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더 나은 세상으로…체념하지 않고 나아가는 힘 ‘가족’

이길보라

다시 태어나도 나의 자녀로 태어나줘

영화 <학교 가는 길>에서 장애학생 부모가 서울 강서구 가양동 임대아파트와 폐교된 공진초등학교 부지를 바라보는 모습. (주)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학교 가는 길>에서 장애학생 부모가 서울 강서구 가양동 임대아파트와 폐교된 공진초등학교 부지를 바라보는 모습. (주)영화사 진진 제공

“농인이라서 방법 없다”며
부당에 항의 않던 나의 부모
비로소 알게 된 불평등 사회

특수학교 짓기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

농인이던 부모를 통해
발달장애 자녀를 통해
세상을 보고 사회를 말하고
차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건 좀 괜찮은 일이다

영화를 찍겠다고 엄마, 아빠를 인터뷰했을 때다. 학교생활은 어땠냐고 묻자 엄마가 말했다.

“매일같이 벽돌 날랐어. 학교에서 배우는 거 하나도 없었어. 기숙사에 살았는데 새벽같이 일어나 건축 자재를 나르며 학교 건물을 직접 지어야 했어.”

아빠는 맞장구를 쳤다.

“맞아.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은 매일 새벽에 강제노역 했어. 나는 집에서 통학을 했는데 오후에도 노역을 하곤 했어.”

엄마는 힘들고 버거워 제발 통학하게 해달라며 부모에게 졸랐다고 회고했다. 나의 부모, 이상국과 길경희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청각장애 및 지적장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수학교인 대전 원명학교에서 초·중등 교육을 받았다. 당시 학교에서의 강제노역은 일상과도 같았다.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지 왜 건물을 지어야 했느냐고 묻자 엄마는 선배들은 더했다고, 우리는 그나마 남는 시간에 수업이라도 했지 선배들은 단 한 시간의 수업도 없이 하루 종일 강제노역을 했다고 말했다. 화를 내거나 끔찍해할 법도 한데 과거를 회상하는 엄마와 아빠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허탈하게 웃었다. 잘 모르겠지만 그땐 다들 그랬다고. 그래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건 비단 둘만의 일이 아니었다. 대전 지역뿐 아니라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특수학교에서는 이와 같은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수업 시간은 어땠는지 물었다. 아빠는 교사가 수어를 몰라 음성언어로 수업을 했다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 엎드려 자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손으로 말했다. 나와 부모의 생을 알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는데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교육권을 침해받았으니 따져 묻고 항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부모는 늘 해왔던 말을 반복했다.

“농인 때문 방법 없다(농인이라 어쩔 수 없어).”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16) 더 나은 세상으로…체념하지 않고 나아가는 힘 ‘가족’

농인 부모를 통해 ‘듣는 권력’을 가진 나를 바라보기

부모는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으로 살아왔다. 자신의 언어인 수어로 제때 교육받지 못했다. 나의 엄마, 길경희는 열한 살이 되어서야 농학교에 입학했다. 기숙사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손과 얼굴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처음으로 언어라는 것을 배웠다. 수어로 숫자를 세는 법을 익히고 과학 실험도 하고 한국어를 읽고 쓰는 법도 배우면 좋았겠지만 특수교육의 한계로 그럴 수 없었다. 교육권을 비롯한 시민권, 자유권, 복지권과 같은 아동의 권리가 침해되었다. 그러나 모두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무엇이 자신의 권리인지 배우지 못했다. 의문을 품고 항의하더라도 말을 제대로 통역해줄 사람이 없었다. 언어·문화적 소수자로서 체념하게 되는 일만 반복되었다. 엄마는 그래도 학교에 다닐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학교 선생님이 수어를 잘하지 못해도, 학교에서 배우는 거 없이 벽돌만 날라도, 급식이 부실해도, 농인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성추행과 같은 일이 벌어져도 “농인 때문 방법 없다”고만 말했다. 광주에 위치한 농학교인 광주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아동 성폭력, 아동 학대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도가니>가 개봉하여 큰 화제가 되었을 때 엄마와 아빠는 놀라지 않았다. 원작 소설을 쓴 작가가 실제 일어난 사건 중 10분의 1 정도만 썼다고 말했을 때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의 태도를 쉽게 이해할 수 없어 나처럼 농인 부모에게서 나고 자란 코다를 만났다. 그들의 부모 역시 학교에서 강제노역을 했던 경험이 있었다. 대다수가 그런 경험을 했는데 어째서 이 사안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지, 당사자인 농인은 왜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 구조와 맞서 싸우지 않고 단념하기를 반복하는지 물었다. 차별과 배제의 경험이 쌓여 체념적 태도를 갖게 되는 건 알겠지만 가끔은 당사자가 싸울 의지가 없는데 농인도 아닌 내가 분노하며 항의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 하자 코다 하나가 말했다.

