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XX’와 ‘거양(擧揚)’읽음

손제민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뒤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뒤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에서 “이번 순방에서 그래도 많은 성과를 저는 거양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해외 방문 외교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는데, 비속어 논란이 그 성과를 모두 덮어버렸다고 믿는 것 같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 그런 아쉬움을 표현할 자유도 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비속어를 쓰지 말란 법도 없다. 대부분 사람들이 사적인 자리에서 그러기도 하니까. 다만 한국 국회든, 미국 의회든 ‘이 XX’라고 지칭한 사실은 그대로 남아있고, 그가 이 문제에 대해 한 번도 사과를 하지 않은 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왜 윤 대통령은 ‘성과를 거뒀다’거나 ‘올렸다’ 같은 쉬운 우리말을 두고 ‘거양’이라는 어려운 한자어를 썼을까.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거양’은 ‘들 거(擧)’와 ‘날릴 양(揚)’을 합친 말로 ‘높이 들어 올리다’ ‘칭찬하여 높이다’라는 뜻이다. ‘~하다’를 붙여 동사로 쓸 수 있고, ‘성과’를 목적어로 둘 수 있다. 그러니 어법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래도 뭔가 귀에 익지 않고 어색한 느낌이 든다. 발화 당사자에게 씌워진 강렬한 이미지 때문일까. 불과 2주일 전에 같은 입에서 나온 ‘국회 이 XX들’이라는 비속어 탓에 뭔가 서걱거림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누군가 윤 대통령에게 조언을 해줬을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 카메라 앞에서 말씀하실 때에는, 특히나 비속어 논란과 관련된 얘기가 나올 때에는 언어를 좀 순화하시는 게 좋겠다고.

'이 XX’와 ‘거양(擧揚)’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거양’은 국립국어원이 쓰지 않기를 권하는 말이다. 국립국어원 누리집에는 ‘다듬은 말’이라는 난이 있는데, 순화 대상어를 바른 말로 안내하는 곳이다. 이에 따르면 ‘거양하다’는 순화 대상어이다. 이 말 대신 ‘들다’, ‘올리다’, ‘높이다’, ‘드높이다’를 쓰도록 권장한다. 그러면서 국립국어원이 든 근거는 많다. 1977년 국어순화자료 제1집, 1983년 문교부의 국어순화자료-학교교육용, 1992년 총무처의 행정용어순화(안) 등에 따른 권고이다. 윤 대통령의 언어 순화를 위한 노력, 인정하지만 조금 더 노력하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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