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비의 칼과 펜

“사욕을 버리고 공동체에 헌신하라”…통치자의 신념 강제한 플라톤

윤비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16) 정의의 이름

1세기쯤 제작된 플라톤의 아카데미. 폼페이 시에서 발굴된 모자이크.

1세기쯤 제작된 플라톤의 아카데미. 폼페이 시에서 발굴된 모자이크.

플라톤이 생각하는 정의로운 국가는 철저한 개인의 역할 분담…‘수호자’가 정치 전담하길 주장
우수한 혈통 지닌 ‘수호자’들이 공동체에 헌신하도록 철저히 교육…공동생활하며 소유도 제한
오늘날 기준으로는 전체주의에 가까운 사상…전쟁 패배 이후 아테네의 취약한 현실 고려해야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 소크라테스-플라톤(이제부터는 간단히 플라톤이라고 부르겠다. 물론 지난번에도 이야기했듯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상당 부분 실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담고 있으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은 부강한 나라는 지금 잘나가는 이런저런 나라를 무작정 흉내 내는 것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고 보았다. 중요한 것은 정의로운 시민, 정의로운 국가를 이루는 것이며 이는 정의가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플라톤에게 정의를 이해한다는 것은 ‘좋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좋음’이라는 뜻은 ‘내가 너를 좋아해’라는 뜻의 좋음도 아니고 ‘그 사람 좋은 사람이야’라는 의미의 좋음도 아니다. ‘좋음’은 뭔가가 제대로 돌아가는 상태이다. 나무가 제때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한다면 그것은 ‘좋은’ 상태이다. 잘 먹고 잘 자고 몸 구석구석 아픈 곳 없이 잘 움직이면 마찬가지로 ‘좋은’ 상태이다. 가정이 화목하고 궁핍하지 않으면 ‘좋은’ 상태이고 국가가 안정되고 번영한다면 그것 역시 ‘좋은’ 상태이다. 무엇인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는 상태, 그것이 ‘좋은’ 상태이다.

정의는 사회 및 국가 질서가 ‘좋음’에 도달했을 때를 일컫는다. 정의로운 국가는 이런 좋은 상태에 도달하여 이를 유지해가는 국가이다. 정의로운 인간은 이런 좋은 상태를 이해하고 그를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다. <국가>에서 플라톤은 국가 차원의 정의를 먼저 이야기하고 이어서 개인 차원의 정의를 이야기하겠다고 한다. 큰 물체를 관찰하는 것이 작은 물체를 관찰하는 것보다 쉽듯, 정의 역시 국가처럼 덩치 큰 곳에 있을 때, 인간의 정신처럼 작은 곳에 있을 때보다 분석하고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플라톤이 생각하는 정의로운 국가는 철저한 역할 분담을 원칙으로 한다. 사람들이 정치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것은 어차피 한 사람이 필요한 모든 물건을 만들 수 없고 그렇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즉 인간들은 필요해서 정치공동체로 뭉친다. 그 안에서 농부, 집 짓는 사람, 베 짜는 사람, 신발 만드는 사람, 장사꾼, 날품팔이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 하며 살아간다. 물론 나라가 더 커지면 시인, 배우, 무용가, 가정교사, 유모, 이발사, 요리사, 빵 만드는 사람 등 더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플라톤은 이런 역할 분담론을 정치에까지 확장해서 적용한다. 그에 의하면 국가를 다스리고 보호하는 것(여기에는 전쟁도 포함된다)도 일종의 전문 기능이다. 모든 전문 기능에는 그 일을 전담하는 사람이 있듯 여기에도 특화된 사람들이 있다. 이를 플라톤은 수호자라고 불렀다. 정치는 이들이 전담해야 한다.

