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브로커’로 칸영화제 찾은 이지은 “내게 ‘넌 행운아’ 말해주고파”

칸|오경민 기자
배우 이지은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브로커>에 아이 엄마 소영역으로 출연했다. CJ ENM 제공.

배우 이지은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브로커>에 아이 엄마 소영역으로 출연했다. CJ ENM 제공.

처음으로 상업영화에 도전했고, 그 영화로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가수로서도 배우로서도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이지은(아이유)이지만 영화배우로 세계적인 영화제에 참석한 소감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지은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에 아기를 베이비박스 앞에 버리는 엄마 소영역으로 출연했다. 영화가 제75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로 선정되면서 프랑스 칸을 찾았다.

<브로커>는 베이비박스를 둘러싸고 얽히게 된 이들이 함께 예기치 못한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다. 소영은 예기치 못한 임신을 한 뒤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더 이상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에 놓이자 소영은 아이를 교회 앞에 버린다. 다음날 다시 돌아와 아기 브로커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을 만난다. 아기를 좋은 부모에게 파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봉고차에 오른다.

이지은은 외롭고 거친, 하지만 아이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소영을 성실하고 훌륭하게 연기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그의 연기를 두고 “내 마음속에 있던 소영을 단번에 구현한 느낌이었다. 감정표현이 너무 섬세해 내가 그 대본을 썼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고 평했다. 전날 칸영화제에서 첫 상영회를 마친 이지은을 28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한 카페에서 만났다. 다음은 이지은과의 일문일답.

영화 <브로커>는 지난 27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극장에서 첫 공식상영회를 가졌다. 배우와 감독들이 상영 전 레드카펫에서 인사했다. 왼쪽부터 상현 역의 송강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소영 역의 이지은, 이형사 역의 이주영, 동수 역의 강동원. CJ ENM 제공.

영화 <브로커>는 지난 27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극장에서 첫 공식상영회를 가졌다. 배우와 감독들이 상영 전 레드카펫에서 인사했다. 왼쪽부터 상현 역의 송강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소영 역의 이지은, 이형사 역의 이주영, 동수 역의 강동원. CJ ENM 제공.

-처음 방문한 칸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사람들이 다같이 ‘아이유’를 외치며 환호했다. 소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공항에서부터 사인 CD를 들고 기다리시는 분들이 있어서 ‘신기한 일정이 되겠는 걸’ 싶기는 했지만 레드카펫에서의 광경은 저나 매니저, <브로커> 팀원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많이 놀랐다.”

-첫 공식상영 뒤 박수갈채 속에서 글썽이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눈물이 고이지는 않았다. 조명 때문인지 눈이 피곤했는지, 제 몸이니까 눈물이 차면 알았을텐데 눈물이 차오르진 않았다. 감격스럽고 벅찼다. 얼떨떨했다. 한 가운데 있으니 박수소리가 굉장히 크게 들렸다. 이렇게 호응해주시는 문화 자체가 처음이라 어떻게 끝나는 건지, 누가 끝내는 건지 그런 생각을 했다.(<브로커> 팀은 올해 어느 상영작보다 긴 기립박수를 받았다.) 콘서트 같은 데서 박수를 받는 것은 이렇게 길지 않고, 즉각적인 반응에 가깝다. 상영회 때 박수는 영화를 만든 모두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터져나오는 감동, 감정적인 반응이라기보단 응원, 위로, 이런 다독임으로 느껴졌다.”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는데, 엄마역을 어떻게 연기했나.

“출산의 고통을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해해보려고는 했지만 완벽하게는 알지 못한다. 대본상의 설정을 최대한 따라가려 했고, 아기 우성 역의 지용이를 쉬는 시간마다 보고, 눈 마주치고, 말도 시키고 했다. ‘내 아들이다’ ‘내가 낳은 아이다’ ‘나랑 닮았다’ 이런 생각을 계속 했다.”

소영(이지은)은 자신의 아이를 팔기 위한 브로커들의 여정에 합류한다. CJ ENM 제공.

소영(이지은)은 자신의 아이를 팔기 위한 브로커들의 여정에 합류한다. CJ ENM 제공.

[인터뷰] ‘브로커’로 칸영화제 찾은 이지은 “내게 ‘넌 행운아’ 말해주고파”

-앞선 기자회견에서 ‘엄마 역을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왜인가.

“별다른 이유는 없다. 다음 작품을 결정해야 하는 시기였는데 막연하게 ‘엄마 역할을 하고 싶다’ ‘아이를 낳아본 적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출산이라는 정말 큰 벽을 넘어본 사람, 내 몸 안에서 태어난 생명을 지키는 사람을 해보고 싶다,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소영은 엄마의 정체성을 점점 알아가는 존재다. 이지은은 무엇을 느꼈나.

“세상은 넓고, 정말 많은 엄마가 있다. 소영은 그중에서도 좀 특별하고 특이한 엄마다.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가진 관념적인 엄마의 이미지랑은 많이 다르다. 영화에서는 그냥 따라갔다. 아기에게 애틋한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따로 하지 않았다. 그래도 소영의 마지막이 암시하듯, 멀리 떨어져 있다가도 결국에는 나의 아이를 보러 가고 싶고, 그 아이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하고 그런 게 엄마가 아닐까 짐작했다.”

