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메’ 보면 ‘예스 저팬’? “아니죠, 예스 신카이 마코토입니다”

오경민 기자

“신카이 감독이 혐한이라면 불매”

“노 저팬에 가깝지만 슬램덩크 봐”

“정치의 시각으로 보지 마세요”

반일감정과 문화소비 분리 뚜렷

청년 59%가 ‘3자 변제안’ 반대

“극장서 볼 한국 영화 없잖아요”

22일 서울 용산구 한 영화관에서 관객이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홍보 조형물을 바라보고 있다. 한수빈 기자

22일 서울 용산구 한 영화관에서 관객이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홍보 조형물을 바라보고 있다. 한수빈 기자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은 올해 개봉작 중 최단기간 200만 관객을 동원했다. 미디어캐슬 제공.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은 올해 개봉작 중 최단기간 200만 관객을 동원했다. 미디어캐슬 제공.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가 극장가를 주름잡고 있다. 지난 21일까지 올해 일본 영화 관객 점유율이 31.6%에 달해 한국 영화 관객 점유율을 제쳤다. 만화 <슬램덩크>를 원작으로 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감독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올해 들어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다. 국내에서 관객 400만명을 모으며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 8일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감독 신카이 마코토)은 개봉 13일 만에 관객 2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 21일 기준 개봉일부터 14일째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한·일 정상회담 이후 일본의 불법적 강제동원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거세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의 강세는 그대로다. 요미우리 신문은 지난 17일 “문재인 정권 당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났던 한국에서 일본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며 “윤석열 정권과 마찬가지로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개선하려는 젊은이들이 이러한 붐을 주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산케이 신문은 젊은 세대를 ‘예스 저팬 세대’라고 칭하며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대중문화 등에 관심이 많은 한국 청년 세대가 여론을 바꿀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전했다.

정작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을 본 관객들은 ‘예스 저팬’이라 불리는 데 대해 황당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지난 18일 가족들과 <스즈메의 문단속>을 봤다는 조선희씨(29)는 “무슨 ‘예스 저팬’인가. ‘예스 신카이 마코토’ 정도는 된다”며 “(이전 세대의) 반일 감정에 저항하거나 한·일관계를 개선하려고 일본 영화를 본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세대는 ‘그 나라의 것이라서’ 좋아한다기보다는 취향을 저격하는 물건, 영화, 배우를 선호할 뿐이에요. 오히려 민족주의적이나 국가주의적으로 보려는 시도가 불편합니다. 신카이 감독이 우익이라 혐한 발언을 하거나, 전범기업을 옹호하거나, 여성혐오 등을 했으면 불매할 수도 있지만 그런 ‘내 사상’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일본 콘텐츠든 무엇이든 소비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연구원이 2020년 펴낸 ‘한일관계 세대분석: 청년세대(MZ세대)가 보는 한일관계’ 보고서는 한·일 양 국민이 상대국의 국민과 지도층을 분리해 인식하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MZ세대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문화 분야에서는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면서도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디커플링’은 MZ세대를 중심으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2013~2019년 양국 여론조사를 기반으로 한 이 보고서는 “일본에 대한 한국의 호감도가 꾸준히 상승하는 것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상대국 정상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상을 가지고 있다”며 “한일 간 대중문화의 교류가 확대될수록 상호협력과 이해관계가 구축될 것이라는 기존의 예상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 용산구의 한 극장에 걸린 영화 영화  <아바타: 물의 길> 이미지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창길기자

서울 용산구의 한 극장에 걸린 영화 영화 <아바타: 물의 길> 이미지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창길기자

A씨(32)는 “반일감정을 가지고 있어 ‘노 저팬’에 가깝지만 지난주 <스즈메의 문단속>은 봤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도 봤다”고 했다. 그는 “기업에 대한 불매와 영화·책에 대한 불매의 기준은 다르게 느껴진다”며 “일본이라서가 아니라 감독, 작가 등 창작자와 작품의 퀄리티를 본다. (일본 불매에 참여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책은 개인 가치관에 따라 읽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30대 남성 권모씨도 “<초속 5센티미터> <너의 이름은.> 등 신카이 감독 영화를 기존에 본 적이 있다. 이번에도 평이 좋길래 마침 시간이 돼서 아내와 봤다”며 “최근 개봉작 중 눈에 띄는 다른 영화가 없어서 봤다. ‘예스 저팬’이라고 보는 시각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고 모든 것을 정치의 시각으로 보는 아전인수”라고 말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8~9일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방안에 59%가 반대하고 35%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8~29세는 59%가 반대, 30%가 찬성했다. 30대는 75%가 반대하고 21%가 찬성했다. 20~30대의 제3자 변제 방안 반대 비율은 전체 응답자와 비슷하거나 더 높았다.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일본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서둘러 개선할 필요가 없다’고 답한 응답자가 ‘우리가 일부 양보하더라도 가능한 빨리 개선해야 한다’ 응답자에 비해 3배 이상 많았다. 전자라고 답한 19~29세는 74%, 30대는 79%였다. 후자로 답한 19~29세는 22%, 30대는 18%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의 강세는 볼만한 한국 영화가 없는 사이 일본에서 ‘퀄리티 좋은’ 콘텐츠를 많이 내놓은 데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 지난 1월 개봉한 <유령> <교섭>, 지난 1일 개봉한 <대외비>를 제외하고는 극장가에 이렇다할 한국 상업영화가 없다. A씨는 “다른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 <스즈메의 문단속>을 봤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원작 만화에 대한 리스펙·추억과 레트로 유행의 흐름으로 봐야 한다”며 “일본 영화 붐은 일시적인 현상이고 또 다른 작품들이 나오면 관객이 금방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요즘 영화를 대부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소비하다보니 OTT용 영화, 영화관용 영화 이렇게 나눠서 생각하곤 한다. 최근 한국 영화 중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작품이 있었나 싶다”고 했다.

지난 1월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홍보물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홍보물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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