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이 망극하옵니다”에 식상? 그 말투로 과거와 현재, 남과 북이 통한다

한성우 국어학자
북한의 ‘텔레비죤련속극’ <임진년의 심마니들>. 북한의 사극은 이전의 사극 말투를 그대로 쓰고 있어 다른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대사가 잘 들린다. 연합뉴스

북한의 ‘텔레비죤련속극’ <임진년의 심마니들>. 북한의 사극은 이전의 사극 말투를 그대로 쓰고 있어 다른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대사가 잘 들린다. 연합뉴스

신라시대 말을 생생하게 듣고 싶다면? 꽤 오래전에 방영된 드라마이지만 <선덕여왕>을 보면 된다. 그렇다면 고려와 조선시대는? 고려시대는 얼마 전에 방영된 <고려거란전쟁>을 보면 되고 조선시대는 지금도 채널을 돌릴 때마다 나오는, 갓 쓴 남자와 머리를 틀어 올린 여자들이 수없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 된다. 삼국시대의 말이 모두 궁금하다면 영화 <황산벌>을 보면 되고 고구려와 부여의 말이 필요하다면 드라마 <주몽>을 보면 된다. 아주 가까운 시기, 즉 1900년 전후의 말을 듣고 싶으면 <미스터 션샤인>을 추천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신기하다. 2000년 전의 말이나 지금의 말이 다를 바가 없다. 선덕여왕의 말이나 강감찬 장군의 말, 나아가 조선의 끝자락에 미국으로 갔다가 돌아온 미국 해병대 장교의 말이 별로 다르지 않다. 부여에서 태어나 고구려를 세운 주몽도 이들과 비슷한 말을 쓰는 반면에 삼국통일 직전의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각 평안도 말, 충청도와 전라도 말, 경상도 말을 쓴다. 모두가 엉터리다. 같은 한국어라도 지역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변하는 법이니 적어도 삼국시대의 말은 알아듣기 어려워야 한다. 그러나 드라마나 영화는 기본적으로 허구이니 그것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다만 사극에서 그려지는 말과 글의 풍경을 보며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만이다.

최근에 종영된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언제나 그렇듯이 시대를 막론하고 어전회의는 ‘통촉 - 성은 - 황공무지’로 이어진다. KBS 제공

최근에 종영된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언제나 그렇듯이 시대를 막론하고 어전회의는 ‘통촉 - 성은 - 황공무지’로 이어진다. KBS 제공

사극 말투의 탄생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신하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경들의 뜻대로 하시오.” 신하들의 성화를 못 견딘 임금은 불만에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한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오이다. 황공무지로소이다.” 신하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감사의 말을 전한다. 사극에서 왕과 신하가 함께하는 어전회의가 나오면 반드시 이런 말이 오간다. 너무도 익숙한 이 장면의 대화는 언제 누구에 의해서 시작된 것일까? ‘통촉, 망극, 황공무지’는 지금은 전혀 쓰지 않는 말이다. 어려운 한자어이니 그 뜻을 제대로 아는 이도 드물다. 그러나 너무나 익숙한 장면이니 어린아이도 이 장면을 이해한다.

‘통촉(洞燭)’은 한자를 보면 마을을 밝히는 촛불일 듯하지만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사정이나 형편 따위를 깊이 헤아려 살핀다는 뜻이다. ‘洞’은 밝다는 뜻의 ‘통’으로 읽어야 하고 ‘燭’은 꿰뚫어 보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하니 참으로 어려운 단어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사를 보면 성종 때에 나오고 한글 문헌에서는 18세기부터 나오니 실제로 쓰이던 말임에는 틀림없다. 궁금한 것은 누가 제일 처음 이 말을 사극에 쓰기 시작했느냐이다. 그리고 언제 ‘통촉 - 성은 망극 - 황공무지’의 흐름이 굳어졌는가이다.

