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하고 어리석은” 우영우처럼…‘장애 전형성’ 한계와 차별성 공존읽음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예상 뛰어 넘는 인기…같은 설정에서 출발하는 칭찬과 우려

좋은 드라마의 힘은 강하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개국에 동시 방영되고 있는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2주 연속 넷플릭스 비영어 TV부문 가장 많이 본 콘텐츠 글로벌 1위를 기록했다.  ENA 제공

좋은 드라마의 힘은 강하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개국에 동시 방영되고 있는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2주 연속 넷플릭스 비영어 TV부문 가장 많이 본 콘텐츠 글로벌 1위를 기록했다. ENA 제공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의 인기가 뜨겁다. 첫 방송 때는 케이블 방송 평균 수준이었던 시청률(0.9%)이 한 달도 안 돼 10배로 껑충 뛰었다(7월14일 기준 9.6%). 방송 날이면 드라마와 관련한 단어가 온라인 실시간 트렌드에 오르고, 다양한 감상과 해석이 쏟아진다. 이 드라마는 뜨거운 반응만큼이나 드라마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다. 이 드라마에 쏟아지는 칭찬이나 우려는 모두 같은 설정에서 출발한다.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의 대형 로펌 생존기”라는 설명처럼, 주인공 우영우가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설정. 자폐 스펙트럼 장애나 후천적 뇌손상을 입은 사람 중 극소수가 특정 분야에서 일반인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증상은 ‘서번트 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영화 <레인맨>(1988)은 너무 오래된 레퍼런스일 테고…, 우리나라에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의사가 나오는 <굿 닥터>(KBS, 2013)가 대표적이다. <사이코지만 괜찮아>(tvN, 2020)에도 암기력이 뛰어나고 그림을 잘 그리는 고기능 자폐성 장애 인물이 나온다. 이러한 유형은 미디어에 재현되는 장애인의 스테레오 타입(전형성)이다. 우영우 또한 다양한 자폐 스펙트럼 양상 중 ‘익숙한’ 요소를 따와서 만들어졌다.

케이티 엘리스가 쓴 <장애와 텔레비전 문화>(하종원·박기성 역, 컬처룩, 2022)에서, 커뮤니케이션 학자 세드릭 클라크는 미디어가 소수인종을 재현하는 방식을 분석한다. 이 중에서 재현은 네 단계를 거치는데, 불인정(non-recognition), 조롱(ridicule), 규제(regulation), 그리고 최종적으로 존경(respect)의 단계가 각각 그것이다. 불인정이나 조롱, 규제는 인지하기 쉬운 차별이다. 그런데 존경의 영역, 즉 장애의 사회적 구성에는 외면하고 지나치게 의학적 문제에 치우치거나,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을 거두는 내러티브로 그려내는 것 또한 스테레오 타입의 재생산이라는 사실은 잘 조명되지 않는다. 장애인은 언제나 “인간 이상 또는 인간 이하로만 재현될 뿐”이라는 지적은 장애를 ‘극복’하고 성취를 이룬 인간 승리나, 아니면 비참하게 살아가는 이웃으로 그려지는 현실을 반영한다. 스텔라 영은 장애인 이미지가 ‘감화 포르노’(123쪽)로 소비되는 양상 역시 스테레오 타입의 하나라고 보았다. 감화 내러티브는 생명공학의 힘을 빌려 장애를 치유하거나, 기존의 편향된 환경을 재설계하거나, 장애를 ‘극복’하거나, 장애인에게 ‘친절’한 비장애인의 모습에서 감동받는 것 등을 포함한다. 영은 이러한 감화적 이미지를 소비하고 공유하는 것은 실제 장애인의 삶을 형성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비장애인을 타깃으로 한 상업 드라마가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에서 ‘타자화의 전형’ 보이지만
그 한계 안에서 가능한 현실 재현과 윤리적 태도 섬세하게 고민해
교묘하게 기만적인 또 다정하게 진보적인 드라마…바깥 ‘우영우’들이 마주할 ‘이상한 현실’ 잊지 말길

