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작은 아씨들’ 정서경 작가, 돈·가난·현대사를 이야기한 이유

이혜인 기자
‘작은 아씨들’의 정서경 작가. CJ ENM 제공.

‘작은 아씨들’의 정서경 작가. CJ ENM 제공.

“<작은 아씨들>이라는 제목을 들으면 아무래도 가족의 사랑과 여자들간의 우정, 연대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되잖아요. 하지만 저는 덤프트럭처럼 밀면서 지나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지난 9일 11%대의 높은 시청률로 종영한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극본은 정서경 작가가 썼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부터 <헤어질 결심>까지 박찬욱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집필하며 독특한 세계를 펼쳐온 그다. <작은 아씨들>은 2018년 tvN 드라마 <마더>에 이어 그가 두 번째로 쓴 드라마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 <작은 아씨들>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이 드라마는 원작과는 결이 완전히 달랐다. 매 회차마다 음모와 살인이 난무하는 느와르·스릴러극이었다. 주인공인 세 명의 ‘아씨들’은 700억원을 차지하려는 세력들과 싸우며 매순간 돈과 가난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정 작가를 만나 <작은 아씨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일문일답 형식으로 그와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주인공부터 빌런까지 모두 여성인 드라마, “여성 캐릭터 묘사하는 것이 편해서”

Q. <작은 아씨들>은 생각보다 훨씬 거친 드라마였다. 여성 주인공들의 우정과 연대를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방식으로 그리는 대신 큰 사건 속에 여성들을 던져놨다.

“여성서사가 오밀조밀하고, 힐링을 줄 것이라는 어떤 기대를 배반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저도 여자고 저희 감독님(김희원)도 여자인데, 감독님은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터프한 사람이다. 굉장히 여성적인 방식으로 터프하다. 여성적인 것 안에 여러 모습이 있고, 그 모습들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작은 아씨들>이라는 이름을 일부러 더 고집한 면도 있다. 제목을 들으면 가족의 사랑과 여자들간의 우정같은 것이 떠오르는데, 저는 덤프트럭처럼 밀면서 지나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Q. 이렇게 여성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처음 본다. 성격이 전부 다른 주인공 세 자매는 물론이고, 가장 센 악역부터 가장 정의로운 역까지 모두 여자다.

“제가 극본을 쓰기에 여성 캐릭터를 많이 쓰는 것이 쉬워서 그렇다. 제가 여자이기 때문에 한 캐릭터를 만들 때 그들의 삶의 목표, 동력, 방어기제 같은 것들을 생각하기가 쉽다. (반면 남자 캐릭터를 풀기 쉬운 건) 아마 남자 작가님이나 감독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야기는 공감에 기초하니까.

예전부터 저도 남성 캐릭터를 잘 쓰고 싶은 소망이 있는데, 쓰다보니까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게 되고 조금씩 포기하는 부분이 있다. 드라마를 쓸 때는 제가 쓰기 편한 방식으로 풀고 싶었고, 그래서 세 자매, 최종빌런도 다 여자가 됐다. 젠더라는 것이 제 생각에 인간에게는 굉장히 강력한 밑바닥인 것 같다.”

Q. 작가님의 작품들에서는 유난히 여성 캐릭터들이 극도의 고난에 처하는 상황이 많은 것 같다.

“첫째로, 드라마든 영화든 드라마적인 문법에 맞게 써야하기 때문이다. 고난이 없는 이야기는 결코 두 시간을 채울 수가 없다. 고난이 크면 클수록 그 다음에 올 이야기들을 편하게 풀 수가 있다. 두 번째로, 저는 주인공이 고통받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작은 아씨들>에서는 오인주(김고은)가 고통받는 3부와 11부가 가장 좋았다. 어떤 고난은 함께 힘을 합쳐 넘어야 하지만, 어떤 고난은 자신이 정말 혼자인 공간에 놓여서 스스로 넘어서야한다. 그 속에서 캐릭터가 자기 자신을 찾는다.”

Q. <작은 아씨들>에서는 남성 캐릭터들이 여성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성 캐릭터들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주인공들의 뒷통수를 치는 경우가 없었다. 이것도 의도한 부분인지 궁금하다.

