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고의 날을 수의로 담아내는 선조들 마음 감동”읽음

박주연 선임기자

수의 주제 4인전 여는 한복디자이너 이혜순씨

한복디자이너 이혜순씨가 지난 2월 1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담연’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수의에 얽힌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한복의 멋 그리고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에 대해 들려줬다. / 서성일 선임기자

한복디자이너 이혜순씨가 지난 2월 1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담연’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수의에 얽힌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한복의 멋 그리고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에 대해 들려줬다. / 서성일 선임기자

[주간경향] “눈 내리는 아침/ 할머니는 손수 지어놓으신 수의로 갈아입으셨다/ 수의는 1978년 7월 15일자 신문지에 싸여 있었다/ 수의를 지어놓고도 이십년을 더 사신 할머니는/ 백살이 가까운 어느 겨울날이 되어서야/ 연둣빛을 군데군데 넣어 만든 그 수의를/ 벽장 속에 숨겨둔 날개옷처럼 차려 입으신 것이다/ (중략)/ 수의 한벌과 삼베 두 조각으로 따뜻하게 여며 입고/ 할머니는 1998년 1월 19일 아침/ 흰눈이 내리는 새로운 집으로 걸어들어가셨다”(나희덕 시인의 ‘삼베 두 조각’)

살아서는 입을 수 없는 옷이 수의(壽衣)다. 죽어서야 입을 수 있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옷이다. 수의에 단추와 호주머니가 없는 것은 이승에서 얽힌 모든 인연과 소유욕을 훌훌 털어버리고 홀가분하게 떠나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의 각종 의례 양식을 집대성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정조 5년 발간 목판본)에 따르면, 수의는 고인이 생전에 입었던 옷 중 가장 좋은 것으로 지었다. 왕과 왕비의 수의 또한 색이 뚜렷하고 자수가 놓여진 가장 아름다운 예복으로 했다.

이혜순(담연), 이혜미(사임당by이혜미), 김민정(한복린), 송혜미(서담화) 등 유명 한복디자이너 4인이 수의를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 오는 3월 3일부터 25일까지 서울 강남구 갤러리 LVS에서 관람객을 맞는 <사개死開: 지고, 피고>전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을 나눠 맡은 이들은 저마다 해석을 달리한 비단 수의를 선보인다.

이중 고증을 바탕으로 선과 색이 고운 한복을 짓는 것으로 명성을 얻어온 이혜순씨(63)를 지난 2월 14일 만났다. 그는 2010년 G20 정상회의 때 퍼스트레이디를 위한 ‘Formal Style Gala Show’에 참여해 갈채를 받은 것을 비롯해 다수의 패션쇼와 화보, 전시를 통해 한복의 멋을 보여줬다.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 <쌍화점>(2008)의 의상 디자이너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서성일 선임기자

사계절 중 겨울 맡아 목화솜 ‘소색’ 사용
어떤 색도 품는 우리네 민족성 상징이자
고인과 인연이 돼 행복했단 느낌 주는 색

-염습(殮襲)할 때 죽은 이에게 입히는 수의를 저마다 해석해 선보이는 전시가 이채로워요.

“죽음은 누구나 겪게 되고, 장례 기간은 삶과 죽음이 공유되는 시간이에요. 죽은 자가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잠시 머무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살아 있는 이가 죽은 이에게 정성껏 입혀 드리는 수의는 산 사람의 옷이기도, 죽은 자의 옷이기도 해요. 속곳부터 쓰개와 신발까지 예복으로 갖추어 입는 동안 떠나는 이와 보내는 이가 서로를 정리하죠. 이번 생의 수고로움을 치하하고 다음 생을 축복해요. 그래서 전시 제목에도 지고, 피고가 들어간 거예요. 이처럼 수의에는 많은 함의가 담겨 있어요.”

-전시를 위해 어떤 수의를 지었나요.

