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전
3~6세기 상형토기·토우장식 토기 등 300여점
“입체적 의미·가치 재조명”···전시효과 돋보여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손꼽히는 토기는 도기·자기보다 온도가 낮은 500도 이상에서 구워 만든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토기는 약 1만5000년 전의 것이다. 중국, 러시아 연해주,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나왔다. 한반도에서 발굴된 가장 오래된 토기는 제주도 고산리 유적의 ‘고산리 토기’로, 약 1만년 전에 제작됐다.
토기는 곡식 같은 생산물의 저장·운반은 물론 음식을 삶거나 쪄 먹을 수 있게 해 식생활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왔다. 제작기술과 사회 발전에 따라 점차 형태나 용도 등도 다양해졌다. 특이한 모양, 무늬를 그리거나 장식하는 등 상징과 의미를 부여하면서 각종 의례용품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삼국시대인 3세기 중반 한반도에 등장한 상형토기가 대표적이다. 다양한 모습의 사람, 각종 새·말·사슴이나 용 같은 상상 속 동물, 집·배·수레·신발·등잔·뿔 같은 각종 사물을 본떠 만든 토기다. 또 사람·동물·사물 모양의 인형같은 ‘토우’, 10㎝ 안팎의 작은 토우들이 뚜껑·몸체에 장식된 ‘토우장식 토기’도 있다.
무덤에서 발견된 이들 유물은 제작 당시의 생활문화상, 죽음을 둘러싼 가치관 등 여러 정보를 품고 있다. 특히 3세기 중반~6세기 전반의 특정한 시기에, 그것도 백제·고구려와 달리 신라·가야 지역에서만 절대다수가 확인된다. 무엇보다 갖가지 상징과 의미가 녹아든 흥미로운 유물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마련한 특별기획전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은 상형토기, 토우장식 토기의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전시다. 최신 연구결과를 살펴보고, 조각난 토기와 토우를 수십년에 걸쳐 복원한 성과를 처음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윤성용 중앙박물관장은 “조형적 측면을 넘어 제작 배경과 기능 등 보다 본질적인 의미를 살펴본다”며 “시공을 초월해 인간이라면 맞이해야만 하는 죽음을 둘러싼 갖가지 풍경을 만나고 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별전시실에서는 모두 330여점(국보·보물 15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지난해 보물로 지정된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나온 상형토기들, 국보이자 성행위 토우로 유명한 ‘토우장식 긴목 항아리’, 경주 금령총에서 주인과 하인 한 쌍으로 출토된 ‘말 탄 사람 토기’(국보), 거북 모양 몸체에 용의 머리·꼬리를 한 ‘상서로운 동물모양 토기’(보물) 등이 대표적이다. 일제강점기에 경주 황남동 유적에서 수많은 조각으로 수습된 것을 복원한 97점의 토우장식 토기도 처음 공개됐다.
사실적 표현이 두드러지는 상형토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은 3세기 중반 경주·울산 지역에서 나온 새·오리 모양이다. 이후 4~5세기에 걸쳐 각종 동물과 집·배 등으로 그 형태와 발견 지역이 확장되다가 6세기에 제작된 것은 발굴되지 않는다.
신라·가야 지역에서만 집중 출토되는 것은 백제·고구려와 다른 장례문화·무덤 형식 때문으로 보인다. 6세기에 사라진 이유는 가야의 멸망, 신라의 체제 정비와 불교 확산, 무덤 형식의 변화 등으로 해석된다.
모양은 다르지만 상형토기는 술 같은 액체를 담을 수 있게 속이 비었고, 주입구와 출구도 있다. 실제 그릇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사용된 흔적은 없다. 대부분 무덤에서 출토돼 실생활용보다 장례, 제의용으로 본다. 죽은 이의 영혼을 저승세계로 잘 인도하고, 죽음이 끝이 아니라 다른 삶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새, 말은 고대부터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영혼의 매개자란 상징성이 있고, 배·신발·수레 등은 주요 이동·운송 수단이다. 전시명에서 보듯 저 세상으로 가는 먼 여정의 동행자, 나아가 영원한 삶을 위한 산 자들의 마지막 선물인 셈이다.
그런데 저승으로의 인도 매개체라는 해석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무덤뿐 아니라 집터에서도 발굴된다. 단, 무덤의 경우 특정 무덤에서만 발견된다. 최고 지배자 무덤이 아닌 곳에서도, 무덤 주인 곁이 아니라 떨어진 자리에서 확인된다. 따라서 최근에는 특정 인물용, 주술용, 기념용 등 새로운 해석들도 나온다. 무덤 주인공과 상형토기의 관계를 보다 명확히 해명하는 숙제가 연구자들 앞에 놓인 셈이다.
토우장식 토기는 죽은 이를 위한 산 자들의 다양한 애도 풍경, 집단의례 장면들, 일상생활 모습 등을 엿볼 수 있어 눈길을 잡는다. 관람객의 호기심,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토기의 뚜껑·몸체에 장식된 토우들은 매우 다양하다. 인물 토우는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추는 모습, 사냥 장면,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 등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춤추거나 출산·성행위 장면을 표현한 토우는 생명의 부활, 새로운 삶을 상징한다. 토우에 표현된 옷차림은 복식사, 관악기·현악기 연주 모습은 악기나 음악사 연구에 좋은 자료다.
토우로 표현된 동물은 육·해·공을 망라해 50여종에 이른다. 뱀과 개구리가 함께 표현된 경우가 많은데, 개구리는 알을 많이 낳고 뱀은 번식력이 강하다는 점에서 두 동물의 조합은 생명 탄생, 생명력을 의미한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97점의 복원 전시품은 깨진 토우·토기의 짝을 찾아 떼내고 붙이기를 반복하며 수십년에 걸쳐 맞춘 것이다. 개별 조각에서는 볼 수 없던 서사적 장면들이 나타나 복원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또 전시장의 각 분야 전문가들 인터뷰 영상은 전시를 보다 알차게 만든다. 전시기획자인 이상미 학예사는 “흙으로 빚은 작은 유물들이지만 그 속에는 죽음을 대하는 신라·가야 사람들의 태도, 사상 등이 오롯이 담겼다”며 “보다 입체적 시선으로 유물이 전하는 이야기를 풍성하게 상상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실 토기는 관람객의 눈길을 확 잡는 전시효과를 내기 어려워 전시가 까다로운 유물이다. 재료·크기·색상 등 여러 면에서 다른 유물과 달리 한계가 있어서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같은 전시품과 미디어의 결합 등으로 입체적 관람이 가능해 전시효과를 높였다는 평가다.
특히 전시장 내 집 모양 토기의 구조물 내부 의자에 앉으면 죽음을 둘러싼 1600여년 전 유물들을 눈앞에서 대면한다. 시공을 넘어 삶과 죽음을 둘러싼 실존적 물음들을 던지게 하는 전시 공간이다. 전시는 10월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