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상실의 시대, 이를 수 없는 욕망과 그리움…찍고 또 그리다

도재기 선임기자

사비나미술관, 강홍구 개인전 ‘무인도와 유인도-신안바다Ⅱ’

신안 섬들 담은 사진과 회화, ‘사진 회화’, 영상 등 70여점 출품

감각 돋보이는 ‘무인도’ 연작 등···오감 자극 속 고향 얘기 두런두런

강홍구 작가의 개인전 ‘무인도와 유인도-신안바다Ⅱ’가 사비나미술관 기획전으로 열리고 있다. 사진은 강홍구의 ‘무인도 082’(디지털 사진 위에 아크릴, 105x70㎝, 2022). 사비나미술관 제공

강홍구 작가의 개인전 ‘무인도와 유인도-신안바다Ⅱ’가 사비나미술관 기획전으로 열리고 있다. 사진은 강홍구의 ‘무인도 082’(디지털 사진 위에 아크릴, 105x70㎝, 2022). 사비나미술관 제공

“취향의 정치학이 항상 날 서 있고, 세습된 문화자본에는 꽤나 관대한 한국 미술계 내부에서 꺾이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일(미술은 물론 글쓰기)로써 우뚝 서 있는 점을 주목하자.”

미학자·미술비평가인 강수미 동덕여대 교수는 작가 강홍구(66)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어 “그가 비판적 담론 해석과 시각적 리터러시를 촉발하는 작품부터 동시대 감성에 조응하는 자연생태 타블로까지 넓고 다양하게 시리즈 작업을 꾸려온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독특한 ‘사진 회화’ 작업으로 잘 알려진 강홍구 작가만큼 자신의 미학적 실천을 위해 경계를 허물며 치열하게 작업한 작가도 드물다. 초등교사 생활을 접고 미술대학·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디지털 사진 1세대 대표적 작가로 불린다. 사진작업을 하지만 그렇다고 “사진가”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그는 출력한 사진 위에 붓질을 한다. 채색을 하고 형상을 그려 넣는다. 추상적 붓질로 아예 사진 이미지를 덮기도 한다. 물론 회화, 오브제 설치 작업도 한다. 그의 작업실은 카메라·프린트기 등 광학기기가 있는 공간과 붓·물감·캔버스가 있는 두 공간으로 이뤄졌다.

‘세습된 문화자본’의 거센 힘 속에서 작업실 두 공간을 30여년째 넘나들고 있다. 사진계와 화단에서 꼬나보는 시선에도 ‘꺾이지 않고’서다. 사진과 회화의 융합과 변주, 시각 이미지 실험으로 모두의 미적 체험을 확장시켰다. 이제 평론가와 관람객은 물론 사진가·화가 등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로 ‘우뚝 서’ 있다.

강홍구 작가의 개인전 ‘무인도와 유인도-신안바다Ⅱ’가 사비나미술관(서울 진관1로) 기획전으로 열리고 있다. 다양한 시리즈 작업으로 주목받아온 그의 이번 작품전은 고향인 전남 신안의 섬들을 담은 ‘신안’ 시리즈다. 유인도 72곳·무인도 953곳 등 총 1025개의 섬으로 이뤄진 신안의 북쪽 작은 섬 어의도가 그의 고향이다.

강홍구의 ‘구름과 바다’(천 위에 아크릴과 오브제, 438x148㎝, 2023) 전시 전경(왼쪽)과 작품에 매달려 있는 작은 오브제. 도재기 선임기자

강홍구의 ‘구름과 바다’(천 위에 아크릴과 오브제, 438x148㎝, 2023) 전시 전경(왼쪽)과 작품에 매달려 있는 작은 오브제. 도재기 선임기자

작가로서 17년째 고향의 섬들을 찾았다. 그리고 “유인도가 무인도가 되고 무인도가 유인도가 되는” 속에 “이를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과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의 결과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선보인다. 3개층 전시실의 전시장에는 그를 상징하는 ‘사진 회화’ 작품을 비롯해 스트레이트·합성 사진, 회화, 영상 등 70여점의 작품이 나왔다.

