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된 경험, 내 인생의 도움닫기읽음

제주 |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 2 > 제주 탐라도서관 ‘책 만들기’ 수업

오전부터 내리던 비가 차츰 잦아들던 지난 13일 일요일 오후, 제주 노형동 탐라도서관 세미나실엔 삼삼오오 반가운 인사와 정담이 오가고 있었다. “어머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축하해요” “고마워”. 꽃다발을 건네는 손길과 간간이 터지는 웃음꽃이 따뜻함을 더했다.

탐라도서관은 2020년부터 수강생이 원고 작성부터 편집, 디자인, 인쇄과정 전반에 참여해 책 한 권을 발행하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프로그램 제목은 ‘독자에서 작가로, 생각에서 세상으로, 제주 독립출판’. 이날은 3기생 21명의 책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강사들의 축사 후 참여자들이 책 내용을 소개하고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지난 5월 시작해 6개월간 25회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은 소감을 형용사 한 단어로 표현해 달라는 주문에 ‘스트레스’ ‘날벼락 같은’ ‘독보적’ ‘신기한’ ‘뿌듯한’ ‘놀라운’ ‘판타스틱’ 등의 대답이 나왔다. 그야말로 갖가지 감정이 녹아있는 달콤쌉싸름한 경험인 듯했다.

난임 끝에 출산해 훗날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쓴 엄마, 제주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꼼꼼히 찾아 기록한 제주살이 3년차 이주민, 난치병을 앓고 있는 간호사, 발달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을 써 내려간 사회복지사도 있었고, 여행하며 만난 여성들의 이야기, 아빠가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책으로 탄생했다. 에세이가 많았지만 포토 에세이, 그림책, 동화책, 소설 등 형식도 다양했다.

<손녀가 듣고 기록한 제주 할망 자서전>의 저자 이경란씨는 “처음엔 부끄러워하시고, 남들이 웃는다고 화 내시던 할머니가 책이 나왔다고 하니 “요망진 손녀딸 때문에 이런 경험도 해본다”며 행복하게 미소짓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초등학교 교사로서 할머니의 삶 속에 담겨 있는 제주의 생활사를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답게 자유분방>의 저자 고예은씨는 “올해 작은 가게를 시작하며 바쁜 시간을 쪼개 오랫동안 꿈꿔왔던 책 만들기를 해냈다. 우선 나 자신에게, 그리고 고생한 가족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글쓰기 강의를 담당한 장보영 작가는 “쓰려는 의욕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것이 정말 즐겁고, 완주 과정을 보는 것도 보람이 컸다”고 말했다. 장 작가는 “준비 안 된 사람들이 너도나도 책을 낸다는 식의 독립출판물의 유행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지만, 글쓰기 행위가 물성을 가진 결과물로 나오는 것을 눈으로 직접 경험하는 것 자체가 개인의 삶에 주는 성취감이 굉장히 크다”며 “아무도 몰랐을 이야기를 사회를 향해 발언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이런 글을 써주셔서 고맙다는 생각이 드는 참가자 분들도 많았다”고 했다.

첫해엔 프로그램 신청 시작 2분 만에, 지난해와 올해엔 20~30초 만에 마감되는 선풍적 인기를 끈 이 프로그램은 전국적으로도 유명해졌다. 문의가 잇따르며 비슷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도 생겼다.

“제주에는 마을 곳곳 특색 있는 동네책방들과 일반서점이 100여곳에 달해요. 공립도서관이 소외된 곳 없이 골고루 분포돼 있고, 또 독립출판물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다 보니 지역 내 풍부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사업 주제가 정해졌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한 정선주 사서의 설명을 듣다보니 독립출판물을 격려하는 제주의 문화와 이를 포착한 기획, 도서관의 의지가 만나 좋은 결과를 끌어냈다는 생각이 든다. 3기까지 발간한 책은 총 67권. 탐라도서관은 2019년부터 전국독립출판물 박람회인 ‘제주 북페어’도 개최하고 있는데, 올해의 경우 참가팀만 200팀, 관람객 6000명 이상을 기록한 이름난 행사로 커가고 있다. 탐라도서관은 2020년에는 ‘제주독립출판’ 특화도서관으로도 선정됐다.

“도서관의 공공성이란 게 늘 아름답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공공성 덕에 책도 내고 멋진 경험을 하게 돼 참 감사합니다.” 한 참여자의 ‘도서관의 공공성’이란 말이 가슴에 쏙 들어온다. 도서관이 개인의 삶과 공동체를 가꾸며, ‘책을 읽고 쓰는 제주’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제주 | 글·사진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탐라도서관이 진행한 프로그램을 통해 원고부터 인쇄까지 자신의 손으로 책을 펴낸 참여자들이 지난 13일 출간 기념회에서 축하행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크게보기

탐라도서관이 진행한 프로그램을 통해 원고부터 인쇄까지 자신의 손으로 책을 펴낸 참여자들이 지난 13일 출간 기념회에서 축하행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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