“살아가면서 가장 호사스럽고 즐거웠던 날 입은 옷으로 짓는 게 수의예요. 여성은 혼례 때 주로 입는 예복인 원삼, 남성은 관복이죠. 옷감은 주로 명주나 비단 종류가 사용됐어요. 다홍치마에 연두저고리 등 색색의 수의도 출토됐고요. 저는 이번 전시에 사계절 중 겨울을 콘셉트로 한 수의를 맡았어요. 색을 다 뺀 소색(素色)을 썼죠. 쉽게 표현하면 아이보리색인데, 목화솜에서 뽑은 정제되지 않은 실의 색이라고 해서 저는 바탕 소(素)를 써서 소색이라고 표현해요.”

-소색을 사용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흰옷을 즐겨 입는다고 해서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흰옷을 선호하는 이유가 염료값이 비싸서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에요. 일부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저는 좀 다르게 해석해요. 소색은 비워진 채 어떤 색이든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있어요. 그게 우리 민족성과도 닮았다고 생각해요. 또한 염을 하는 시간은 죽은 이와 산 자의 이별식이잖아요. 고인은 남겨진 이들에게 어떻게 보여지길 원할까 생각해봤어요. 따뜻한 사람, 그래서 인연이 돼 행복했다는 느낌을 산 자들이 가지길 바라지 않을까 짐작했어요. 도움을 주는 색이 소색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는 수의를 구성하는 여러 종류의 옷가지와 베개, 장매, 천금(이불), 지금(요) 등의 소품들을 하나씩 꺼내 보이며 설명했다. 특히 오낭(五囊)과 과거 고인의 머리맡에서 꼬아 장례 후 태워 버렸다는 영혼매듭에 대해 강조했다.

“수의 품목 중 삶을 정리하는 마음이 가장 잘 표현된 게 오낭이에요. 다섯 개의 주머니에 죽은 이의 머리카락과 좌우 손톱과 발톱을 각각 담잖아요. 버리지 않고 굳이 주머니를 만들어서 그것도 따로따로 넣게끔 준비한 선조들의 삶의 철학을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사람의 형태를 본떠 만드는 영혼매듭은 육신을 떠난 영혼이 장례 기간 동안 앉아 쉴 곳을 만들어 놓는 의식이에요. 저는 돌아가신 분을 위한 옷 짓기도, 그렇게 삶을 해석하고 따른 선조들의 마음에도 감동했어요. 저는 그래서 오낭과 영혼매듭을 갖춤품목에 넣고 예쁘게 만들도록 노력해요.”

<사개死開: 지고, 피고>전에 출품할 이혜순씨가 지은 수의. 색을 다 뺀 소색(素色)을 사용했다. / 갤러리 LVS 제공

<사개死開: 지고, 피고>전에 출품할 이혜순씨가 지은 수의. 색을 다 뺀 소색(素色)을 사용했다. / 갤러리 LVS 제공

삶을 정리하는 마음 가장 잘 표현된 ‘오낭’
영혼이 쉴 곳인 ‘영혼매듭’ 등 선조들 철학
상주의 상복도 정성껏 미리 짓는 경우 많아

-상복(喪服)도 출품한다지요.

“제가 이번 전시에 참여한 중요한 이유예요.”

-왜요.

“죽은 이를 대신해 손님들을 맞는 이가 상주(喪主)잖아요. 그런데 장례식장에서 상복 속에 청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상주들이 적잖아 안타까웠어요. 과거에 상복은 미리 지어놓는 경우가 드물었어요. 장례를 치른 후 다 태웠고요. 태우는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되는데, 급히 짓느라 바느질이 허술했고, 돌아가신 분의 혼령이 옷에 붙을까봐서였을 거예요. 그런데 제 할머니는 조상의 혼령은 길(吉)이 되지 해(害)는 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요즘엔 상복도 미리 준비해놓는 가정이 늘었어요.”

-상복을 미리 지어놓는다고요.

“4년 전 오랜 고객이 전화를 걸어와 자녀분들이 당신의 장례식 때 입을 상복을 지어달라고 하셨어요. 당신의 수의를 진작에 만들어두신 그분은 TV드라마에서 장례식 장면을 보다가 정신이 번쩍드셨다고 해요. 자녀분들 모두 치수를 재어 잘 지어드렸어요. 이후에도 상복을 지어달라는 분들이 꽤 계셨어요.”

영혼매듭 /서성일 선임기자 사진 크게보기

영혼매듭 /서성일 선임기자

-지금 입고 계신 한복처럼 혹시 자신이 입을 수의도 만들어뒀나요.

