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묻던 ‘미친개’···왜 시대마다 존재할까읽음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스승의날’ 돌아 보는 ‘교사의 학교 폭력’

1998년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는 걸핏하면 학생을 두들겨 패는 폭력교사에게 항의하고 경찰에 신고해 징계위기에 처하는 고교생 승완이 등장한다. 결국 승완은 스스로 학교를 박차고 나온다. tvN 제공

1998년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는 걸핏하면 학생을 두들겨 패는 폭력교사에게 항의하고 경찰에 신고해 징계위기에 처하는 고교생 승완이 등장한다. 결국 승완은 스스로 학교를 박차고 나온다. tvN 제공

곧 스승의날이다. 스승의날 하면, 한 편의 부조리극 같은 장면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교사는 아이들을 엎드려뻗쳐시켜놓고 제일 앞의 어린이를 걷어찬 뒤 도미노처럼 연이어 쓰러지게 하는 체벌을 즐겼다. 나는 모랫바닥에 엎드린 채, 쓰러진 친구의 몸이 언제 나를 칠지 초조해하다 내 차례가 오면 적당히 무너졌다. 그러다가도 우리를 걷어찬 교사 앞에 길게 줄을 섰다. 저마다 집에서 마련해준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 어느 날 갑자기 싸늘해진 교사의 태도 때문에 내 선물이 다른 친구 것보다 부족한 탓인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1990~2000년대 초반까지 교사에게 금품이나 물질을 제공하는 ‘촌지’ 문화가 극성이었다. 국민·초등학교를 졸업한 어린이는 경험과 느낌으로 교사의 편애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만 12세 이하에 이미 깨닫는다. 그것은 단순한 편애로 끝나지 않고, 교사가 주도하는 적극적인 따돌림이나 괴롭힘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오늘은 스승의날을 맞이하여 학교폭력에서 잘 가시화되지 않는, 그러나 학교폭력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폭력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바로 ‘가해자가 교사인’, ‘교사에 의한 폭력’ 말이다.

영화 ‘친구’로 유행한 폭행·폭언
‘여고괴담’·‘스승의 은혜’에 담긴
한국 사회 공교육의 맨얼굴들

가해 선생 고발 피해자가 떠나는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처럼
무력화된 현실 ‘스쿨미투’ 결과들

인권보다 성취 우선하는 사회서
‘교사 폭력’은 다양한 얼굴로 실재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는 영화 <친구>(2001)에 나와서 유행어가 된 대사다. 교사의 폭행과 언어폭력이 극심하던 1980년대가 배경이다. 영화에서 교사는 주먹을 이용하여 학생을 때리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여고괴담>(1998)은 교사의 멸시와 폭행, 차별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고 죽은 고등학생의 원혼이 9년 동안 학교에 다니는 이야기다. 장진주(최강희 분)가 죽은 이후 9년이 흘렀지만, 학교 현장에서의 폭력과 차별은 여전하다. 교사의 폭행과 차별, ‘미친개’라고 불리는 중년의 남자 교사가 학생 지도를 명목으로 저지르는 성추행 묘사는 당시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에서 공교육을 이수한 이들이라면 높은 확률로 자신만의 ‘미친개’를 경험했으며 그들이 영화 속 캐릭터와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아아, 영화와 달리 원혼이 죽여주지 않아서, 지금도 멀쩡하게 교육자 행세를 하고 있을 우리들의 일그러진 미친개. <스승의 은혜>(2006)라는 영화의 카피는 다음과 같다. “선생님, 그때 왜 그러셨어요….” 퇴임한 교사에게 학대당했던 제자들이 찾아와 자신의 트라우마를 밝히고, 차례차례 살해당하는 호러 영화다. 당시 영화 팸플릿에는 홈페이지와 시사회를 통해 모집한 교사로부터 당한 폭력 피해 경험이 실렸다. 영화보다 더 지독한 내용이 많았다.