우영우가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비판은 적절하다. 한편으로는, 상업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은 어느 정도 스테레오 타입이며 현실과 유리되어 있고, 시청자의 호감을 사야 하기에 사랑스럽게 그려진다는 반박 역시 타당하다. 그럴 때 중요한 판단의 기준은 결국 드라마 바깥의 현실, 즉 미디어 지형도와 우리 사회다. 현실이 소수자의 자리를 허용하지 않을 때,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은 허구의 캐릭터로 인지되기보다는 ‘실제 그러할 법한’ 인물로 오인되기 쉽다. 예를 들어보자. 드라마에 등장하는 로맨스의 남자 주인공은 대부분 재벌이거나, 복잡한 가정사와 내면의 상처와 훌륭한 외모의 소유자이다. 현실에는 이런 남자가 거의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남자 즉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남자상을 쉽게 볼 수 있다. 드라마 채널만 벗어나면 각종 예능, 스포츠, 뉴스, 교양은 물론 유튜브나 SNS에도 다양한 인간 군상이 넘쳐난다.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극적으로 가공한 어떤 측면이, 그 정체성에 대한 오해나 왜곡으로 흐를 위험은 거의 없다. 반면 여자 주인공은 언제나 아슬아슬하다.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은 어떤 설정이든 반드시 저체중이고, 풀 메이크업 상태이다. 드라마 채널은 물론 SNS에도 ‘그런’ 여성들이 대부분이며, ‘다른 몸’을 가진 여성은 쉽게 조롱거리가 되기에 꽁꽁 숨어버린다. 현실적으로 다양성과 입체적인 재현이 제한되기에, 미디어 속 여자 주인공의 모습은 으레 ‘여성은 이렇다’라는 고정관념을 생산하고 유포하는 기제로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모습이 실존하는 자신을 ‘왜곡’하거나 지울 수 있다는 위협을 느끼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뿐이다. 우영우가 스테레오 타입으로 그려지는 것은, 주인공을 조형할 때 대중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선택하는 작법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장애인을 ‘볼’ 기회가 거의 없는 현실과 미디어 환경을 고려하면, 문제적이기도 하다. ‘이렇게라도’ 등장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렇게밖에’ 그려지지 않으면? 미디어가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남들보다 뛰어난’, 그래서 ‘장애가 있지만’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가치가 있고 환대받을 만한 장애인만을 재현한다면 수용자는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 외의 삶을 본 적 없고 상상할 수 없는 사회에서, 장애인의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차별성은 배우나 제작진이 이러한 위험과 한계를 잘 파악하고 작품 전반에서 고민한다는 것이다.

“80년 전만 해도 자폐는 살 가치가 없는 병이었습니다. 80년 전만 해도 나와 김정훈씨는 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지금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의대생이 죽고 자폐인이 살면 국가적 손실’이란 글에 ‘좋아요’를 누릅니다. 그게 우리가 짊어진 이 장애의 무게입니다.” 3화의 대사이다. ‘천재가 아닌’, ‘귀엽지 않은’, 심지어 ‘살인 혐의를 받는’ 자폐 스펙트럼 인물이 나온다. 그에게 쏟아지는 댓글은 의대생이 술을 마시고 실족사한 사건에는 전 국민적인 애도를 하지만 산재로 사망한 청년 노동자에게는 무심한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누가 누구의 ‘살 가치’를 논하고, 생명의 무게를 저울에 올릴 수 있을까? 원론적인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지만, 출근길 지연과 불편이 누군가의 생존과 직결되는 이동권 문제보다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혐오발언을 쏟아낼 때 어느새 ‘존재의 우선순위’는 매겨진다. 비장애인 동료들은 말 그대로 ‘스펙트럼’이라고 부를 만큼 다양한 자폐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막연히 ‘같은 장애니까’ 좀 더 잘 이해할 거라고 믿으며 우영우를 부추긴다. 장애인이라는 정체성 하나로 모든 특성을 지워버리는 세계에서, 우영우는 봉사 대상이거나 택시비도 낼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되어 주변부로 밀려난다.

그럼에도 우영우는 살아간다. 우영우 주변 사람들이 우영우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우영우가 자립할 수 있거나 수용되는 것은 천재라서가 아니라, 사회의 일원이기에 가능하고 당연한 일이어야 한다. 현실에서 ‘쫓겨난 몸’들은 대부분 ‘시설’로 가거나 가정 안에 갇힌다. 천재가 아니어도 직업은 가질 수 있지만, 일할 기회를 잡거나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장애인의 삶을 개별적으로 상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여성공감이 엮은 책 <시설 사회: 불구들의 정치와 연대에 대하여>(와온, 2019)는 특정한 사람들을 격리하는 사회가 사실은 공동체를 조각조각 해체한다고 지적한다. 비장애인이 특별히 뛰어나지 않아도 공동체 안에서 격리되지 않고 살아가듯이, 장애인 역시 자신이 머물고 싶은 곳에서 머물며 생활할 권리가 있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내 이름은 꽃부리 영에 복 우. 꽃처럼 예쁜 복덩이란 뜻입니다. 하지만 영리할 영에 어리석을 우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본 책을 전부 기억하지만 회전문도 못 지나가는 우영우. 영리하고 어리석은 우영우.” 우영우는 자신의 이름을 이렇게 해석한다. 어쩌면 인간은 모두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그리고’의 존재다. 장점과 단점을 상쇄의 관계로 놓는 ‘~지만’이 아니라, 단점을 ‘딛고’ 장점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한 면이 공존하는. 비장애인을 타깃으로 한 상업 드라마가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어쩔 수 없이 장애인을 타자화하고 전형화하는 한계가 있다. 동시에, 그 한계 안에서 가능한 재현과 윤리적 태도를 섬세하게 고민하는 드라마인 것 또한 사실이다.

우영우가 영리하고 어리석듯이. 이 드라마는 교묘하게 기만적이고 또 다정하게 진보적이다. 어떤 것이 우선하지 않는 입체적인 콘텐츠이다. 더불어, 어떤 드라마인가만큼이나 드라마를 받아들이는 시청자의 태도와 감수성이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현실의 장애인은 혐오하면서 드라마의 감화적 이미지만 소비하거나, 인물의 행동을 흉내 내며 놀이로 삼는 것이야말로 우영우가 맞닥뜨리는 ‘이상한 세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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