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크루즈가 폭격한 나라…부르지 못한 그 이름

백승찬 기자

눈 덮인 협곡에 핵시설이 있는 테러지원국

상대 전투기·기지 등 단서 없어

외교·영화 판매 고려한 설정

‘탑건:매버릭’ 360만 관객 넘기며 흥행

<탑건: 매버릭 >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탑건: 매버릭 >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달 22일 개봉해 지난 5일까지 36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중인 <탑건: 매버릭>은 미국 해군 전투기 조종사들의 활약을 그린다. 주인공 매버릭(톰 크루즈)은 특수임무에 투입될 조종사들의 훈련을 맡는다. 이들의 특수 임무란 험준한 협곡에 있는 한 나라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 나라는 ‘테러 지원국’이며 유엔 결의를 위반했다는 설명이 나온다.

흥미로운 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 나라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 등 미국과 현실에서 대치하는 나라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 미군 전투기와 공중전을 펼치는 적의 전투기에도, 매버릭의 폭격을 받는 기지에도 국기나 문자 등 나라를 짐작할 단서가 없다. 적 조종사나 군인의 언어도 들리지 않는다.

영화 속 적국 묘사에 가장 가까운 나라는 이란이다. <매버릭>에서 미군에 맞선 적 전투기는 최신형인 5세대 전투기인데, 외관은 러시아의 5세대 전투기 Su-57과 유사하다. 이란 역시 최신형 전투기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실제 이란은 핵무기를 개발 중인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영화 속에서 우라늄 농축 시설은 눈 덮인 협곡에 있는데, 이란에도 이런 지형이 있다. 영화 속 미군 전투기가 항공모함에서 이륙해 적진에 침입한다는 설정도 바다에 면한 이란이라면 가능하다. 매버릭은 격추된 뒤 적 기지에 잠입해 그곳에 보관돼 있던 미국의 구닥다리 F-14 전투기를 탈취해 도주한다. 이란 역시 과거 미국과 우방이었을 때 구매한 F-14 전투기를 현재도 운용하고 있다.

사실 전편인 <탑건>(1986)에서도 매버릭은 구소련 전투기인 미그기와 대결하지만, 이 미그기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미그-28’로 표현됐다. 소련을 연상시키는 적을 등장시키되, 소련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은 것이다.

<탑건: 매버릭 >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탑건: 매버릭 >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왜 <매버릭>은 적국의 이름을 전편보다도 세심하게 감췄을까. 이는 달라진 국제 정세와 관계 있어 보인다. 1980년대 미국의 유일한 맞수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소련이었다. 이때 할리우드에서는 <록키4>(1985), <람보3>(1988)처럼 소련을 적으로 등장시킨 영화들도 많이 나왔다. 1991년 소련의 해체 이후 북한(2002년 <007 어나더데이>), 중동의 테러리스트(2008년 <아이언맨>) 등을 적으로 등장시키기도 했지만, 구소련만큼 강력한 적으로 설정되진 않았다. 현재 미국의 최대 맞수는 중국이지만, 중국은 방대한 영화 관객을 가진 할리우드의 주요 시장이기도 하다. 할리우드가 중국 자본으로 영화를 만드는 경우도 많다. 할리우드가 중국 관객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영화를 만들 이유가 없다.

<미션 임파서블>, <007> 등의 액션 영화는 가상 국가·테러 단체 혹은 배신한 내부자를 적으로 등장시키곤 한다. 주인공들이 초인적인 육체적 능력을 갖추고 현실에서 보기 힘든 최첨단 무기를 사용하는 이 영화들은 <매버릭>보다는 판타지적 설정이 허용된다. 반면 <매버릭>은 실제 미군의 체계, 무기 등을 재현하고 등장인물들 역시 초인이라기보다는 뛰어난 군인에 가깝기에, 가상의 국가·단체 등을 적으로 등장시킨다면 영화의 완성도와 관객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주연 톰 크루즈,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 감독 조지프 코신스키 등 누구도 <매버릭> 속 적국의 이름이 없는 이유를 설명한 적이 없다. 다만 <탑건>의 삽입곡이자 <매버릭>에서도 다시 들을 수 있는 ‘데인저 존’의 가수 케니 로긴스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적을 명시하지 않은 건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들은 핵시설을 짓는 나쁜 놈들이며, 우리는 그들을 멈춰야 할 뿐이다. 어딘가에서 정부를 전복시키는 건 미군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씨는 “전투기, 핵시설을 특정 단체나 정보기관이 쓸 수는 없으니 <매버릭>이 적국을 설정한 건 자연스럽다”면서도 “주적이 명확하지 않고 한 치 앞의 국제 정세가 불투명한 시대라 특정국을 지칭한다면 외교적으로 민감할 뿐 아니라 영화 판매에도 지장이 있어 적국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은 듯하다”고 말했다.

<탑건: 매버릭 >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탑건: 매버릭 >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탑건: 매버릭 >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탑건: 매버릭 >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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