유교 문화가 뿌리 깊은 한국에서 스승과 교육은 오랫동안 절대적인 특권을 누려왔다. 아버지와 스승을 동일시하고,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고 배운다. 또한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고 귀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린다”처럼 교육에 체벌을 자연스럽게 포함했다. 가르치는 행위를 ‘편달(鞭撻)’, 가르치는 일을 ‘교편(敎鞭)을 잡는다’라고 표현하는데 이때의 ‘편’이 ‘채찍 편’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교육(敎育)’에서 ‘가르칠 교(敎)’는 세 가지 의미로 나뉜다. 교육의 대상을 가리키는 ‘子(자: 미성숙한 이)’, 교육의 방법을 뜻하는 ‘攵(복: 때리다)’ 그리고 교육의 목적을 시사하는 ‘爻(효: 본받다)’이다. 이때 ‘(복)’은 회초리(卜)를 든 손(又=手) 혹은 회초리를 맞는 손을 상징하는 셈이다. 이러한 프레임에서 교사의 행동은 그 정도가 어떻든 ‘지도’이고, 맞은 학생은 ‘맞을 짓’을 한 교정 대상이며, ‘체벌’이 진짜 교육이다. 결국 나중에 제일 생각나고 그리운 것은 많이 때린 교사이고, 그런 ‘다소 거칠고 난폭하지만,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진심’인 교사가 참스승이라는 내러티브는 수많은 미디어와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반복·재생산되었다. 영화 <4등>(2016)에서 수영 코치는 가르치는 학생을 두들겨 팬 후 이렇게 말한다. “잡아주고 때려주는 선생이 진짜다. 내가 겪어보니 그렇더라. 내가 네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다.” 그 자신이 전성기에 코치의 폭력 때문에 수영을 그만뒀으면서, “내가 덜 맞아서 그랬다”라고 자조하는 장면은 결국 폭력으로써 가르칠 수 있는 것은 폭력뿐임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학교폭력 문제의 심각성에 주목하고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2004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교폭력예방법’)이 제정된 뒤부터다. 이 법은 2012년 3월 학교폭력의 범위를 ‘학생 간에 발생한’ 사건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사건으로 확대하여 정의하였다. 실제적인 학교 현장에서 학교폭력의 피해자는 청소년기의 학생에 한정되지만, 가해자는 다양한 주체이다. 그런데도 학교폭력은 학생 간의 문제로 자주 축소된다. 한편 체벌 금지 이후 학생·학부모에게 교사가 폭력을 당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이러한 경우는 ‘교권 추락’ ‘교권 붕괴’ 같은 자극적인 표현과 함께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여겨진다. 물리적인 체벌이 금지된 뒤에도 성폭력이나 언어폭력, 차별 등 다양한 층위의 폭력은 여전히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가해자가 교사인 경우는 여전히 인식은 물론 연구나 논의 차원에서도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배경은 1998년이다. 걸핏하면 학생을 두들겨 패는 폭력교사에게 항의하고 경찰에 신고한 지승완(이주명 분)은 도리어 징계받을 위기에 처하고, ‘요즘 아이들’의 무서움을 과장해서 보도하려는 기자에게 이용당할 뻔한다. 지승완은 결국 자퇴로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스스로 학교를 박차고 나간다. 하지만 그 장면의 카타르시스와 별개로, 결과만 놓고 보면 결국 학교와 공권력의 비호 아래 가해자는 남고 피해자가 떠났다. 폭력을 폭력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교사의 폭력이 용인되고 은폐되는 구조는 여전히 공고하다. 2018년, 용화여고에서 ‘스쿨미투’가 시작되었다. 스쿨미투는 학교에서 일어난 학생 대상 성폭력을 아동 청소년들이 스스로 고발하며 공론화의 주체가 된 인권운동이다. 용화여고 졸업생들이 재학 중에 겪었던 ‘교사가 주체인 교내 성폭력’을 공론화하자 재학생들이 교실 창문에 포스트잇으로 #METOO #WITHYOU 모양으로 붙여 화답하면서 한국의 고질적인 학교 성폭력 실태 고발에 불을 붙였다. 이후 스쿨미투는 전국 100여개 학교로 번져나갔다. 100여개뿐이겠는가. 여성 청소년으로 살아본 사람이라면, 마음속 다트판에 미친개 이외에도 온갖 성희롱과 추행을 일삼았던 교사들의 얼굴을 주렁주렁 걸어놓고 산다.

스쿨미투는 고무적이었으나, 학생의 용기에 응답하지 못한 처벌과 후속 대처는 아주 미온적이었다. 학교가 아동 대상의 학대·인권 침해 사안을 해결하기는커녕 이를 은폐하거나 축소했기 때문이다. 용기를 냈던 학생들은 주동자 색출 위협에 시달리거나 실명으로 증언해야 하는 부담을 느끼며 진술을 철회했고, 학교를 떠나기도 했다. 2021년 12월 기준, 지난 3년간 스쿨미투로 고발된 서울지역 교사 10명 중 6명꼴로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교사가 성희롱, 성폭력 관련 수사 대상이 되는 경우 ‘일단 직위해제’하는 게 서울시교육청의 방침이지만 현장에서는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교사들이 실제 징계될 때까지 아무런 제약 없이 교단에서 학생들과 만날 수 있는 지위를 유지한 것이다. 지승완은 멋지게 학교를 떠났다. 전교 1등이고, 가족이 승완의 선택을 지지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성적이나 가족의 태도와 무관하게, 학생은 교육 현장에서 안전할 권리가 있고 학교는 주체가 누구든 학생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체벌이 금지되고 부정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금, 학교는 확실히 ‘예전 같지 않다’. 누군가는 섣불리 ‘옛날이 좋았다’라고 추억하거나, ‘요새는 그러면 큰일 나지’라며 현재를 낙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동·청소년을 인격으로 존중하지 않고, 교정과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며, 인권보다 성취를 우선시하는 사회에서 교사 주체의 폭력은 여전히 다양하게 변주되어 일어나고 있다.

<4등>에서 주인공의 엄마는 메달 획득을 목적으로 아들이 맞은 상처를 보고도 모르는 척하며, 드라마 <SKY 캐슬>(2018)의 김주영(김서형 분)은 청소년을 정서적으로 장악하는 인물이지만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입시 코디네이터다. 폭력을 폭력이라고 정확하게 호명하는 작업과 적극적인 정책이 펼쳐져야 한다. 그리고 ‘폭력을 견뎌서라도’ 쟁취해야 하는 것은 없다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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