플라톤은 인간마다 근본적으로 자질이 다르다고 여겼다. 수호자의 자격을 갖춘 이들은 일단 혈통부터 다르다. 기백 있고 신체적으로 강건하다. 적에게는 사납지만, 동료 시민들에게는 유순하기도 하다. 여기에 영리하기까지 해서 지혜를 사랑하고 학문을 즐긴다. 그 안에서도 지도자의 지위에 더 어울리는 사람들과 이들을 보조하는 것이 좀 더 어울리는 사람들로 나눠진다. 한편 나머지 사람들은 이들 수호자의 지도를 받아들이며 정치가 아닌 다른 일에 종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플라톤은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심지어 그는 신이 인간을 만들 때 금, 은, 동, 철을 각각 다른 비율로 섞었으며, 고귀한 금속이 얼마나 들어갔는가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주장까지 폈다. 금이 들어간 인간은 리더, 은이 들어간 인간은 그들을 원조하는 사람, 동이나 철이 주로 들어가면 일반시민으로서 리더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플라톤 사후 제작된 플라톤 두상의 로마시대 모작. 로마 카피톨 박물관 소장

플라톤 사후 제작된 플라톤 두상의 로마시대 모작. 로마 카피톨 박물관 소장

플라톤은 이런 여러 부류의 인간들 가운데 국가를 이끌기에 적합한 자질을 가진 이들을 어떻게 발굴하고 길러야 하는가에 큰 관심을 보인다. 그는 아예 출생부터 통제하기를 바란다. 열등한 혈통의 사람과 관계하여 아이를 낳게 되면 우수한 혈통을 버려놓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속임수를 써서라도 우수한 혈통의 사람이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과 짝을 지어 아이를 갖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여겼다.

출생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교육이다. 플라톤은 국가가 우수한 혈통을 지닌 수호자들이 옆길로 새지 않고 자신들의 자질을 꽃피우도록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믿었다. 논의는 길지만, 주장은 간단하다. 보호자들에게 정의에 대한 신념, 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절제와 용기, 그 밑받침이 되는 이타심과 애국심 이외 나머지 감정이나 생각, 예를 들어 낭만, 애수 따위의 생각은 모조리 제거해버려야 한다

음악조차 조화롭고 씩씩한 리듬과 곡조의 것만 들어야 한다. 정의에 대한 신념,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조금이라도 꺾을 만한 이야기, 삶에 대한 비관주의를 불어넣을 시나 노래는 아예 이들의 귀에 들리지도 못하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만일 플라톤이 보호자들에게 노래방을 만들어주고자 했다면 그 안에는 군가나 교육 목적의 노래는 차고 넘칠 만큼 있었을 테지만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나 디핵의 ‘오하요 마이 나이트’ 같은 노래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여타 개인적인 편익이나 안락도 허용되지 않는다. 모두는 공동생활을 하게 되어 있으며, 사적 소유도 극히 제한된다. 심지어 아내도 공유해야 하고 아이들도 공동 양육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대로 된 가족이 만들어지면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공무를 그르칠 위험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플라톤의 수호자는 굉장히 불쌍한 사람들이다. 아테네 사람들도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데이만토스는 한창 수호자들의 교육에 대해 열을 올리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끊고 이런 나라의 지배자들은 불행한 존재들일 뿐이라고 항의한다. 국가를 지배하지만 누리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땅도, 멋진 집도, 돈도 없다. 사치는커녕 여행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애인의 마음을 살 선물 하나 할 돈도 없다.

이에 대해 플라톤은 제대로 길러진 수호자들이라면 이런 삶을 행복하게 여길 것이라고 변명한다. 더불어 그는 “우리가 나라를 세우면서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어떤 한 계급이 아니라 나라 전체가 행복해지는 것”(<국가>, 조우현 역)이므로 수호자들이 겪는 이런 불이익을 너무 심각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신이 구상한 정치 질서에 대한 플라톤의 변론은 우리 귀에는 전체주의자의 변명으로 들린다. 정치공동체 전체의 행복보다 한 계급이나 집단의 행복이 앞설 수 없다는 주장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겠지만, 전체의 행복을 위해 한 집단이 도구처럼 취급되어 길러져도 된다는 생각까지 옹호하기는 힘들다. 그렇게 길러진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행복하다고 여길 때 우리는 그것을 행복이 아니라 ‘완벽한 세뇌’라고 부른다.

사실 아무리 좋게 읽어도 플라톤이 그리는 <국가>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극단적인 아이디어를 꽤 담고 있다. ‘왕후장상에는 씨가 있다’는 식의 주장이나 고귀한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남녀관계까지 조작해야 한다는 생각은 아무리 차이에 너그러운 민주주의자라도 불쾌하게 여길 것이다.

