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들을 경계 밖으로 몰아내고 ‘불법’이란 딱지를 붙였나

이길보라

(19) 미등록 이주아동과 코다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 누가 그들을 경계 밖으로 몰아내고 ‘불법’이란 딱지를 붙였나

다가오는 6월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이다. 화성외국인보호소인권침해대책위원회·외국인보호소폐지를위한물결(InternationalWater31) 주최로 6월20일 오후 7시 서울 아트하우스 모모(이화여대)에서 영화 <도쿄의 쿠르드족> 상영 및 토크 행사가 열린다.

1999년 한국 출생 나이지리아인
그의 조국·모국·고국은 어디인가
3개 개념이 일치하지 않는 이유로
불법 영역의 ‘이해 못할 존재’가 돼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 누가 그들을 경계 밖으로 몰아내고 ‘불법’이란 딱지를 붙였나

“어린 나이에 많은 걸 알 수밖에 없어요. 특히 엄마가 한국말을 못하니까 각종 서류 작업, 행정, 은행 업무, 집 계약 같은 일은 누나랑 제가 도맡았어요. 엄마가 무슨 일을 하든 전화가 와서 누나와 제가 통역을 하고. 어른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다 들을 수밖에 없었죠. 생계를 꾸리는 방법 등 모든 걸 알아야 했어요. 하기 싫어도 가족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많았어요. 안 하면 살 수 없기 때문에.”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책 <있지만 없는 아이들>(사진)을 읽다 기시감이 들었다. 음성언어 중심 사회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의 자녀로 자란 코다로서 나의 경험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여덟 살 무렵 농인 부모와 은행에 방문해 대출을 상담하고 새로 이사 갈 집에 전화해 전세와 보증금을 대신 물었던 일이 떠올랐다. 미등록 이주아동 페버처럼 알고 싶지 않았지만 집안 경제 상황을 일찍 파악하게 되었다. 애어른, 어른아이가 되었다. 청각장애인의 자녀인 코다는 장애인 가족으로서의 경험과 동시에 이중언어 사용자이자 다문화 가족의 일원으로 성장한다. 이주민 2세대와 비슷하고도 같은 경험을 한다.

<b>오잔</b> 일본 도쿄 교외에 정착해 살고 있는 터키 쿠르드족 난민 세 명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도쿄의 쿠르드족>(휴가 후미아리 감독, 2021)의 한 장면. 6세 때 부모를 따라 일본에 왔고 내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냉소하며 꿈조차 함부로 꿀 수 없다고 말하는 오잔(18).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오잔 일본 도쿄 교외에 정착해 살고 있는 터키 쿠르드족 난민 세 명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도쿄의 쿠르드족>(휴가 후미아리 감독, 2021)의 한 장면. 6세 때 부모를 따라 일본에 왔고 내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냉소하며 꿈조차 함부로 꿀 수 없다고 말하는 오잔(18).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그럼 당신은 왜 한국에 살고 계시나요?

1999년 한국 태생으로, 한국에 머물던 나이지리아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페버는 나고 자라면서부터 배운 한국어로 이주민 1세대인 부모님을 돕는다. 그러나 아버지가 나이지리아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면서 가족의 체류자격이 상실되어 불법체류자가 된다. 강제퇴거 명령을 받자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하고 승소하여 체류자격을 얻는다. 페버는 묻는다.

“왜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으냐고 묻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이 질문을 한 사람에게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어요. 그럼 당신은 왜 한국에 살고 계시나요?”

그는 여기서 태어났기 때문에 여기서 사는 거라고, 만약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그곳 언어와 문화를 배우며 자랐다면 아마도 그곳에서 살았을 거라고 말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기획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해온 은유 작가가 쓴 책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 미등록 이주아동 5명과 그들의 어머니, 이주인권활동가, 작가, 변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구성된 르포 문학이다.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렸을 때 한국으로 이주하여 오랜 시간을 한국에서 살아온 이주 아동의 목소리를 담았다. 신분증이 없어 학교 체험학습 중에 청와대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행보험 가입이 되지 않아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고, 자격증 시험을 치르지 못하고, 대학에 가지 못한다는 걸 알고 난 후 입시를 포기하고, 오늘이 한국에 머무는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어떠한 것도 감히 꿈꾸지 못하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이 책은 어떠한 사진도 보여주지 않는다. ‘불법체류자’ 혹은 ‘불법체류자의 아동’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편견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한국에서 나고 자라면서 습득한 한국어를 들려준다. 다른 피부색, 다른 눈 모양과 같은 ‘다름’으로부터 오는 학습된 고정관념을 차단한다. 독자로 하여금 이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마주하게 한다. 한국어로 사고하고 한국어로 소통하며 살아가는 이주아동의 이야기를 통해 생각한다. 누가 적법한 ‘한국인’이 되고 무엇이 ‘한국인’을 구성하는 걸까.

