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로 간 지상파 다큐 ‘나는 신이다’ ‘국가수사본부’…표현의 자유의 한계는 어디

최민지 기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넷플릭스가 투자하고 MBC가 제작했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넷플릭스가 투자하고 MBC가 제작했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웨이브 <국가수사본부>가 공개 직후부터 화제의 중심에 섰다. 두 콘텐츠의 공통점은 지상파 방송사인 MBC, SBS가 만들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라는 것이다. 지상파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와 노골적인 폭력 묘사에 대한 비판 등 ‘OTT 시대’ 지상파의 역할에 대한 의견이 교차하고 있다.

지난 3일 공개된 <나는 신이다>는 기독교복음선교회(일명 JMS) 총재 정명석을 비롯해 스스로를 ‘메시아’라 주장하는 4명의 인물을 소재로 한 8부작 다큐멘터리다.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와 오대양 사건, 아가동산 사건을 다룬다. MBC가 대표 시사 고발 프로그램인 <피디수첩>을 통해 사이비 종교 문제를 취재해 온 역량이 발휘됐다. 공개와 동시에 국내 넷플릭스 시청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사이비 종교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같은 날 공개된 <국가수사본부>는 강력계 형사들의 24시간을 따라가는 일종의 ‘형사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부산 양정동 모녀 살인 사건, 평택 강도 마약 사건 등 실제 사건의 발생 시점부터 수사, 체포, 기소까지의 과정을 밀착 취재했다. SBS 인기 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의 배정훈 PD가 기획·연출했다. 오랜 시간 <그알>을 통해 쌓아온 노하우, 경찰과의 긴밀한 관계가 돋보인다. 시사교양 부문 신규 유료가입견인 콘텐츠·시청시간 1위에 오르며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웨이브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국가수사본부>.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배정훈 PD가 연출했다. 웨이브 제공

웨이브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국가수사본부>.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배정훈 PD가 연출했다. 웨이브 제공

두 콘텐츠는 드라마, 예능에 이어 지상파 방송사의 시사 다큐멘터리가 OTT로 건너간 사례다.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이 날로 약화하고, OTT를 통한 콘텐츠 소비가 늘어난 상황에서 유통의 활로를 찾은 것이다. 글로벌 OTT의 거대 자본은 방송국 인력의 제작 역량을 발휘할 토대가 됐다.

특히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을 활용할 경우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로 시청자 층을 넓힐 수 있다. MBC가 제작한 넷플릭스 <피지컬 : 100>도 한국을 포함한 38개국에서 ‘비영어 TV쇼’ 부문 1위를 차지하며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매력을 알렸다.

각종 규제나 심의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도 제작자에게는 장점이다. OTT에서라면 지상파에서 할 수 없었던 연출도 가능하다. <국가수사본부> 2회 말미 끈질긴 수사로 살인 사건을 해결해 마음의 짐을 덜어낸 형사들이 웃으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OTT이기에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같은 표현의 자유가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 것만은 아니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는 공개 직후부터 노골적인 성폭력 묘사와 불필요한 연출로 비판을 받고 있다.

<나는 신이다> 1~3회는 기독교복음선교회(일명 JMS) 교주 정명석의 성폭력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넷플릭스 제공

<나는 신이다> 1~3회는 기독교복음선교회(일명 JMS) 교주 정명석의 성폭력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넷플릭스 제공

특히 문제가 된 것은 JMS 교주 정명석의 여성 신도 성폭력 사건을 다룬 1~3회다. 정명석은 1980년대 서울 대학가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영향력을 키웠고, 30여 년에 걸쳐 수많은 성폭력을 저질렀다.

다큐멘터리는 여성 신도들의 구체적인 피해를 여과없이 드러내는 연출법을 택했다. 정씨가 여성을 어떻게 성적으로 착취했는지는 배우들의 재연을 통해 보여줬다. 피해자들이 강요나 세뇌 상태에서 찍었을 나체 영상과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 없이 내보냈다. 여성 신도 여럿이 나체로 욕조에 앉아 정명석에게 ‘어서 오시라’고 손짓하는 영상은 각기 다른 회차에서 반복해 보여줬다.

피해 여성들의 젊고 아름다운 외모는 시종일관 강조됐다. ‘170㎝ 넘는 키’ 같은 피해자들의 신체 특징이 내내 거론되고, 카메라는 재연 배우의 길게 뻗은 다리 실루엣을 비춘다.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의 성폭력을 다룬 7~8회에도 유사한 연출이 포함됐다. 대역 배우가 “○○ 언니는 진짜 예뻤던 언니예요. 몸도 너무 여리여리하고 목소리도 여성여성하고” 같은 대사를 하게 함으로써 피해자의 외모를 묘사하고, 이 목사의 성폭행 장면을 텔레비전 브라운관 화면을 통해 재연했다.

일부 시청자들은 이같이 적나라한 연출이 도리어 2차 가해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시청자 이모씨(36)는 “범죄 사실을 건조하게 읽어주기만 해도 충분할 것을 배우까지 써서 굳이 재현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피해자들의 신체를 맥락 없이 전시하듯 보여줌으로써 정명석을 사이비 교주, 범죄자로 부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남성성이 과시되는 부대 효과까지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시청 도중 여러 차례 정지 버튼을 눌렀다는 이들도 많았다.

폭력은 노골적으로 보여준 데 반해 정명석이 오랜 시간 영향력을 유지하게 만든 사회 구조나 사법 체계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다큐멘터리에는 반JMS 운동가인 김도형 단국대 교수, JMS 탈퇴자가 도피한 정명석을 찾기 위해 해외로 간 사연이 등장한다. 그러나 민간인인 이들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언급하지 않는다. 국내외를 오가며 범죄를 저지른 정씨의 형량이 징역 10년에 그친 이유나 한국 사회가 사이비 종교에 특히 취약한 이유도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지상파에서 OTT로 유통 채널이 바뀌었다고 해서 언론의 보도 윤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청자 A씨(32)는 “이미 과거에 비판을 받고 쓰지 않게 된 연출 방식이 OTT라고 해서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범죄 행위를 자극적으로 재현하지 않고도 사건의 참담함을 전한 사례는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한국기자협회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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