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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만화가 장악하고 있는 어린이책 분야에서 2020년 3월 1권 출간 이후 6권까지 총 6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동화 시리즈가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추천 목록에 드는 동시에 전국 도서관 어린이책 대출 10위 안에 항상 포함되는 책. 바로 창비에서 나온 <고양이 해결사 깜냥>(이하 깜냥) 시리즈다. 지난해 10월 말 6권이 나온 날 교보문고에서는 일시 품절이 되기도 했다. 저학년 대상 순수 창작동화 중 <깜냥>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지금까지 ‘깜냥’은 혼자 분주하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6권부터 새로운 친구 ‘하품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사실상 시즌 2가 시작됐다. 까맣고 통통하고 당당하며 염치가 있는 ‘깜냥’을 만들어낸 홍민정 작가를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고양이 해결사 깜냥>의 홍민정 작가가 지난달 27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여다향에서 인터뷰 시작에 앞서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고양이 해결사 깜냥>의 홍민정 작가가 지난달 27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여다향에서 인터뷰 시작에 앞서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홍 작가는 고양이가 아니라 강아지와 산다. 그는 “고양이가 아니라 강아지를 키운다. 강아지와 산책하다 아파트 단지에 있는 길고양이를 만났다”며 “어느 날 문득 ‘저 고양이가 이 아파트에 몰래 숨어 사는 게 아니라 우리를 지키는 거야. 사실은 경비원인 거지!’ 이런 동화적 상상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깜냥>은 24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동화부문에서 대상을 받아 출간된 책이다.

얼굴과 배, 다리 빼고 온몸이 까만 길고양이 ‘깜냥’은 비를 피하기 위해 아파트 경비실을 찾는다. 여행 가방을 든 깜냥은 하룻밤 재워달라고 한다. 난감해하는 경비원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바삐 나가고 깜냥은 잠시 경비실에 머무른다. 그사이 울리는 호출소리. 부모가 늦게 퇴근하는 바람에 단둘이 있는 형제의 집이었다. 깜냥은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며 놀아준다. 춤을 추며 층간소음을 내는 아이 집에 가서는 조용하게 춤추는 법을 알려준다. 무거운 상자를 나르는 택배기사의 일을 돕기도 한다. 깜냥은 제목 그대로 ‘해결사’다. 어린이들이 주변에서 보고 겪고 느꼈을 법한 일을 돕는다. 2권에서 피자가게 직원이 된 깜냥은 피자를 질색하는 할아버지도 반하는 ‘쪽파 피자’를 만들어낸다. 3권 태권도장, 4권 눈썰매장, 5권 편의점 등 깜냥은 아이들이 자주 가는 공간에 등장한다. 홍 작가는 “처음에 길고양이가 보일 만한 공간으로 아파트를 설정했고 그 이후에 가는 곳도 아이들이 실제로 자기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느껴서 그런지 공감을 잘 한다”고 말했다.

길고양이지만 깜냥은 불쌍해 보이지 않는다. 하룻밤 지낼 공간을 ‘요청’하면서도 당당하다. 깜냥은 대신 그에 상응하는 ‘노동’을 제공한다. 아파트에서 경비 일을 하고, 피자가게에서는 피자를 만들고, 태권도장에서는 사범을 돕는다. 홍 작가는 “처음에 가엾은 길고양이로 그렸더니 너무 무겁고 어두워 글이 잘 안 써졌다”면서 “어두운 모습을 버리고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캐릭터를 바꿨더니 이야기가 신나게 잘 써졌다”며 웃었다.

그는 “도움과 베풂의 선순환”을 말했다. “깜냥이 도와주는 사람은 먼저 자기에게 친절을 베풀고 먹을 걸 준 사람이에요. 도움과 베풂이 순환되는 모습을 그렸어요.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어려운 사람을 도울 줄 알고, 도움을 받으면 갚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게 동화의 메시지라면 메시지예요.”