말을 하는 버릇이나 본새라고 정의되는 ‘말투’는 주로 방언 차이로 구별되는 ‘말씨’와 달리 누구나 감각으로 느끼기는 하지만 그것의 실체를 명확히 밝히기는 어렵다. 나이나 세대에 따라 ‘아재 말투’, 성별에 따라 여자 말투 등을 언급하지만 그것의 특징을 어슴푸레하게 느끼고 있을 뿐이다. 사극의 말투 또한 마찬가지여서 ‘통촉’을 비롯한 단어 몇개, ‘마님, 나으리, 도련님’ 등의 호칭 몇 가지, ‘하옵소서, 하옵니다’ 등에 쓰인 어미 몇 가지로 구별되기는 하지만 그것을 분명히 정의하고 실체를 밝히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간첩’을 굳이 ‘세작(細作)’이라 하고 ‘사랑하다’를 ‘은혜하다’로 오해하게 하는 ‘은애(恩愛)하다’라고 표현하는 말이 들리면 그것이 사극임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사극의 말투는 소설가, 변사, 성우가 탄생시키고 그 이후의 작가나 연출가가 굳어지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문어와 구어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활자로 옮겨 놓는 소설가가 말투 탄생의 첫 단추를 채운다. 영상만 있고 대사는 없던 시절의 변사들은 자신의 상상력으로 영화에 대사를 입혔으니 그들의 말투가 점차 퍼져 나간다. 영화에 소리, 나아가 대사가 포함되기 시작하면서 성우, 즉 목소리로 연기하는 이들은 대본에 활자로만 존재하던 말을 특유의 어조로 완성한다. 머잖아 사극 대접을 받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옥희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린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말투에 익숙해진 것이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세작, 매혹된 자들>. 사극에는 ‘간첩’이 없고 ‘세작’만 있다. 주인공들은 ‘사랑’은 하지 않고 ‘은애(恩愛)’만 한다. tvN 제공

최근 종영된 드라마 <세작, 매혹된 자들>. 사극에는 ‘간첩’이 없고 ‘세작’만 있다. 주인공들은 ‘사랑’은 하지 않고 ‘은애(恩愛)’만 한다. tvN 제공

사극의 말투와 시간

타임머신을 타고 신라시대로 간다면 그 시대의 사람들과 말이 통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손짓, 발짓이 나을 것이다. 고려나 조선시대로 가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한자를 안다면 몇자 적어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말소리의 체계가 지금과 다르니 같은 단어지만 그때의 발음은 지금과 다르다. 문장을 이루는 요소들의 어순은 지금과 같겠지만 조사와 어미가 지금과 달라 한국어와 많이 비슷하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어처럼 들릴 수도 있다. 상황이 이러니 사극에서는 어떤 시대를 다루든 지금과 비슷한 말을 쓰되 몇개의 단어와 표현으로만 사극 맛을 내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올 타임머신이 고장 나 그 시대에 살아야 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어떻게든 그 시기 그 땅에 살아야 하니 귀와 마음이 열리고 머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말소리가 다르지만 지금과 체계적으로 대응하니 그 규칙성을 발견하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표준어의 ‘마을’과 ‘고와서’가 경상도 말에서는 각각 ‘마실’과 ‘곱아서’로 나타나는데 이는 지금은 사라진 ‘ㅿ(반치음)’과 ‘ㅸ(순경음 ㅂ)’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어순은 거의 같으니 많아봤자 결국은 숫자가 한정된 조사나 어미를 익히면 된다. 여기에 먹고사는 것이 절박해지거나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싫든 좋든 섬세한 표현과 어법까지 익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통일신라의 말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에는 한반도 북부의 부여와 고구려의 말, 그리고 남쪽의 신라와 백제의 말이 많이 달랐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신라의 삼국통일을 계기로 신라의 말, 더 정확히는 경주의 말을 중심으로 비로소 한반도 전체에서 통할 수 있는 ‘국어’가 성립이 된다. 고려는 경주와 멀리 떨어진 한반도 중부의 개경말이 중심이 되어야겠지만 고려의 성립과정에 신라의 귀족이 대거 참여해 신라의 말이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조선을 거처 한반도 중부의 말이 중심이 되어 오늘날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런 이유로 ‘吾隱去內如辭叱都 毛如云遣去內尼叱古’와 같이 한자를 빌려 쓴 신라시대의 향가가 ‘나난 가나다 말쏘 몯다 니르고 가나닛고?’와 같은 세종 시대의 말로 읽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구절은 다시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갔는가?’와 같이 현재의 말로 이해돼 이른 나이에 먼저 떠난 누이를 그리는 <제망매가(祭亡妹歌))>의 슬픔이 공유되는 것이다. 말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니 신라 사람들의 말투는 지금과 많이 다르지만 귀와 마음을 열고 머리가 ‘열일’을 하면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극은 그 노력을 덜어주기 위해서 딱 정해진 말투만 쓰지만.

