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이 뜨거운 역사의 현장” 농촌 도서관이 불 댕긴‘아리랑’ 읽기 열풍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4> 전북 김제 금구도서관 ‘아리랑으로 돌아보는 김제 역사’

전북 김제시에 <아리랑> 열풍이 불고 있다. 김제시 금구리의 작은 농촌 도서관이 대하소설 <아리랑>으로 진행한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이 불을 댕겼다. 이 도서관의 본관인 김제시립도서관에 ‘아리랑 독서단’이 꾸려지는가 하면 김제 시민들은 전체 12권에 이르는 이 장편 소설의 필사(筆寫)에 나섰다. 김제시 서낭당길 김제시립도서관에서는 지난 9월부터 매주 화요일 밤‘아리랑 독서단’이 열린다. 김제 시민 20여명이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을 읽으며 여기에 담긴 역사를 공부하는 책 모임이다. 모임이 꾸려진 것은 산하 분관인 금구도서관이 지난 5~8월, ‘징게 맹갱 외에밋들 아리랑으로 돌아보는 김제역사’라는 주제로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을 마친 직후였다. 그러니까 ‘아리랑 독서단’은 금구도서관이 열었던 프로그램의 속편인 셈이다.

김제시립도서관 금구분관이‘징게 맹갱 외에밋들 아리랑으로 돌아보는 김제역사’라는 주제로 진행한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을 읽은 뒤 토론하고 있다.

김제시립도서관 금구분관이‘징게 맹갱 외에밋들 아리랑으로 돌아보는 김제역사’라는 주제로 진행한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을 읽은 뒤 토론하고 있다.

‘징게 맹갱 외에밋들’은 ‘김제 만경 너른 들’을 뜻하는 옛말이다. 김제 만경 넓은 들을 품은 호남평야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이는 곡창이다. 하지만 그 풍요로움 때문에 일제강점기에는 혹독한 수탈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리랑>은 일제의 수탈 때문에 하와이로, 만주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민초들의 수난과 저항의 역사를 문학으로 응축한 작품입니다. 김제 만경 넓은 들은 이를 증언하는 공간이지요.”

금구도서관에서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을 담당한 백승현 사서의 말이다. 프로그램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12차례의 모임과 2차례의 탐방으로 구성됐다. 매회 책을 읽고 토론에 나선 이는 15명 정도. 기왕의 도서관 독서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한결같이 열혈 단원이었다. 젖먹이를 안고 나오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수시로 모임을 업로드하는 유튜버도 있었다.

“<아리랑>의 무대에 살면서도 12권이나 되는 분량에 질려 완독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 덕분에 <아리랑>을 모두 읽었어요.”

프로그램에 참여한 최장순씨의 말이다. 최씨가 책을 읽으면서 확인한 작가의 취재는 섬세했다. 내가 살아온 공간인데도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토론에서는 참가자들이 보고 듣고 경험한, 살아 있는 역사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이어 탐방한 소설 속의 공간도 이전에 놀이 삼아 찾았던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나라를 빼앗긴 울분으로 순국한 선열의 얼이 담긴 남강정사, 동학농민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원평집강소, 소설의 공간을 재현한 아리랑 문학마을, 일제 수탈의 상징 하시모토 농장, 군산내항과 정미소, 째보선창….

모임을 이끈 조석중 배움아카데미 대표는 “소설을 읽고 책 속의 공간을 걸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곳이 수탈과 만행, 저항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을 재삼 깨달았다.”며 “끝까지 저항한 민초들의 숨결과 더불어 김제 시민으로서의 자긍심 또한 강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특히 프로그램 막판에는 정성주 김제시장이 독서토론이 열리던 금구도서관을 찾아 열기를 더했다. 이 도서관에서 열린 인문학 프로그램을 시장이 찾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낮에 진행된 금구도서관의 프로그램에 이어 밤 프로그램을 개설, 직장인도 참가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도 잇따랐다. ‘아리랑 독서단’이 밤에 모이는 이유다.

“분관과 본관에서 진행한 두 차례의 <아리랑> 독서 모임에 모두 참가하며 이 소설을 여러 차례 읽었습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웠어요. 훗날 아이와 함께 또 읽고 싶습니다.”

젖먹이를 안고 독서 모임에 나오기도 했던 관광통역사 오소정씨의 말이다. 오씨는 지난 10월부터 진행 중인 ‘<아리랑> 필사 릴레이’에도 참여했다. 전체 12권 174장(章), 200자 원고지 1만8000장에 이르는 대하소설을 시장과 시의회 의장을 포함한 174명의 김제 시민들이 나누어 필사하는 프로젝트다. 필사는 이달 말까지 완료, ‘징게 맹갱 외에밋들’에 있는 <아리랑> 문학관에 기증할 계획이다.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10년]“이 곳이 뜨거운 역사의 현장” 농촌 도서관이 불 댕긴‘아리랑’ 읽기 열풍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10년]“이 곳이 뜨거운 역사의 현장” 농촌 도서관이 불 댕긴‘아리랑’ 읽기 열풍
작은 농촌 도서관인 김제시립도서관 금구분관이‘징게 맹갱 외에밋들 아리랑으로 돌아보는 김제역사’라는 주제로 진행한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이후 김제시에는 소설 <아리랑> 12권 함께 읽기 열풍이 불고 있다. 위부터‘징게 맹갱 외에밋들 아리랑으로 돌아보는 김제역사’ 참가자들이 지난 7월 김제시 봉황로 원평집강소와 죽산면 내촌·외리 아리랑 문학마을을 탐방했던 사진, 김제시립도서관이 금구분관 프로그램의 후속으로 기획한‘아리랑 독서단’ 모집 포스터. 분관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본관이 확대, 진행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김제시립도서관 금구분관 제공

작은 농촌 도서관인 김제시립도서관 금구분관이‘징게 맹갱 외에밋들 아리랑으로 돌아보는 김제역사’라는 주제로 진행한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이후 김제시에는 소설 <아리랑> 12권 함께 읽기 열풍이 불고 있다. 위부터‘징게 맹갱 외에밋들 아리랑으로 돌아보는 김제역사’ 참가자들이 지난 7월 김제시 봉황로 원평집강소와 죽산면 내촌·외리 아리랑 문학마을을 탐방했던 사진, 김제시립도서관이 금구분관 프로그램의 후속으로 기획한‘아리랑 독서단’ 모집 포스터. 분관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본관이 확대, 진행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김제시립도서관 금구분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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