<고양이 해결사 깜냥>의 홍민정 작가가 지난달 27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여다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일 선임기자

<고양이 해결사 깜냥>의 홍민정 작가가 지난달 27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여다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일 선임기자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홍 작가는 학습지 회사에서 편집자로 오래 일했다. 아이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일해왔다. “동네 어린이들을 많이 관찰했어요. 아이들에게 많이 말을 걸고, 그 마음은 어떨지 많이 생각했어요. 등·하굣길도 자주 보고요. 제 바람 중 하나는 동화가 올드하게 들리지 않았으면 한다는 거예요. 지금 아이들은 어떤 말을 쓰는지 자주 들으려고 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동화책에는 시기적 특수성이 있다. 그림책으로 책을 접했던 아이들이 처음으로 줄글 형태의 책을 읽는 시기다. 그림책 단계에서 수없이 유입됐던 ‘독자’들이 책에서 이탈하는 첫 번째 문턱이기도 하다. “저학년 동화는 아이들이 책에 집중하는 시간도 짧고 이해의 폭도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 가능하면 재미있고 쉽게 써야 해요. 그러면서도 다양한 직업군이 있는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하죠.” 홍 작가는 줄글 책을 읽기 어려워하는 어린이라면 한 챕터씩 읽기를 추천했다. <깜냥>은 한 권이 5개 챕터로 이뤄져 있다.

<깜냥>은 무조건 ‘권선징악’을 말하지 않는다. 홍 작가는 “깜냥이 애초에 바른말만 하는 어른이나 선생님 같은 캐릭터였다면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좋아해주진 않았을 것 같다”며 “깜냥의 행동은 굉장히 상식적이다. 최근 어느 부모님이 남겨주신 후기에 ‘깜냥은 염치가 있어서 좋다’고 해주셨다”고 말했다. “교훈적이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문장 하나도 혹시 어른의 잔소리가 되지 않을지 고민하면서 쓰죠.”

태권도장에서 사범을 돕는 ‘깜냥’. 창비 제공

태권도장에서 사범을 돕는 ‘깜냥’. 창비 제공

성별 고정관념 탈피도 작가가 애쓰는 대목이다. 처음엔 3권에 등장하는 태권도 사범님을 남자로 그렸다가 요즘은 여자 사범님도 많다는 의견을 듣고 바꿨다. 그는 “도둑을 잡으러 가는 장면에서도 여자 사범님이 발차기로 도둑을 제압하도록 썼다”고 전했다.

원고를 수정하는 법도 남다르다. 홍 작가는 “아이들 책이다보니 말투 하나하나 신경 쓴다”며 “눈으로 볼 때와 소리내어 읽을 때 느낌이 다르다. 조사 하나, 단어의 어순까지도 다르게 느껴진다. ‘깜냥’은 여러 번 소리내어 읽어가며 수정했다”고 전했다. “‘뭐 했어’와 ‘뭐 했지’처럼 어미가 ‘지’가 좋은지 ‘어’가 좋은지 소리내어 읽어가며 골라요. 인쇄 직전까지 수정합니다. 똑같은 말이 반복되지 않도록 여러 단어를 바꿔가며 써요. 이렇게 여러 번 소리내 읽고 나면 힘이 쭉 빠지고 배가 고파져요.”

주인공 이름인 ‘깜냥’은 까만 고양이를 의미하는 동시에 스스로 일을 헤아리는 능력이라는 순우리말이다. 홍 작가는 “중의적 의미”라고 했다. 외래어·외국어보다 순우리말을 쓰려고 노력하지만 너무 생소한 단어는 읽기에 방해가 될 수 있어 편집자와 상의해 절충선을 찾는다고 한다. “1권에 ‘잰걸음’이라는 순우리말이 나와요. 원래 ‘잰걸음을 놓았다’가 순우리말 표현인데 아이들 입장에선 ‘잰걸음’도 낯선 단어일 텐데 ‘놓았다’라는 서술어가 붙으면 더 낯설어서 ‘잰걸음으로 걸어갔어’라고만 넣었어요.”

5권에 잠시 등장한 ‘하품이’는 6권부터는 비중 있게 다뤄진다. 책 표지에도 깜냥과 하품이가 함께 등장한다. 사람을 겁내고 무서워하는 하품이야말로 길고양이 특성에 가깝다. 그랬던 하품이는 깜냥을 만나면서 용기를 내고 친구들을 마주한다. 홍 작가는 “아이들에게 친구는 너무 소중한 존재”라며 “시리즈에 새로움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친구를 만들어준 것이고, 실제로 독자인 어린이들이 ‘깜냥이 친구가 없어서 심심할 것 같아요’ ‘외로울 것 같아요’라는 의견을 많이 줬다”고 전했다. 7권부터는 깜냥과 하품이가 함께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한국 코믹북 시장 안에서 순수 창작동화로 이 정도 자리매김하는 시리즈가 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서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줘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낍니다.”

▼ 임지선 기자 visio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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