언어학자인 다나카 가쓰히코에 따르면 ‘조국’은 조상의 출신지(뿌리), ‘모국’은 자신이 실제로 국민으로 소속되어 있는 국가, ‘고국’은 자신이 태어난 곳(고향)을 의미한다. 책에 등장하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조국은 나이지리아, 몽골, 우즈베키스탄, 이란이다. 모국은 조국과 일치하기도 하고 체류자격 심사를 통해 한국으로 변경되기도 한다. 고국은 조국과 일치하기도 하고 한국이기도 하다. 대다수 한국인은 조국과 모국, 고국이 일치하겠지만 미등록 이주아동은 그렇지 않다. 조국, 모국, 고국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법의 영역에 놓이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조상의 출신지인 조국에 돌아가더라도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인생 대부분을 한국에서 보냈기에 말도 쉽게 통하지 않고 속한 문화도 다른 ‘외국인’ 취급을 받는다. 조국과 모국, 고국 사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b>라마잔</b> 영화 <도쿄의 쿠르드족>(휴가 후미아리 감독, 2021)의 한 장면. 통역사를 꿈꾸지만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대학에 입학하지 못해 꿈을 포기하는 라마잔(19).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라마잔 영화 <도쿄의 쿠르드족>(휴가 후미아리 감독, 2021)의 한 장면. 통역사를 꿈꾸지만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대학에 입학하지 못해 꿈을 포기하는 라마잔(19).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다큐 영화 ‘도쿄의 쿠르드족’ 속
불법 체류 청년 오잔과 라마잔
일본서 자라고 일본어로 말해도
기약 못할 미래에 쌓이는 불안

내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미등록 이주아동은 ‘불법체류 학생의 학습권 지원방안’ 지침에 따라 한국에서 정규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강제출국 유예기간이 종료돼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퇴거 대상이 된다. 2020년 5월 국가인원위원회는 이는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며 법무부에 시정을 권고한다. 법무부는 2021년 4월 ‘국내 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 시행방안’을 발표하여 한국에서 태어나 15년 이상 한국에 체류한 미등록 이주아동에 한해 체류자격을 심사받을 기회를 준다. 작가는 “태어나자마자 한국에 온 아이나, 15년보다 짧은 기간 체류했지만 국적국에 귀국하기 힘든 경우는 구제되지 못한다”며 이 책에 실린 몇몇 이주아동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대책이라고 지적한다.

체류자격 심사를 받지 못한 미등록 이주아동은 자신의 신분을 바꿀 어떠한 기회도 없이 불법체류 아동에서 불법체류 청년이 된다. 그 모습을 그린 것이 바로 다큐멘터리 영화 <도쿄의 쿠르드족>이다. 미등록 이주아동이 청년이 되었을 때 마주하게 되는 현실을 담은 이 영화에는 일본 도쿄 교외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두 명의 쿠르드족 청년 오잔과 라마잔이 등장한다.

쿠르드족은 메소포타미아 평야와 지금의 남동부 터키, 북동부 시리아, 북부 이라크, 북서부 이란, 남서부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살던 원주민을 일컫는다. 현재 3800만명 정도의 쿠르드족이 아랍 전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중동 내에서 네 번째로 많은 민족이다.

대부분 수니파 무슬림인 쿠르드족은 고유 정서, 문화, 언어를 가졌지만 단 한 번도 자신들만의 국가를 가진 적이 없다. 터키 인구의 15~20%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은 꾸준히 독립을 요구해왔지만 터키 정부는 쿠르드어, 쿠르드 이름, 전통 의복 착용 등을 금지하며 탄압했다. 이에 쿠르드족 일부는 무장단체를 결성하여 분리독립 운동을 해오고 있다.

