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들이 한집서 잘 살까, "가족이라며 넘는 '선', 남과는 지키니까", '조립식 가족'의 이민정 PD

오경민 기자

혼인·혈연 아닌 ‘남’들의 동거 그린 ‘조립식 가족’

11일 종영…이민정 PD 인터뷰

댄서 립제이(왼쪽)와 모니카 | tvN제공

댄서 립제이(왼쪽)와 모니카 | tvN제공

배우 김대명, 현봉식, 이천은(왼쪽부터) | tvN 제공

배우 김대명, 현봉식, 이천은(왼쪽부터) | tvN 제공

유튜버 임라라(왼쪽)와 손민수 | tvN 제공

유튜버 임라라(왼쪽)와 손민수 | tvN 제공

“내가 만약에 별 모양이면 너는 동그라미라고 (생각해요). 근데 별이랑 동그라미가 이렇게 맞아 한 모양이 될 수 없어요. 나는 별 모양인 걸 알고, 너는 동그라미인 걸 알고 서로 그걸 알고 인정하면 되는 거죠.”

지난 11일 종영한 tvN <조립식 가족>에서 댄서 모니카가 동료 립제이와 ‘함께 사는 비결’에 대해 답한 내용이다. <조립식 가족>은 혼인·혈연 등 제도로 엮이지 않은 이들이 한집에서 사는 모습을 다룬 예능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민정 PD를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 PD가 프로그램의 밑그림을 그린 것은 2019년 김하나·황선우 작가가 펴낸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으면서다. 책은 혼자 사는 삶을 즐기던 작가 둘이 함께 대출을 받아 집을 산 뒤 고양이 네 마리와 살아가는 매일을 그린 에세이다.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살고 있는 이 PD는 혈연이나 혼인으로 묶이지 않아도 공동으로 부동산을 구매해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조립식 가족’으로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해도 당시엔 마땅한 주인공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Mnet 댄스 경연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모니카와 립제이를 발견했다. 팀 프라우드먼의 멤버이자 OFD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둘은 여러 차례 집을 옮겨다니면서도 함께 살고 있었다. 둘은 알고 지낸 지 13년, 같이 산 지는 6년째다.

넷플릭스 시리즈 <D.P.>에서 헌병대장 역을 맡았던 배우 현봉식과 동료 이대명의 집에 또 다른 동료 이천은이 합류했다. 유튜브 ‘엔조이커플’ 채널을 운영하는 임라라·손민수 커플은 이제 막 동거를 시작했다.

섭외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모니카와 립제이는 자신들의 일상이나 관계가 왜곡돼 비춰지거나 둘 사이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했다고 한다. 연예인이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결혼·육아 예능 섭외 물망에 오르지만, 동거를 한다는 소식은 찾기 쉽지 않았다. 제작진은 최근 대중의 관심을 사고 있는 이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려 “혼자 사세요. 누구랑 같이 사세요”를 물어본 뒤 현봉식 가족을 섭외했다. ‘엔조이커플’의 섭외도 간단치 않았다. 200만 구독자가 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지만 동거 사실을 밝히고 그 모습을 TV를 통해 내보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혼자 살면 편하지만, 같이 살면 좀 더 동적인 일상을 얻을 수 있다. 지친 마음을 환기하고 에너지를 얻는 데 동거인과의 대화만큼 효과가 빠른 것도 드물다. 대학 때 서울에 와 오랜 기간 혼자 살았다는 이 PD는 “10년 가까이 혼자 살다 결혼을 했을 때, 집에 가면 이야기할 사람이 있다는 게 가장 좋았다. 밖에서 술을 마시거나 누군가 붙잡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집에 가면 내 푸념을 들어줄 사람이 있었다”며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내가 먼저 씻을까’ ‘저녁은 뭐 해먹을까’와 같은 동거인과의 일상적인 대화가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게 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력을 합치면 더 나은 집에 살 수 있다는 것도 동거의 장점이다. 모니카·립제이의 집에는 최근 동료 댄서 카메까지 세 명이 함께 살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에 나온 것보다 더 크고 좋은 집으로 이사했다. 모니카는 이 PD에게 “내가 서울에서 이렇게 괜찮은 집을 소유할 수는 없지만, 서로 경제력을 합치면 공유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PD는 “사는 게 팍팍한 젊은 친구들이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같이 살 수 있는 공동 주거를 대안으로 삼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덥썩 아무 사람하고 함께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PD는 “섭외 때 ‘조립식 가족’으로 살고 있는 사람을 찾다 보니 직군이 비슷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며 “배우 현봉식씨가 처음 서울에 와 음악인들과 살았을 때는 라이프 사이클이 완전히 달라서 힘들었다고 했다. 지금은 배우 동료들과 함께 사니까 오디션이 잡히거나 배역이 들어오면 서로 대사를 맞춰주기도 하며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가족을 꾸렸다”고 말했다. 모니카와 립제이, ‘엔조이커플’도 동거인이자 동업자다.

결국 동거의 핵심은 이해와 존중이다. 적당한 긴장감과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는 ‘조립식 가족’의 모습은 ‘전통적 가족’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가족끼리도 서로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는데 ‘전통적 가족’에서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 선을 수시로 넘나듭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강요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함부로 대하고, 부부도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지 않아 부딪히고…. 남남이 모여서 사는 생활을 관찰하다 보니 ‘조립’한 가족이든 혈연 등으로 ‘묶인’ 가족이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선을 지켜야 단체생활을 아름답게 영위할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조립식 가족>을 기획하고 연출한 이민정PD. tvN 제공.

<조립식 가족>을 기획하고 연출한 이민정PD.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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