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배진수는 큰돈을 벌고 싶다. 사채까지 끌어다 아는 형님에게 투자했지만 사기를 당한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목숨을 끊으려 한강 다리에 선 순간 그의 은행 계좌에 연달아 100만원씩 꽂힌다. 입금자명은 “당신이 포기한” “당신의 시간을” “사고 싶습니다”. 배진수는 돈에 혹해 이상한 쇼에 참가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에이트 쇼>의 도입부다.
주인공 배진수를 연기한 배우 류준열을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배진수는 이기적인 모습도, 이타적인 모습도 가진 ‘가장 보통의 평범한 사람’ 캐릭터다. 류준열은 “저와 진수는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생각한다는 점이 닮았다”며 웃었다.
“저도 호전적인 타입이 아니어서 웬만한 일에는 좋게 넘어가려는 편이에요. 배우는 혼자 할 수 없는 직업이라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그런 확신이 생겼습니다. 누군가 실수하면 용서하고, 제가 실수하면 용서를 구하죠. 삶이란 실수하고, 돌아보고, 왔다갔다 하고, 다시 나아가는 순간의 반복인 것 같아요.”
<더 에이트 쇼>는 계급 이동 사다리가 끊어진 자본주의 사회를 축소해 보여준다. 배진수 작가의 웹툰 <머니게임> <파이게임>이 원작이다. 8명의 참가자들은 8층짜리 거대한 밀실 공간에서 생활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정한 상금이 쌓인다. 높은 층 거주자일수록 상금이 더 많고 생활공간도 더 넓다. 누가 1층이고 8층인지 정해지는 것은 순전히 운이다. 내부는 아수라장이 벌어진다.
그는 자신이 세상을 훈훈하게 보는 편이라고 했다. “이 작품을 찍으면서 전반적인 삶에 대해서도 ‘우리가 조금 더 사랑할 수는 없을까’ 생각했어요. 그들은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지낼 수도 있었죠.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잖아요.”
류준열은 종종 ‘잘생김을 연기한다’는 평가를 듣는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김정환, 영화 <더 킹>의 최두일, <독전>의 서영락은 멋지고 묵직한 캐릭터였다. <더 에이트 쇼>에선 굴욕적으로 망가졌다. 밥을 입안 가득 쑤셔 넣으며 서럽게 울고, 바지에 소변을 지리고, 보는 사람이 민망해지는 막춤을 춘다.
“진수는 자기 생각을 시청자에게 전하는 화자(話者)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공감을 얻을 연기를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주변에선 ‘너무 망가지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고 했지만 저는 ‘솔직한 연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에 필요하면 벗고 볼일도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에이트 쇼>는 류준열 뿐 아니라 천우희, 박정민, 이열음, 박해준, 이주영, 문정희, 배성우 등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공개 이후 넷플릭스 시리즈 부문에서 한국 1위, 세계 2위에 올랐다. 거액의 상금이 걸린 극한 게임이란 설정은 세계적인 흥행 성적을 거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오겜)과 닮았다.
“<오겜>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출연 배우로선 <오겜>이 (누군가 죽어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이라면 <더 에이트 쇼>는 (모두가 살아야 하는) 쇼에 가까우니 새로운 재미가 있죠. 연기하면서 천우희씨와 박정민씨에겐 자극을 엄청 받았어요. 저는 제 작품을 잘 못 보는 편인데 이건 연기를 뜯어보는 맛이 있어서 계속 돌려 봤죠.”
류준열은 자신의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논란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류준열은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도 환경을 파괴하는 스포츠인 골프를 즐기는 행보를 보여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류준열은 “좋은 이미지를 가지려고 욕심내다 탈이 났던 것 같다”며 “앞으로는 나서기보다 조용히 뭔가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가 받았던 큰 사랑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다 시작한 일들이었습니다. 비판하는 의견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제 안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배신감 느낀다’ ‘가식적이다’ ‘이중적이다’라는 꾸지람도 나중에 좋은 양분이 되지 않을까요. 비판을 감당하는 것이 배우로서의 몫이고 책임이고 결과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