“아직…. 하지만 제게 큰 의미가 있어서 훗날 제가 세상을 떠날 때 아이들에게 수의로 입혀달라고 당부할 가능성이 있는 옷이 있어요. 잘 보관하고 있죠.”

-어떤 사연이 있는 옷이길래요.

“저는 한복에 자부심과 감동을 느끼며 일과 삶을 꾸려왔어요. 또 늘 한복을 입고 생활하는 것도 제가 입어야 고객들에게도 가장 편안한 한복을 지어드릴 수 있다는 신조 때문이에요. 길거리 쇼윈도에 비친 저는 한복 차림이어서 행인들 속에서 도드라져요. 그런 제 모습을 보며 한복이 지닌 품위에 걸맞은 반듯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이 일을 접어야 하나 갈등했을 만큼 큰 상처를 입은 사회적 이슈가 있었어요.”

-신라호텔 뷔페식당 출입 제지 건 말인가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떼며) 그 일이 발생한 게 제가 한복을 입었기 때문이잖아요. 그러면 그게 한복이 받는 대우예요. 한복을 입고 지으면서 자존감과 뿌듯함을 느끼며 살아왔는데, 그게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했어요.”

해당 사건은 2011년 4월 발생했다. 그는 신라호텔 뷔페식당을 방문했다가 입구에서 한복 차림은 입장이 안 된다는 안내를 들어야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었다.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이 그를 직접 찾아가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그는 “방황하다 안 되겠어서 그해 여름에 베르사유궁전에서 열리는 전시도 볼 겸 파리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했다”고 했다.

한복 자부심 무너지는 신라호텔 사건 후
파리 여행 때 입은 흰 저고리와 파란 치마
한국인 소년·중년 프랑스남 칭찬으로 회복

-어떤 일이 있었는데요.

“12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도착했어요. 당시 견사로 지은 흰 저고리와 파란 치마를 입고 갔는데, 구김이 전혀 안 생겼어요. 갈아입을 한복도 챙겨갔지만, 떠날 때 입었던 그 치마저고리를 이튿날에도 입고 베르사유궁전에 갔어요. 그런데 뭔가 느낌이 있어서 돌아봤더니 가족들과 궁전에 관광을 온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한국인 소년이 저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열심히 누르고 있었어요. 볼 것 많은 타국의 관광지에서 소년은 제가 입은 한복에 꽂힌 거예요.”

-한복 입은 모습이 소년의 눈에 꽤 좋아 보였나보군요.

“(웃음) 저도 모르게 소년의 카메라를 보며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날 밤 친구와 함께 센강변을 걷는데 중년의 프랑스 남자가 제게 계속 뭔가를 말해요. 알고 보니 그는 ‘오늘 고민이 있어 강가에 나왔는데 내 생각을 정리하게 도와준 것은 저 흐르는 강물이 아니라 당신의 우아한 모습이었다. 이 이야기를 당신에게 꼭 하고 싶었다’는 거예요. 그날의 이 두 사건이 상처 입고 잔뜩 웅크려 있던 저를 단숨에 치유해줬어요.”

명주로 얇게 원단을 짠 후 홍두깨로 두들겨 완성한 실크옷감을 소재로 사용했다. 거들기법(뒤는 끌리고 앞은 걸을 수 있게 접어 올린 치마)을 강조한 드레스라인이 돋보인다. / 담연 제공 사진 크게보기

명주로 얇게 원단을 짠 후 홍두깨로 두들겨 완성한 실크옷감을 소재로 사용했다. 거들기법(뒤는 끌리고 앞은 걸을 수 있게 접어 올린 치마)을 강조한 드레스라인이 돋보인다. / 담연 제공

그는 어쩌다 한복디자이너가 됐을까. 한복 전문가를 사사했거나 대학에서 의상 디자인을 전공했는지 물었다. 모두 아니었다.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서울에서 살았고, 상명여자사범대학(현 상명대)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다. 대학 2학년 때 남편 김진선씨(69)를 만나 연애했다. 취직할 틈도 없이 졸업 이듬해인 1983년 결혼하고 1984년과 1986년 잇따라 두 아들을 출산했다. 남편은 삼성그룹 계열사였던 전주제지에 공채로 입사했다.

