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의 고기능 자폐, 서번트 증후군은 극소수 사례···미디어가 장애를 재현하는 방법

이혜인 기자

넷플릭스 비영어권 1위 오르며 흥행

까다로운 소재 ‘자폐 스펙트럼 장애’

비장애인과의 ‘관계’ 속에서 그려

“더 나은 방식으로 장애 재현하는 사회 만들어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의 흥행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주연인 박은빈을 제외하고는 스타 배우도 없었다. ENA라는 방영 채널은 신생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소재는 제대로 다루기는 까다롭고, 자칫 장애극복서사라는 식상함만 줄 수 있었다. 우려와 다르게 <우영우> 시청률은 1회 0.9%(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에서 4회에 5.2%로 치솟으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 역을 맡은 배우 박은빈. 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제공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 역을 맡은 배우 박은빈. 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제공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어 의사소통 능력은 떨어지지만 암기력이 뛰어난 천재 변호사 우영우(박은빈)가 대형 로펌에 취직하면서 겪는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매 회마다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법정 사건, 귀여운 고래 컴퓨터그래픽(CG), 배우들의 명연기 등 여러 흥행 요소를 갖췄으나, 가장 큰 흥행 요소는 이전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보지 못한 ‘장애 서사’에 있다. <말아톤> <그것만이 내 세상>처럼 장애인을 다룬 콘텐츠는 장애인인 주인공이 편견에도 불구하고 역경을 극복해내는 식으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해왔다. <우영우>에서 자폐라는 장애를 재현하는 방법은 비슷해보이지만 다른 지점이 있다.

<우영우>가 기존 장애 서사와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은 장애인인 주인공의 활동공간을 사무공간이자 일상공간으로 완전히 옮겨왔다는 것이다. 우영우가 일하는 곳은 강남에 있는 대형 로펌이다. 이곳에서 장애인이 겪을 수 있는 일상적인 차별이 자세히 묘사된다. 우영우는 비장애인은 쉽게 지나갈 수 있는 회전문을 통과하지 못한다. 겨우 문을 밀고 들어와서는 차별적인 시선과 언어를 곳곳에서 경험한다.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특성 중 하나인 반향어(상대방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따라하거나 비슷하게 따라하는 것)를 사용해 종종 상사나 동료의 말을 따라한다. 출근 첫날부터 동료와 상사로부터 “반향어 사용 금지” “고래 이야기 금지”라는 지적을 여러 차례 듣는다. 우영우는 로펌 사무실과 법정에서 자신의 어색한 몸짓과 높은 목소리에 당황해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저는 자폐스펙 트럼 장애가 있습니다”라고 설명을 해야만 한다.

<난치의 상상력>을 쓴 안희제 작가(비마이너 칼럼니스트)는 우영우를 일상공간에 놓음으로써 이 드라마가 “관계 속에서 장애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장애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비장애인 배우가 해당 장애의 특성을 얼마나 ‘리얼’하게 따라하느냐가 관심사였다. 이들의 재현 연기에는 ‘미친 연기’라는 극찬이 내려졌다. 안 작가는 “(미디어에서 장애 재현을 할때) 장애인의 몸짓이나 능력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사회적 맥락의 많은 부분을 누락시키는 서사 구조가 있다는 점을 놓치기 쉽다”고 말했다. 이어 “<우영우>도 물론 박은빈 배우가 계단을 내려갈 때 손이 얼마나 흔들리는지를 카메라가 오래 관찰하면서 연기력을 강조하는 부분도 있긴 하나, 분명히 장애의 시각적 유사성이나 재현을 넘어서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 역을 맡은 배우 박은빈.  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제공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 역을 맡은 배우 박은빈. 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제공