터키의 탄압을 피해 쿠르드족 난민은 1990년대 일본으로 망명한다.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아 도쿄 근교에 정착하여 2000명이 넘는 규모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그러나 이 중 일본 정부가 난민으로 인정한 사례는 단 1건도 없다. 처참한 숫자다. 여섯 살 때 부모와 함께 일본으로 망명한 오잔은 청소년 시기를 거쳐 지금은 건물 철거 일을 한다. 오잔의 친구이자 또 다른 주인공인 라마잔은 쿠르드어와 터키어, 일본어,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살려 통역사가 될 거라고 희망찬 눈빛으로 말한다. 그렇게 되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며 라마잔은 대학 입시를 준비한다.

둘은 도쿄 근교에서 만난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앞으로 무얼 하고 싶으냐고 일본어로 묻고 답한다. 그 누구보다 능숙한 일본어다. 적법한 비자가 없어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고 언제 추방될지 모른다는 대화를 나눈다. 오잔은 내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고국으로 돌아가 분리독립 운동에 참여하면 위험할 것이고 그렇다고 일본에 불법 체류 신분으로 머무르기에는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앞날을 기약할 수 없으니 차라리 하루 벌어먹고 사는 철거 일을 하는 게 낫다고 냉소하는 오잔은 어느 날 모델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다. 머리를 넘겨 빗고 하얀 셔츠를 차려 입고 기획사에 찾아가 사진을 찍고 면접을 본다.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환하게 웃는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해 출입국관리소를 찾아간다. 담당자는 인도적 체류자의 신분으로는 일할 수 없으며 체류 비용은 고국에서 조달하거나 알아서 해결하라고 무신경하게 말한다. 그렇게 체류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고 대꾸하지만 출입국관리소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오잔은 고개를 푹 숙인다. 이럴 줄 알았다고 함부로 꿈을 꿔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책에 등장하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신분증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포기했다는 페버의 이야기와도 만난다.

유엔난민기구가 조사한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1년간의 각국 난민 인정률에 따르면 한국은 1.3%, 일본은 0.3%로 최하위에 속한다. 캐나다는 46.2%, 영국은 28.7%, 인도는 52.8%다. 한국이 일본보다 1% 낫다고 결코 위안할 수 없는 수치다.

영화 <도쿄의 쿠르드족>(휴가 후미아리 감독, 2021)의 한 장면. 왼쪽부터 주인공 라마잔(19)과 오잔(18).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도쿄의 쿠르드족>(휴가 후미아리 감독, 2021)의 한 장면. 왼쪽부터 주인공 라마잔(19)과 오잔(18).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직업 얻을 수도 꿈을 꿀 수도 없는
인도적 체류자들에 무심한 ‘국가’
그들에 ‘불법’이라 이름붙인 법은
누가 만들었고, 합법이란 무엇인가

불법체류 아동과 미등록 이주아동 사이

미등록 이주아동의 교육권을 살펴보는 수업에서 한 교사가 말했다.

“처음에 미등록 이주아동이라고 해서 그게 뭔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어요. 책을 읽다보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불법체류자의 자녀를 일컫는 말이더라고요. 이상했어요. 그들을 불법체류자라고 부를 때와 미등록 이주아동이라고 호명할 때의 이미지가 전혀 다른 거예요.”

그는 존재에 ‘불법’이라는 단어를 붙였을 때 어떤 종류의 선입견이 생겨나는지,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호명할 것인지에 대해 학생들과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 그들을 더 이상 익명의 ‘불법체류자’로 부르지 않게 된다. 이름과 얼굴이 없었던 존재는 ‘미등록 이주아동’이 되고 ‘페버’가 되고 ‘오잔’이 되고 ‘라마잔’이 된다.

이들이 출입국관리소에 어떤 표정으로 들어가고 나오는지, 얼마나 능숙하게 한국어와 일본어를 구사하는지, 그 누구보다 ‘한국인’스럽고 ‘일본인’ 같은지를 마주하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존재에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없다. 대신 질문을 갖게 된다. 누가 그들을 난민으로 만들었는지, 왜 그들은 법의 영역에서 벗어났는지, 법은 누가 만든 것이며 누가 합법과 불법을 결정하는지 묻게 된다. 이들이 처한 현실은 한국과 일본 사회의 다양성의 한계를 보여주는 거울이 된다. 경계에서 경계를 바라본다. 그것은 곧 나/우리의 이야기다.

■이길보라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 누가 그들을 경계 밖으로 몰아내고 ‘불법’이란 딱지를 붙였나

영화감독이자 작가이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 자질이라고 믿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든다. 저서로는 <반짝이는 박수 소리> <우리는 코다입니다>(공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당신을 이어 말한다> 등이 있고, 연출한 영화로는 <로드스쿨러>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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