사극에 사투리가 노골적으로 쓰이는 영화 <황산벌>은 시간의 영화인 사극에 공간의 말인 사투리를 반영했다. 네이버영화 제공

사극에 사투리가 노골적으로 쓰이는 영화 <황산벌>은 시간의 영화인 사극에 공간의 말인 사투리를 반영했다. 네이버영화 제공

사극의 말씨와 공간

“우예 알았노? 내는 계백이가 무섭데이, 억수로 무섭데이.”

“여그 황산벌에서으 우리으 전략전술적인 거시기는 한마디로 머시기까진 갑옷을 거시기해 불자.”

“내래 성을 쌓던, 까부수건 너래 무슨 상관이야, 함 해 보자 이기야?”

사극의 초점은 ‘시간’인데 영화 <황산벌>은 사극이면서도 ‘공간’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자못 크다. ‘통촉’을 하지 않는 왕 때문에 ‘세작’이 오고 가다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은애’가 난무하는 사극이 아니라 고구려, 백제, 신라의 말이 세 축이 되어 정립(鼎立)하는 사극으로 그려졌다. 세 나라의 말이 각각 오늘날과 같은 평안도, 충청도/전라도, 경상도의 말을 썼을 것이란 증거는 없다. 다소 상스러운 내용을 천박한 말투로 하라고 연출한 듯해서 그 지역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은 불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니다. 시간의 영화에 공간을 투영한 것만으로도 훌륭할 뿐 불편한 감정은 사투리에 대한 ‘만들어진 감정’ 때문이다.

세 나라가 다른 말씨를 쓰지만 영화에서는 서로 통하는 것으로 나온다. 엄격한 고증에 바탕을 두고 당대의 말이 서로 통했을 것이라 본 연출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신라부터 조선의 말이 모두 통하는 것처럼 그려내는 사극이 시간에 따를 말의 차이를 배타적으로 이해하지 않도록 도와주었듯이 역사적으로도 삼국의 말이 다르면서도 같은 말이라고 암시하는 이 영화가 고맙다.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데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다시 동과 서로 갈라쳐지는 현실의 슬픔을 더하기도 한다.

“왜놈들 때문에 혈육끼리 싸우지 마소이다.” 화면을 보면 틀림없이 사극인데 대사가 조금 낯설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에서 방영된 ‘텔레비죤련속극’ <임진년의 심마니들>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북한의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대사가 훨씬 더 잘 들린다. 그 이유는 이 드라마가 사극이라는 데 있다. 북한의 현대물들은 북한 지역 말의 특성이 강하게 드러나고 정치색도 강한 데 반해 이 드라마는 우리의 사극과 비슷한 옛날 말투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말투와 말씨만 보면 남과 북은 사극에서는 같은 말을 쓰는 셈이다.

말의 시간과 공간

사극이 옛날 말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그 지역 말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지는 않는다. 이것이 국어의 역사나 방언을 연구하는 이들의 시각에서는 엉터리이거나 정성이 부족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름’을 강조해서 배척이나 차별로 이끄는 것보다는 낫다. 통일신라 이후에 한 뿌리로 내려온 국어, 그리고 각지에 흩어져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조금씩 달라진 말들을 전혀 다른 말로 묘사하지 않는 것이 고맙기도 하다.

최근엔 ‘퓨전 사극’을 표방하면서 대놓고 요즘 말투는 물론 유행어까지 쓰는 드라마나 영화도 있다. 따지고 보면 엉터리이지만 나쁠 것도 없다. 그렇게 해서 옛 이야기를 오늘의 이야기로 재미있게 보고 들으면 그만이다. 오히려 몇십 년째 ‘통촉’과 ‘세작’으로만 옛이야기를 풀어나가려는 이들이 반성할 일이다. 한국어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르지만 결국 다 통하는 한 뿌리의 말이다. 북녘의 말까지도.

■필자 한성우

[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 “성은이 망극하옵니다”에 식상? 그 말투로 과거와 현재, 남과 북이 통한다

한국어의 방언과 말소리를 연구하는 국어학자이다. 삶 속의 말과 글을 쉽게 이해하고 깊게 생각하도록 돕는다. 첼로를 사랑하는 목수로서 또 하나의 삶을 살고 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해 박사까지 마쳤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어규범정비위원회 위원이며, 한국방언학회 수석부회장이다. 문화방송(MBC) 우리말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방언정담> <우리 음식의 언어> <노래의 언어> <문화어 수업>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 <꿈을 찍는 공방> <방언, 이 땅의 모든 말>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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