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양이들의 아파트’ 정재은 감독 “도시의 이웃에 대한 책임감, 모두에게 필요”

오경민 기자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에 살던 고양이 깜이. ㈜엣나인필름·메타플레이 제공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에 살던 고양이 깜이. ㈜엣나인필름·메타플레이 제공

1979년 준공된 서울 강동구의 둔촌주공아파트 164개동에는 5930세대가 살았다. 40년 세월동안 아이들은 어른이 됐고 묘목이었던 나무가 모여 울창한 숲을 이뤘다. 살기 좋은 아파트에 고양이들도 터를 잡았다. 주민들의 손을 탄 고양이들은 길고양이와 집고양이 사이 ‘아파트 고양이’로 거듭났다. 수년간 몇 번씩이나 동네를 뒤숭숭하게 만든 재건축 소식은 2017년 5월 관리처분계획 인가가 떨어지면서 그 일정이 확정됐다. 사람들은 이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고양이들은 영문을 몰랐다. 당시 둔촌주공아파트에는 250여 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해야 할 천국’이라 생각해 둔촌주공아파트를 찾은 정재은 감독은 고양이들과, 고양이를 살리려는 이들에 주목했다. 2017년 5월부터 철거 공사 직전인 2019년 12월까지 촬영해 다큐멘터리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를 완성했다.

정 감독은 최근 기자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아파트 재건축이 확정된 이후 고양이들을 만나게 됐다. 사람들에게 친근하고 영양상태도 좋아보였다. 아파트 단지가 큰데 철거가 되기 시작하면 나가는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이쪽으로 나가면 된다는 것을 어떻게 전해줄까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고 촬영 계기를 설명했다.

정재은 감독은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철거 전 고양이들의 이주를 기록했다. ㈜엣나인필름·메타플레이 제공

정재은 감독은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철거 전 고양이들의 이주를 기록했다. ㈜엣나인필름·메타플레이 제공

고양이들을 그냥 내버려 두면 비극이 될 게 뻔했다. 일단 아파트를 부수기 시작하면 고양이를 구조할 여유를 기대하기 어렵다. 겁에 질린 고양이들은 더 구조물 안으로 파고들어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평소 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던 주민들이 모여 ‘둔촌냥이’ 모임을 만들고 고양이 이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람과 친한 고양이들은 각자 직접 입양하거나 타지로 입양을 보냈다. 가까운 옆 동네로 밥자리를 이동해 그곳에 스며들게 하기도 했다. 한 마리씩 고양이를 포획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겨우 옮겨놓은 고양이들은 귀소본능 때문인지 위험한 차도를 건너서 원래 살던 아파트로 돌아갔다. 영화에 출연한 주민들의 물음에서 답답함이 전해진다. “무슨 일 있었어? 친구들 다 어디 갔어? 도대체 말을 할 줄 알아야지. 답답하다.” “진짜 너네 여기서 살고 싶어서 돌아갔냐고 물어보고 싶어요.”

정재은 감독. ㈜엣나인필름·메타플레이 제공

정재은 감독. ㈜엣나인필름·메타플레이 제공

정 감독은 둔촌주공의 고양이 이주 프로젝트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그는 “고양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가들이 모였고, 주민과 동물단체가 만나 고양이 이주 방법론을 고민했다. 구청과 재건축 조합도 고양이 이주에 협조했다”며 “고양이를 구조할 수 있도록 조합에서 협조한 것, 구청에서 돕도록 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 처음 같이 해본 것이기 때문에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 경험이 다른 지자체, 다른 재개발·재건축 때 좋은 사례로 보여질 것 같다”고 했다.

새로운 대통령 당선인이 부동산 관련 각종 규제 완화를 예고한 가운데 ‘재건축 시대’가 시작됐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오래된 동네에 자리 잡은 동물들을 위한 대책 역시 구체화해야 하는 시점이다. 좋건 싫건 고양이는 명백히 도시의 이웃이다. 서울시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시내에 11만6000마리가 넘는 고양이가 살고 있다. 정 감독은 “지구상에 이제 아주 순수한 야생의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 식물 모든 것이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사람이 보호하지 않으면 특별한 숲, 나무조차 존재할 수 없다”며 “동물 이슈에 있어서도 모든 동물이 사람의 영향과 권력 아래 놓여 있다. 사람들이 고양이라는 동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길고양이가 많아진 측면도 있다. 그런데 수가 늘어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한다”고 했다.

고양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도시의 고양이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정 감독은 도시에 함께 사는 약한 존재들을 위해 모두가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 했다. 그는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인구 밀도가 갑자기 높아지는 짧은 도시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사람의 눈으로만 도시를 봐 왔다. 그러나 도시에도 생태계가 형성됐고, 다른 생명체들이 분명히 같이 존재하고 있다.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시민이나 관객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소수의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어느 정도 수위의 관심과 책임감을 가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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