관람객들은 작가를 따라 유인도와 무인도들, 바다와 갯벌, 포구, 생선들이 꾸덕꾸덕 말라가는 마당 있는 집들, 파도 치는 갯바위로 간다. 짭짤하면서 비릿한 갯내, 포구의 웅성임과 철썩이는 파도 소리 속에 일렁이는 바다와 미끌거리는 갯벌 위로 햇살이 눈부시다. 오감을 일깨운 관람객들은 고향 이야기, 추억 보따리를 푼다. 작품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만재도’ ‘도초도’ ‘어의도’ 등 유인도 작품들에는 땅과 바다와 하나가 된 섬사람들의 삶이 담겼다. 무인도는 작가에게도 꿈, 환상, 상상력이 요동치는 섬이다. ‘무인도’ 연작에서 그는 사진 위에 빨랫줄을 그리고 옷들을 널었다. 큰 연필로 섬들을 잇거나, 섬 크기만 한 해당화 한 송이·무·배추도 심었다. 추사 김정희·단원 김홍도의 작품에서 차용한 난초, 대나무도 그려 넣었다.

작가의 감각은 사진 위에 뛰노는 아이들,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는 여성 등을 그린 사진 회화 작품들에서도 잘 드러난다. 엄숙하게 작품을 보던 관람객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재밌네!” 한다. ‘만재도 3 036’ 등 합성사진 작품과 ‘홍도’ 등 스트레이트 사진, 또 이들과 사진 회화 작품을 비교 관람하는 것도 흥미를 더한다.

강홍구 작가의 ‘어의도 1  016’(240x100㎝, 피그먼트 프린트, 2021, 왼쪽)과 ‘만재도 3  036’(140x200㎝ , 피그먼트 프린트, 2020). 사비나미술관 제공

강홍구 작가의 ‘어의도 1 016’(240x100㎝, 피그먼트 프린트, 2021, 왼쪽)과 ‘만재도 3 036’(140x200㎝ , 피그먼트 프린트, 2020). 사비나미술관 제공

강홍구 작가의 ‘신안 -기록과 기억 05~22’(천, 사진 위에 혼합재료, 300 x1329㎝, 2022) 설치 전경. 사비나미술관 제공

강홍구 작가의 ‘신안 -기록과 기억 05~22’(천, 사진 위에 혼합재료, 300 x1329㎝, 2022) 설치 전경. 사비나미술관 제공

작품 ‘신안-기록과 기억 05-22’는 한 벽면을 차지하는 대작이다. 사람들과 자연 모습을 담은 작품 26점을 이었다. 특히 플라스틱병, 낚시용 가짜 미끼들, 색색의 유리질 부표, 각종 어구 잔해 등 오브제도 매달았다. 바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해양 쓰레기들로 바닷가에서 주웠다. 작가는 “바다가 ‘나 힘들어’ ‘그만 좀 해’ 하고 사람들에게 내뱉는 말 같았다”고 한다. ‘구름과 바다’는 회화다. 바다 위에 짙은 회색 구름들이 덩어리를 이뤄 꿈틀대고, 오브제로 매달린 마른 생선의 입은 놀란 듯 한껏 벌어졌다. 화면 가득 무엇인가 큰일이 일어날 듯 긴장감이 돈다.

영상작품 ‘만재 바다’에서는 파도와 갯바위의 만남 속에 파도·새 소리도 들린다. 작가에게 “가끔 머리와 마음을 텅 비우기 위한 ‘물멍’용 작품”이라지만 관람객도 ‘물멍’을 하며 한 숨 쉬기에 딱 좋다. 부산한 일상을 벗어나 한번쯤 삶을 찬찬히 돌아보게 하는 게 고향 아니던가. 고향 상실의 시대, 강 작가의 작품전은 우리를 저마다의 고향으로 초대한다. 전시는 4월23일까지.

사진 위에 채색을 하거나 형상을 그린 강홍구 작가의 ‘무인도’시리즈 전시 전경(위)과 ‘모래의 기억’(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 드로잉 콜라주, 140x280㎝, 2022). 사비나미술관 제공

사진 위에 채색을 하거나 형상을 그린 강홍구 작가의 ‘무인도’시리즈 전시 전경(위)과 ‘모래의 기억’(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 드로잉 콜라주, 140x280㎝, 2022). 사비나미술관 제공

‘무인도와 유인도-신안바다Ⅱ’ 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 전경 일부. 사비나미술관 제공

‘무인도와 유인도-신안바다Ⅱ’ 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 전경 일부. 사비나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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