-그러면 한복은 어떤 계기로 짓기 시작한 건가요.

“서른 살 넘어서 시작한 일이에요. 결혼하고 아이들 낳고 전업주부로 살다가 1993년 서울 광장시장에서 포목점을 열었어요. 당시만 해도 직물이나 디자인, 한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했어요.”

-어쩌다가요.

“지금은 건강하지만 남편이 결혼하고 얼마 후부터 많이 아팠거든요. 20대에 이미 간염 판정을 받아 휴직과 복직을 반복했고 나중엔 간경화로까지 악화됐어요. 한번은 복직 후 유럽으로 출장을 다녀왔는데 몸상태가 너무 안 좋아졌어요. 이러다 이 사람 잃겠다 싶어 회사를 그만두게 했어요. 그러니 저라도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 치킨집을 열까, 뭘 할까, 궁리하던 차에 아이들을 데리고 경복궁에 간 적이 있어요. 그곳 문화상품점에 들러 우연히 한복 관련 서적을 펼쳤다가 배자(저고리 위에 덧입는 짧은 조끼)라는 게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당시만 해도 저는 한복은 치마저고리와 두루마기만 있는 줄 알았거든요. 그 일이 계기가 돼 포목점을 연 거예요.”

-그러면 한복 디자인은 어떻게 배웠습니까.

“제 스승은 오직 책이었어요. 장사하며 틈틈이 원단 공부부터 시작했어요. 이후 우리 전통의 한복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유래와 역사 등을 공부했죠. 다만 디자인은 하지만 바느질을 직접 하지는 않아요. 전문 기술자에게 맡기죠.”

-한복디자이너라고 하면 한땀 한땀 곱게 바느질하는 모습부터 연상하는 분이 많아요.

“한복에 침선(바느질)은 중요하죠. 그만큼 세세한 옷감에 따른 다양한 침선 방법이 있고요. 올을 다투어 바느질한다고 하죠. 한복의 저고리는 길이에 따라 깃과 고름과 섶, 소매의 넓이는 물론이고 저고리 앞처짐 비율도 달라져요. 디자이너마다 추구하는 형태의 비율이 있어요. 저고리 아래쪽으로 받쳐 입는 치마는 저고리의 디자인에 따라, 혹은 입는 용도에 따라 기장과 폭이 달라지죠. 또 치마 주름의 넓이와 방법에 따라서도 형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그린 후 소재와 색, 침선 방법을 생각해요.”

면에 목화솜을 넣어 손으로 누빔을 한 액주음포(겨드랑이 아래로 주름잡은 겉옷)와 무명 치마저고리 / 담연 제공

면에 목화솜을 넣어 손으로 누빔을 한 액주음포(겨드랑이 아래로 주름잡은 겉옷)와 무명 치마저고리 / 담연 제공

남편의 건강 문제로 시작한 포목점서 독학
영화 <스캔들> 고증 충실한 의상으로 주목
열정 쏟았던 <광해> 의상 권리 잃어 아쉬워

이혜순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는 2003년 배용준·전도연 주연의 사극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제작하면서다. 그는 이후 조인성·주진모·송지효가 주연을 맡아 2008년 개봉한 영화 <쌍화점>의 의상도 디자인했다.

-영화의상은 처음에 어떻게 맡게 됐나요.

“2001년 무렵 광장시장으로 <스캔들>의 의상 겸 미술감독이었던 정구호씨가 찾아왔어요. 침선 무형문화재인 구혜자 선생님의 추천을 받았다고 해요. 사계절 옷감과 색을 추천했죠. 이후 숙부인 정씨를 연기한 전도연씨가 극중에서 입을 의상을 만들었어요. 조씨부인으로 출연한 이미숙씨의 옷도 제작했고요.”

<스캔들>이 개봉되던 2003년 그는 청담동에 매장을 냈다. 광장시장에서 인연을 맺은 바느질 기술자와 회계 업무에 능숙한 남편 김진선씨가 가세했다. 남편은 아내를 돕기 위해 전통복식으로 석·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이혜순씨가 빚는 옷이 고증에 충실할 수 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혜순씨는 2012년 개봉한 천만 관객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의상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상당수 옷이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했다. <광해>는 그해 대종상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시나리오상, 남우주연상, 의상상 등 16개 부문을 휩쓸었다. 의상상은 권유진·임승희 디자이너가 수상했다.