실제로 플라톤은 민주주의에 대한 반감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마음속에 싹튼 탐욕과 이기심이 마구 뻗어나간 결과이다. 플라톤이 민주주의만 비난한 것은 아니다. 그는 참주제도, 과두제도, 귀족정부도 모두 시민의 이기심을 통제하지 못해 국가까지 병이 든 결과 빚어진 것으로 여겼다.

물론 플라톤 사상의 이런 ‘반민주성’을 지나치게 부각할 필요는 없다.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오늘날의 잣대로 한 사상가를 배척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은 과거에 접근하는 바른 방법은 아니다. 어차피 19세기 후반까지도 민주주의에 대해 호의적인 문필가나 정치이론가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왕정을 못마땅히 여기고 심지어 비난한 공화주의자들조차도 대부분 민주주의를 그다지 좋게 보지 않았다. 우리는 과거 사상가들을 우리가 동의할 만한 결론을 내리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양 정치이론의 역사는 플라톤 사상의 각주일 뿐이라는 식으로 플라톤 사상의 의미를 과장해서도 안 된다. 서양의 역사에서 플라톤이 처음으로 정치 및 국가에 대해 체계적인 이론을 내놓은 것은 사실이다. 그가 포착하고 토론했던 여러 문제들이 오늘날도 여전히 이슈로 남아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 사회에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치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이미 플라톤이 말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곤란하다.

플라톤에 대한 과장된 존경심을 거두고 한걸음 떨어져 생각해보면 그의 시대가 우리로부터 얼마나 먼가를 알게 된다. 플라톤이 그리는 국가는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아주 원시적이다. 이 연재를 통해 계속해 강조했지만, 당시의 정치공동체는 작은 위협에도 쉽게 무너지고 심지어 사라질 수도 있는 매우 취약한 존재였다. 겨우 몇만명 규모의 인구에 경제적 생산력은 낮은 도시에서 전쟁에 의해서든 질병에 의해서든 단 몇천명만 사망해도, 공동체는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가뭄에 의한 흉작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도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외부의 위협에 맞서 동원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이 뻔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면 “닥치고 한데 뭉쳐 돌격 앞으로!”식의 생각이 쉽게 자라나고 인기를 끈다. 한때 주변 지배지역을 포함하여 30만에 달하는 인구를 가진 그리스 최대 도시 아테네였지만 이런 한계를 근본적으로 벗어나지는 못했다.

더욱이 플라톤이 활동하던 무렵의 아테네에서는 너나없는 총력동원으로 위기를 넘어서야 한다는 생각이 쉽게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어 있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패배 이후 부정할 수 없게 된 국력 쇠퇴의 현실이 아테네인들을 마치 숙취 후 찾아오는 불쾌감처럼 내리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를 병영처럼 일사불란하게 재조직하여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플라톤의 생각은 이런 배경에서 출현했다.

<국가>가 수호자들을 길러내고 유지하는 문제를 유독 길게 다루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미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부터 아테네는 리더십의 위기를 심각하게 겪었다. 투키디데스는 페리클레스가 죽고 난 후 고만고만한 정치지도자들이 욕심만 부리다가 결국 나라를 이 꼴로 만들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전쟁에서 패배한 후 리더십을 둘러싸고 벌어진 내홍에 대해서는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다. 플라톤이 어떤 사람들이 리더가 되어 어떻게 국가를 끌고 가야 하는가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인 것은 이런 상황에서 보면 당연하다.

플라톤은 국가의 지도자를 키워내는 데 있어 철학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 소피스트들은 철학을 우주와 인간에 대한 쓸모없는 한담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플라톤은 철학이 정치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지혜이며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철학이 권력과 결합할 때 가장 강하고 번영하는 국가가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철인왕의 사상이다. 다음 글에서 계속 이야기한다.

▶윤비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비의 칼과 펜] “사욕을 버리고 공동체에 헌신하라”…통치자의 신념 강제한 플라톤

정치이론을 역사 및 문화와 관련지어 연구한다. 베를린 훔볼트대 정치학과 및 역사학과,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서양정치사상을 강의하였다. 가르친다는 일을 영광으로 여기며 산다. 2021년 마키아벨리를 주제로 독일에서 단행본을 출간하였다. 2018~2020년 한겨레 신문에 ‘윤비의 이미지에 숨은 정치’를 연재하였고, EBS <지식의 기쁨> <세바시> 등에서 강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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