-<브로커>의 소영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연기한 지안과도 닮은 점이 많다. 차이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지안이는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다. 너무 이미 세상에 실망했기 때문에 무심하고, 귀찮아한다. 화가 나도 화를 내지 않고, 눈물이 나고 울지 않고, 웃을 일도 없다. 외부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조용한 인간이다. 반면 <브로커>의 소영이는 화가 나면 화를 내야하고, 욕이 치밀면 욕을 해버려야 하고, 기분이 좋아지면 또 같이 어울려서 웃기도 하는 표현하는 인간이라는 게 연기를 하면서 가장 달랐다.”

-소영과 공감한 부분이 있나.

“저와는 많은 다른 인물인 것 같긴 하다. <나의 아저씨> 지안이보다도 더 멀리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인생을 살아왔길래 이렇게 항상 화가 나 있을까,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많이 생각했다. 대본에 쓰여 있지 않은 부분까지 상상하면서 연기를 했는데, 상현과 동수 일행과 동화되는 과정에서 저 스스로도 마음이 열리는 과정을 느끼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레에다 감독은 대부분의 촬영을 영화가 전개되는 순서대로 진행했다고 한다.)”

-그래도 닮은 점이 있다면.

“제가 화는 별로 없는데 자잘한 짜증이 좀 많은 성격이다. 일할 때는 내보이지 않지만 아주 친한 친구들, 가족들, 특히 동생을 대할 때 좀 툭툭 말하는 편이다. 그런 것들을 살려서 소영의 일상 말투를 만들었다. 따로 멜로디, 템포 같은 걸 생각하지 않고 짜증이 많은 인물로 설정해야겠다 생각했다. 제가 힘이 빠졌을 때 쓰는 말투를 썼다.”

-소영의 진한 화장이나 옷 스타일을 어떻게 결정했나.

“의상팀과 분장팀에서 아이디어를 주신 것이 거의 다 채택됐다. 마침 활동이 끝난 직후여서 머리가 굉장히 부스스했는데, 임신하면 염색 같은 걸 못 하니까 물이 많이 빠져있고 관리가 안 돼있는 그 머리가 소영 역에 맞겠다고 생각했다. 소영의 화장은 물론 얼굴을 꾸미려는 것도 있겠지만 자기 얼굴을 감추려는 의도가 훨씬 크다고 받아들였다. 나이고 싶지 않으니까. 본인을 숨기고 싶은 방어기제 아닐까 했다. 옷의 경우에는 초반에는 어두운 색에 패턴이 많은 옷을 입어 어둡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표현하려고 했다. 세차장 장면에서 화장이 좀 지워지면서 소영이 세상 밖으로 한발짝 나온다고 여겼다. 이후 눈화장 지운 맨얼굴도 보여주고 조금 밝은 색 옷을 입는데, 소영의 마음이 표현된 거라고 생각한다.”

-자장가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누구보다 노래와 감정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대본 리딩 때도 가장 떨렸던 장면이고, 촬영현장에서도 바이브레이션을 넣어야 하나, 키는 어떻게 잡지 별별 생각을 했다. 조금 음정을 흔들리게 부르면 어떨까 고민도 했지만 작위적이게 될까봐 그만뒀다. 소영에게 자장가를 부르는 것은 너무 많이 해온 일이라서 기계적으로 부르지 않았을까, 어쩌면 노래를 부른다는 자각조차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최대한 깨끗하게 부르자, 소영은 원래 음감이 좋은 아이일 것이다 생각하고 불렀다.”

소영(가운데·이지은)은 “책임 못 질거면 낳지 말지 그랬냐”고 묻는 형사 수진(왼쪽·배두나)에 대척한다. CJ ENM 제공.

소영(가운데·이지은)은 “책임 못 질거면 낳지 말지 그랬냐”고 묻는 형사 수진(왼쪽·배두나)에 대척한다. CJ ENM 제공.

-소영이 형사 수진(배두나)에게 ‘아이를 태어나기 전에 죽이는 것이 낳은 이후 버리는 것보다 죄가 가볍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그 대사를 읽고 고레에다 감독님께 따로 면담 신청을 했다. 이것이 소영 개인의 가치관일뿐인지, 감독님이 소영이의 입의 빌어서 하고 싶은 말인지 여쭤봤다. 한 등장인물의 생각인지, 영화의 주제인지 궁금했다. 다음 미팅 때 ‘그것은 소영의 생각’이라고 답을 주셨다. 질문한 이유는 제 개인의 가치관과는 달라서다. 그 대사가 영화의 주제라고 한다면 제가 마음이 좀 힘들 것 같아서 확실하게 여쭤보고 시작을 하고 싶었다. 여러가지 가치관이 있고 생각이 다 다를 수 있겠지만 저의 생각은 소영의 의견과 다르다. 감독님은 그 장면이 왜 필요한지와 수진이 살아온 삶, 수진과 소영이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이유 등에 대해 말씀을 해 주셨다. 의문이 없어져서 촬영에 임했다.”

-소영이 상현과 동수 등 일행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장면이 아주 중요한 장면이다. 스스로에게 소영처럼 불을 끄고 한마디 해준다면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나.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한 마디만 할 수 있는 건가. 제가 말이 좀 많은 타입이라. (웃음) ‘넌 정말 행운아야’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물론 어떤 순간에는 저도 정말 힘들고, 왜 이런 불행이 나에게 왔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복이 많고 행운아라는 생각이 저를 다시 겪게 하는 것 같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