“우리는 농인 부모와 달라요. 우린 청인으로 태어나 음성언어로 더 나은 교육을 받고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죠. 들을 수 있기에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고요. 코다는 ‘듣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는 청인 기준으로 보면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지만 농인의 경험은 코다와 청인의 것과는 다르다고. 코다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농사회와 청사회의 접점에서 두 가지 사회를 모두 경험했기에 이를 바탕으로 농인의 조력자이자 지지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관점에 따라 방법과 방식은 다를 수 있고 그들의 속도를 존중하며 협력해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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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동의 부모가 되어 다양성을 포용하는 사회를 말하기까지

2021년에 개봉한 영화 <학교 가는 길>은 서울 강서구의 특수학교인 서진학교를 개교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지역사회 갈등과 장애학생 부모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감독은 강서구에 특수학교가 단 하나뿐이라 매일 스쿨버스를 타고 무의미하고 지루한 표정으로 버스에 앉아 왕복 4시간이라는 통학 시간을 거쳐 학교에 다니는 발달장애 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시선은 장애학생들에서 부모로 옮겨간다. 부모들은 ‘강서구에 내 아이가 다닐 학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단하고도 당연한 마음을 품는다. 서울시 교육청과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폐교된 강서구 가양동의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특수학교를 설립하자고 주장하지만 이는 가양동 주민들의 ‘장애인이 싫어서’ 혹은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땅값이 떨어져서’라는 지역이기주의에 부딪힌다. 이에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가양동에 특수학교를 짓기 위한 투쟁을 전개한다.

영화는 장애학생 부모와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단순한 선악의 구도로 그리지 않는다. 이 문제는 가양동 주민들의 지역이기주의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가양동의 실패한 주택 정책 및 정치 공약으로 형성된 지역 일대의 특수성을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1990년대 초반 가양동 일대에 영구 임대아파트가 집중적으로 건설되자 대규모 단지 아파트에 사는 부모들은 저소득층이 사는 임대아파트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 아이를 보낼 수 없다는 민원을 제기한다. 서울시 교육청의 승인으로 대규모 단지 아파트 학생들은 길 건너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임대아파트 학생들은 공진초등학교에 다니게 된다. 당시 공진초 전교생의 70%가량이 기초생활수급자로 한부모가정과 조손가정, 소년소녀가장 등 저소득층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임대아파트 단지의 고령화로 인해 학생 수가 줄어듦에 따라 공진초등학교는 폐교를 결정한다. 공진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지역 주민을 상대로 학교를 지켜달라는 운동을 하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다. 2015년 2월 공진초등학교는 폐교된다.

그 자리에 장애학생 부모들이 특수학교 설립을 인가해달라며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무릎을 꿇는다. 2017년 9월 강서구 서진학교 설립을 위한 주민설명회에서의 장면이다. 그러나 공진초등학교 폐교를 막기 위해 싸웠던 이들은 특수학교 건립을 위해 투쟁하는 장애학생 부모들에게 연대하지 않는다. 감독은 가양동 일대의 역사적·지역적 맥락을 보여주며 이는 단순한 장애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분리 욕망’이 투사된 사건이며 계급과 계층을 나누는 구분 짓기의 유구한 역사라는 점을 짚는다.

