자가 졌다. 하늘이 맑았다. 얼굴이 따가웠다. 작은 사탕 봉지를 주머니에 넣고 땀을 흘리는 노인이 세 사람을 마주 보며 천천히 걸어왔다. 유림의 옆집에 사는 노인이었다. 노인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바람이 조금씩 불어올 때마다 핸드폰을 쥐고 있지 않은 손을 아래로 뻗어 손바닥에 밴 땀을 말렸다. 노인이 말하기를, 새벽에 옆집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고 했다. 아주 큰 소리였어. 대체 뭐가 그렇게까지 무거운가 싶어 벽 너머로 귀를 기울였는데 내내 조용하여 다시 잠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좋은 꿈을 꾸었다고.

세 사람은 노인의 말을 들었다. 노인을 한 번 보았다. 노인은 세 사람과 잠깐 가까워졌다가 이내 엇갈려 멀어졌다. 네 말이 맞아.

연습을 하면 잘하게 돼.

그늘을 쫓아 돌아다니던 세 사람은 마치 그곳에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처럼 다시 단지 앞에 도착했다. 그 옆, 골목과 골목이 만나는 장소에 웅크려 앉아 숙제를 불태우고 있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이가 지핀 불을 피해 돌아서 걷다가 세 사람은 아이가 너무 덥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 사람은 일부러 기척을 냈다. 아이가 불을 앞에 두고 졸고 있었다. 야. 너 일어나. 아이가 잠에서 깼다. 자신을 깨우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세 사람은 아이가 잠에서 깨는 것을 확인하지 않고 아이를 지나쳤다. 아이는 땀과 재로 번들거리는 얼굴을 들어 세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조금도 닮지 않은 세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는 작문 시간에 배운 시를 떠올렸다. 시인은 기억하지 못했고 제목을 기억했다. 아이는 수업 시간 동안 억지로 암기했던 구절을 따라 혼자 중얼거렸다. 이곳에 액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 물려준 가벼운 액자 개는 풍경 속에서 보호받고 있다 강가에 놓인 개구리 한 마리 먹다 남은 케이크 셀룰로이드 창문들 멋지게 세운 집이에요 이곳은 안전해요 아이는 억지로 암기한 구절을 틀리는 법이 없었고 스스로 그것이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아이는 작아진 불씨를 발로 비벼 끄고 가방을 뒤집어 뜯은 풀과 먼지를 털었다. 뒤에 이어지는 구절이 있었는데. 아이는 생각했다. 암기하지 않은 구절이었다. 아이는 뒤에 이어지는 구절을 소리 내어 읽고 암기하고 싶어졌다. 그냥 뭔가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를 외우는 것은 아이의 숙제 중 하나였기 때문에, 시가 적힌 종이는 이미 불에 타 사라진 뒤였다.


Today`s HOT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황폐해진 칸 유니스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