실제로 시청자들이 극찬하는 ‘감동 포인트’나 ‘힐링 포인트’는 우영우를 둘러싼 비장애인 주변인과의 다양한 관계에서 발생한다. 법정에서 우영우에게 “자폐 환자”라는 표현을 쓰고 “자폐 피고인이 심신미약이면 자폐가 있는 변호인도 심신 미약자니 변호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검사처럼 선명하게 악한 인물도 등장한다. 하지만 비장애인 동료들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일상적 관계를 구성한다. 최수연(하윤경)은 우영우의 로스쿨 동기이자 로펌 동기 변호사다. 우영우에게 도움도 주지만, 뛰어난 능력으로 주목받는 우영우를 질투하는 속마음을 내비친다. 또 다른 신입 변호사 권민우(주종혁)는 우영우를 뛰어난 한 명의 변호사로 보고 경쟁의식을 불태운다는 면에서는 좋은 동료다. 하지만 장애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필요한 시점에서도 ‘공정성’을 주장하면서 우영우에게 특혜를 주냐고 항의하는 모습을 보인다.

시청자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얻는 인물은 우영우의 사수이자 시니어 변호사인 정명석(강기영)이다. 그는 처음에는 우영우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채용을 반대하는데, 같이 일을 하면서 점점 동료로서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명석은 우영우에게 칭찬을 하면서 “그거 그냥 ‘보통 변호사’들한테도 어려운 일이야”라고 했다가, “아, 미안해요, 그냥 ‘보통 변호사’라는 말은 좀 실례인 것 같다”라며 바로 표현을 교정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정명석 변호사(강기영)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편견을 드러냈다가 바로 사과하는 성숙한 직장동료로 그려진다. ENA 제공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정명석 변호사(강기영)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편견을 드러냈다가 바로 사과하는 성숙한 직장동료로 그려진다. ENA 제공

<우영우>가 기존의 장애 소재 콘텐츠보다 훨씬 성숙하게 장애를 재현해내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소재로 선택했다는 지점에서 오는 한계도 존재한다. 극중에서 정확하게 언급된 적은 없지만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중에서도 ‘서번트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극히 일부가 서번트 증후군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암산, 그림, 음악 등 특정 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영화 <레인맨>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서번트 증후군이 있는 주인공을 맡았는데, 백과사전 전집을 달달 외울 정도로 천재성을 발휘한다. 천재성이라는 매력적인 특징 때문에 그간 많은 작품들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서번트 증후군=천재’로 치환되는 이미지가 사용돼왔다. 드라마 <굿닥터>의 천재 소아외과 전문의 박시온(주원),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의 천재 피아니스트 진태(박정민)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서번트 증후군임과 동시에 지적장애를 동반하지 않아 지능지수가 높은 편인 고기능 자폐 장애에 해당한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자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등을 펴낸 도서출판 꿈꿀자유의 강병철 대표는 “우영우와 같은 극소수 고기능 자폐가 자폐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미디어에서 반복적으로 다뤄지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 자폐 장애가 있는 변호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우영우 정도로 의사소통 능력이 뛰어나고 일상에 큰 문제가 없는 고기능 자폐는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극소수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기능 자폐인들이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나, 변호사처럼 고도의 의사소통 능력을 요구하는 직업보다는 프로그래머같이 혼자 수행하는 직업군에 더 많이 몰려있다는 설명이다. 강 대표는 “반향어, 숫자 세기 등의 강박행동같은 일부 증상이 자폐의 대표 증상처럼 대변되는 것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물론 <우영우>는 이 우려지점을 영리하게 짚어서 설명해주기도 한다. 3화에서는 세상과 소통이 어려운 중증 자폐인인 정훈(문상훈)이 등장한다. 우영우의 대사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범주가 무척 넓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폐의 공식적인 진단명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입니다. 스펙트럼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자폐인은 천차만별입니다”, “저의 자폐와 피고인의 자폐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저한테는 보이지만 검사는 보지 못합니다.”

드라마가 섬세하게 자폐에 대해 설명한다 하더라도, 콘텐츠를 접하는 시청자들은 에이블리즘(비장애인 중심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장애는 뛰어난 지적능력과 주변 사람들의 작은 도움만으로 ‘극복’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 작가는 “더 좋은 작품을 기다리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더 나은 장애 재현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일이며, 그것이 시청자의 역량이자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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