집 앞에서 장애인을 보고 싶지 않다고 악을 쓰는 주민들 앞에서 특수학교 설립 운동 당사자는 말한다. 나도 장애를 가진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몰랐다고, 당신들처럼 장애인과 특수학교 설립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고, 그런데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게 되면서 이 문제는 나의 것이 되었다고, 당신과 나는 그렇게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말이다.

2020년 3월 서진학교는 마침내 개교한다. 그러나 2017년 무릎을 꿇으며 호소했던 어머니들 중 몇몇은 투쟁이 길어져 정작 자신의 자녀들을 서진학교에 보내지 못한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반짝이는 얼굴로 기뻐한다. 그들은 발달장애인은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갈 데가 없다며 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연립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길고 긴 투쟁 속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사안과 관점을 확장한다. 장애 아동의 교육권으로부터 출발한 문제는 다양한 몸과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장애학생 부모들은 2017년 9월5일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주민토론회에서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호소했다. 영화 <학교 가는 길>의 한 장면. (주)영화사 진진 제공

장애학생 부모들은 2017년 9월5일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주민토론회에서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호소했다. 영화 <학교 가는 길>의 한 장면. (주)영화사 진진 제공

가족은 차이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장소

영화 <학교 가는 길>의 하이라이트는 서진학교의 개교이지만 눈물 나게 아름다운 장면은 바로 결말이다. 길고 긴 투쟁을 해왔고 또다시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의 일상적 투쟁을 해나가는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영상 편지를 보낸다.

“네가 이 세상에 온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를 좀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 같아.”

김정인 감독은 평소 장애 문제에 관심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딸을 둔 부모 입장으로 토론회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길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에게 이 작품은 자신의 딸과 딸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영상편지다.

농인, 소인, 다운증후군, 자폐증, 정신분열증, 신동, 강간으로 잉태된 아이, 범죄자가 된 아이, 트랜스젠더 등의 예외적인 정체성을 가진 자녀를 둔 가족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부모와 다른 아이들>에서 앤드루 솔로몬은 “가족은 차이를 둘러싼 관용과 불관용의 시험대이며, 차이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이런 과정이 강조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시급한 장소”라고 쓴다.

평생을 비장애인으로 살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양육하면서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고, 다음 생에도 그다음 생에도 엄마가 한빛이 엄마 할 테니까 그때도 엄마 아들로 태어나줬으면 좋겠다고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말하는 장애학생 부모를 보며 확신한다. 서로 다른 정체성과 몸의 서사를 가진 이의 가족이 되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비록 그 과정이 쉽지 않더라도 말이다. 솔로몬은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의 부모에게 요술 지팡이가 생긴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다. 그들은 내 아이에게서 당장 다운증후군을 없애겠노라고, 그러나 장애 아동의 부모로서 경험한 것들은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 경험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고 지금의 우리가 어쩌면 다른 삶을 살았을 우리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농인 때문 방법 없다”고 말하는 농인 부모의 얼굴 표정을 떠올린다. 그건 단순한 체념이 아니다. 유구한 억압과 차별의 역사 속에서 생겨난 생존 전략이다.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음성언어로 말할 수 있는 나는 얼굴 표정과 손을 움직여 말하는 부모를 경유하여 이 사회를 바라본다. 장애 아동을 둔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소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보게 되었다는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그들의 말처럼 그건 좀 괜찮은 일이다.

■이길보라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16) 더 나은 세상으로…체념하지 않고 나아가는 힘 ‘가족’

영화감독이자 작가이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 자질이라고 믿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든다. 저서로는 <반짝이는 박수 소리> <우리는 코다입니다>(공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당신을 이어 말한다> 등이 있고, 연출한 영화로는 <로드스쿨러>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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