“그것도 앞의 대답과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남성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쓰는 것이 저에게는 더 힘들다. 그래서 (크게 꼬아서 묘사하지 않는)스트레이트한 캐릭터를 쓰는 것이 편하다. 그리고 제가 살면서 만난 남자들이나, 제가 좋아하는 남자들이 좀 스트레이트한 것 같기도 하다. 다음 작품에선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웃음)”

Q. 여성 캐릭터들에게 과도한 로맨스를 일부러 부여하지 않았다는 해석도 있었다. 뻔한 전개를 피하려했던 것일까.

“러브라인에 대한 부분은 오해를 풀고 싶다. 오인주는 관계 중심적으로 살아왔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다. 인주를 위해서는 독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최도일(위하준)과 엮어주지 않은 것이다. 도일에게도 스스로를 리모델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둘째인 오인경(남지현)은 자신의 목표만을 위해 달려온 사람이기 때문에, 관계를 맺는 것이 인경에게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종호(강훈)와 연결되는 결말로 갔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첫째 오인주 역을 맡은 김고은. CJ ENM 제공.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첫째 오인주 역을 맡은 김고은. CJ ENM 제공.

돈·돈·돈··· 아씨들이 돈과 가난을 질리도록 이야기하는 이유

Q. 극중에서 원령그룹이 조성한 700억이라는 비자금이 지배적인 설정으로 나온다.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돈 얘기만 한다. “겨울코트? 가난은 겨울옷으로 티가 나요”, “가난한 집에서 자랐어요? 참는 걸 잘하길래” 같은 대사가 화제가 됐다. 돈과 가난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궁금하다.

“돈 이야기를 정말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가 쓴 것이지만 1부를 봤을 때 ‘와, 모든 사람들이 모든 문장에 돈 이야기를 하고 있어!’라고 느꼈다. 심지어 돈을 주제로 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돈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장면구성은 마치 제인 오스틴 소설 같은데, 다 돈 이야기만 하니까 ‘와, 새롭다’고 느꼈다.

최근 몇년 사이에 사람들이 정말 돈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고 느꼈다. 낯선 사람과 만나서도 금방 ‘주식 올랐냐’ ‘비트코인 하고 있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사회가 변한 데 어떤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을 따라잡고 싶었다.”

Q. 청년들이 대놓고 돈 이야기만 하는 드라마는 많이 못 본 것 같다.

“실제 사회에서도 젊을수록 돈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마치 영어공부하는 것처럼, 자기계발하는 것처럼 돈에 대해서 공부해야하는 사회가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젊은 사람일수록 돈을 실물로 만져보고 쓸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결핍이 커서가 아닐까. 그래서 드라마 속에서는 주인공들에게 아주 큰 돈을 쥐어주고 싶었다. 돈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큰 돈을 얻게 되면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할까. 그것이 이들에게 어떤 가능성을 줄지 궁금했다.”

Q. 700억이라는 큰 돈을 나눠가진 자매들이 돈을 더 의롭게 쓰는 결말까지 넣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어쨌든 그 돈은 원령그룹의 비자금으로 조성된 ‘검은 돈’이니까.

“결말에 대해서는 처음 기획단계에서도 생각을 많이 했다. 기획에 참여하던 PD님 중 한 분은 주인공이 범죄의 일부에 속하는 결말로 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래서 자문 변호사님께 ‘만약에 주인공이 이 돈을 정당하게 사법처리해서 환원하려면 절차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원령그룹과 난초협회에서 돈세탁을 한 비자금이기 때문에,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세금을 환수한 후에는 원령그룹과 난초협회로 돈이 돌아갈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

그 답을 듣고는 ‘그것이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결말일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현실적 결말이지만, 그로부터 어떠한 감정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까. 그래서 가장 어린 사람인 셋째 오인혜(박지후)에게 그 돈을 쥐어주기로 했다. 검은 돈의 역사와 흐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세대에게 기회를 줄 때 미래가 어떻게 달라질까 생각해보고 싶었다.”

Q. 대사 중에서 가장 고민해서 쓴 대사는 무엇인가.

”전부 다 고민해서 쓰지만, 3부에서 인주와 인경이 열무김치통에 있는 돈을 마주하고 하는 대화를 쓸 때 가장 고심했다.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납득하지 못할지라도 인정하게 하고 싶었다.

인주가 인경에게 ‘그때 가슴에 새겨졌어. 돈이 없으면 죽는다. 난 아버지가 도둑질을 해서라도 집에 돈을 가져왔으면 했어. 우리가 먹고, 우리가 살고, 우리가 죽지 않게. 사람은 가난하면 죽는다’라는 대사를 한다. 그 대사를 썼을 때 가장 좋았다. 여기가 우리 드라마의 바닥이고, 여기서부터 주인공들이 각자의 목표를 향해서 가겠구나.”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한 장면. CJ ENM 제공.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한 장면. CJ ENM 제공.