한복디자이너 이혜순씨가 자신이 의상을 제작한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와 <쌍화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영화 <광해>의 의상도 만들었지만 영화제작사가 바뀌면서 자신이 디자인한 의상에 대한 권리를 포기해야 했다”고 밝혔다. /서성일 선임기자

한복디자이너 이혜순씨가 자신이 의상을 제작한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와 <쌍화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영화 <광해>의 의상도 만들었지만 영화제작사가 바뀌면서 자신이 디자인한 의상에 대한 권리를 포기해야 했다”고 밝혔다. /서성일 선임기자

-<광해>의 의상을 지었다는 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예요.

“당초 이 영화는 <나는 조선의 왕이다>라는 제목으로 시네마서비스와 이 영화의 배급사이기도 한 CJ E&M이 공동제작하고 강우석 감독님이 연출을 맡았던 작품이에요. 2011년 그렇게 언론에 발표도 했고요. 하지만 CJ E&M과 제작사 사이에 이견이 발생하면서 강 감독님이 하차했어요. 저도 그때 빠졌어요. 의상은 CJ E&M으로 모두 넘겼고요. 이듬해인 2012년 같은 시나리오로 다른 제작사에서 완성한 영화가 <광해>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개봉한 거예요.”

-어떤 의상들을 디자인한 건가요.

“원작 시나리오대로 다 했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중전, 광해, 대신들 그리고 행인까지 원단을 고르고 염색하고 거기에 수를 놓은 보 디자인까지 모두요. 고증하고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완성했어요. 테스트 촬영까지 끝냈고요.”

-당초 제작한 의상이 영화에 그대로 나왔습니까.

“중전의 옷을 비롯해 그대로 나온 의상도 있지만,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부분이 희석되고 변형된 옷도 있었어요. 미술의 콘셉트가 바뀌었기 때문이었겠지만 제가 거기에 쏟은 열정이 기억나 마음이 안 좋았어요. 결국 끝까지 못 보고 중간에 영화관을 나왔어요.”

-어쨌든 자신이 정성껏 창작한 의상이 영화에 일부라도 쓰였다면, 왜 제작사에 즉시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나요.

“수상소감으로 권유진 의상감독이 ‘어머니(1세대 영화 의상 디자이너 이해윤)가 영화 의상이 참 좋다고 하셨다. 의상하면서 이 작품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말한 것 때문이에요. 제가 그 어머니께 좋은 일을 했구나 하고 마음을 내려놓았어요.”

-지금은 생각이 달라진 건가요.

“달라진 건 아니에요. 감독이 바뀌며 영화의 콘셉트도 달라졌을 것이고, 그 콘셉트에 따라 상황이 바뀌었을 테니까요. 다만 이 작품으로 한복이라는 옷이 세계 영화제의 문을 두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준비했고 그만큼 영화사에서도 든든히 지원을 받아 제작한 의상들이에요. 그 꿈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때 제가 만든 작품을 소장할 수 있도록 돌려주시면 좋겠어요.”

(이에 대해 권유진 디자이너는 기자와 통화에서 “제작비를 절감하려는 CJ 측의 요청에 따라 중전의 의상들과 양반들의 바지저고리를 비롯해 이혜순씨가 만든 옷 일부를 영화에 사용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혜순씨가 제작한 옷의 사용 비율은 10% 미만일 것”이라며 “10년 전 의상이어서 현재 해체되지 않은 온전한 상태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요즘같이 한복에 많은 관심이 쏠린 적도 드물어요. 트렌드나 한류, 세계화의 이름으로 한복의 디테일을 이용해 디자인한 옷이 많아요. 이런 흐름 속에서 제 역할이 뭔지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이번 4인 전시도 하게 됐고요. 우리의 전통문화가 정체성을 잃지 않고 시대를 반영하면서 나아가길 바라요. 한복의 아름다움에 특별한 순간과 일상의 감각을 담아 후손에게 전승될 수 있도록 저도 책임을 다할 생각이에요.”

<박주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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