“농부, 선원, 구두수선공, 일용직 노동자, 호텔보이”, ‘작은 아씨들’ 속 현대사

Q.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작가님이 한국 현대사를 다루고 싶어하는 것을 알았다. 극중에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유하고 막강한 사조직인 정란회를 세운 원기선 장군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생사를 함께한 부대원들이 원 장군의 성공을 물밑에서 돕는다. 이같은 설정을 보고 SNS에서 한 시청자는 작가님이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이라는 책도 읽었을 것이며, 현대사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는 분석을 하더라.

“몇년 전에 그 책 읽었다. 현대사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맞다. 제가 역사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국 현대사와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서 저는 한국 현대사가 단순하게 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예를 들어 부자가 되는 플롯과 가난한 사람이 되는 플롯이 있다고 하면, 현대사에서 그 플롯이 몇 가지가 안 된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삶의 조건이 비슷해졌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사람은 가난해지고 세습을 통해 부를 이룬 일부가 생겼다. 부자가 된 사람들은 대체로 전쟁을 거쳤다. 그 이후 삶에서도 전쟁에서 하던 방식으로 살아오며 부를 이룬 사람들이다. 베트남 전쟁도 그 중의 하나다. 거기서 싸우다 죽은 사람들도 있는데 누군가는 경제부흥의 기회를 얻었다. 대기업들은 사업 기반을 다지기도 했다.”

Q. 극중 베트남 전쟁을 서술한 부분에서 역사 왜곡 논란도 있었다. 작품 속에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군인인 원기선 장군이 “한국 군인은 베트콩 병사 20명을 죽일 수 있다. 어떤 군인은 10명까지 죽였다” 등의 발언을 한 것을 두고 베트남 방송전자정보국이 방영 금지 요청을 했다.

이에 대해 정 작가는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를 그대로 옮긴다.

“작품 속 돈의 기원을 설명하며 그 시작으로 베트남 전쟁을 생각했다. 우리나라가 베트남전에서 외화 도입을 하며 경제 부흥을 시작한 것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었다 그런 맥락에서 다루다 보니 전쟁에 대한 현지 관점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베트남전에 대한 사실관계를 다루거나 정의하려는 의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베트남 반응에 대해 크게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반응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글로벌 시장에서 드라마 집필하며 시청자 반응에 더욱 세심하게 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아씨들’에서 장사평(장광)은 원 장군과 함께 싸운 부대원으로, 원 장군의 성공과 정란회의 유지를 위해 음지에서 움직인다. CJ ENM 제공.

‘작은 아씨들’에서 장사평(장광)은 원 장군과 함께 싸운 부대원으로, 원 장군의 성공과 정란회의 유지를 위해 음지에서 움직인다. CJ ENM 제공.

Q. 극중에서 원 장군을 따라 베트남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부대원들의 직업은 “농부, 선원, 구두수선공, 일용직 노동자, 호텔보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작가님이 역사에 등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나타낼 만한 목소리도 남기지 못한 수많은 민초들, ‘서발턴’(subaltern)에 대해 말하고 싶어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렇다. 베트남 전쟁에서 실제로 참전해서 죽은 사람들은 누굴까 생각했다. 미국에서 베트남 전쟁에 나가서 죽은 군인들에 대한 연구를 보면 사회 취약층의 비율이 상당히 높더라.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연구가 잘 안되어있는 것 같아서 자료를 찾기가 어려웠는데, 한국도 비슷할거라 유추할 수 있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의 보수적인 주장과 투쟁현장 등을) 뉴스에서 볼 때마다 그들의 주장이 억지스럽거나 기이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저기에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화가 잘 되진 않지만, 무언가가 있는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데서 시작하고 싶었다.”

Q. 베트남 전쟁이 끝났는데도, 드라마 속 부대원들은 현실 속에서 마치 전쟁하듯 조직을 이루고 산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진 않지만, 전쟁을 겪었으며 그 이후에도 전쟁처럼 살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전쟁을 안 겪은 젊은 사람들도 전쟁같은 삶을 산다. <작은 아씨들> 속 세 자매의 삶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엄마, 아빠가 만들어놓은 전쟁통 같은 삶 속에서 자신들의 잘못으로 가난하게 됐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싸우듯 살아가고 있지 않나.

잘 전달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세대’는 제가 다루고 싶어하는 주제다. 가난한 계층, 부유한 계층은 나누기가 참 쉬운데 세대간 불균형은 드라마에서 다루고 이해하게 하기가 참 어렵다. 그래도 하고 싶었기에, <작은 아씨들>에서는 세대간 수직적 구조를 넣었다. 무엇보다도 젊은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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