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최고급 ‘칠피갑옷’…백제 ‘익산토성’서 갑옷 등 유물 발굴

도재기 선임기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대규모 집수시설도 확인

옻칠한 ‘칠피갑옷’은 부여 관북리·공주 공산성 이어 3번째

명문 남은 목재 유물, 기와·토기 등도 발굴돼

전북 익산의 백제시대 산성인 ‘익산토성’에서 대규모 집수시설, 옻칠을 한 고급 갑옷인 칠피갑옷 등의 유물이 발굴됐다. 사진은 집수시설 모습.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제공

전북 익산의 백제시대 산성인 ‘익산토성’에서 대규모 집수시설, 옻칠을 한 고급 갑옷인 칠피갑옷 등의 유물이 발굴됐다. 사진은 집수시설 모습.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제공

백제시대 산성인 전북 익산토성(사적)에서 백제 말기의 칠피갑옷 조각, 산성내 물을 모아둔 대규모 집수시설, 명문이 남아 있는 문서분류 도구, 기와와 토기 등이 발굴됐다.

칠피갑옷은 옻칠을 한 가죽을 이어붙인 갑옷으로 가벼우면서도 견고해 당시 최고급 갑옷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 영역에서 칠피갑옷이 출토되기는 부여 관북리 유적, 공주 공산성 유적에 이어 세번째다. 익산토성은 백제 말기 궁성터로 추정되는 익산 ‘왕궁리 유적’과 약 2㎞ 거리에 있어 왕궁리 유적과의 연관성을 주목받아 왔다.

국가유산청은 “익산토성을 발굴 중인 익산시와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익산토성에서 집수시설을 확인하고, 그 내부에서는 칠피갑옷의 조각 등 많은 유물을 발굴했다”고 30일 밝혔다.

익산토성 내부 집수시설에서 발굴된 칠피갑옷 조각들.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제공

익산토성 내부 집수시설에서 발굴된 칠피갑옷 조각들.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제공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집수시설 안에서 발견된 칠피갑옷은 모두 6점의 조각이다. 모서리를 둥글게 한 사각형 가죽에 서로 잇기위한 원형의 구멍이 뚫려 있는 형태다. 칠피갑옷은 지난 2월 백제 사비시기(부여, 538~660년)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 유적, 2011년과 2014년에 백제 웅진시기(공주, 475~538년)의 궁터로 보이는 공산성에서 나와 큰 주목을 받았다.

백제가 660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게 무너질 당시 마지막 전투의 흔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관북리 유적은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였고, 공주 공산성은 부여에 있던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을 피해 빠져나와 머문 곳으로 결국 항복을 한 장소이다. 마한백제문화연구소는 “칠피갑옷의 보다 정확한 성격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며 “전투용으로 착용했던 칠피갑옷의 조각들이 떨어져 집수시설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익산토성에서 발굴된 묵서명이 있는 목기.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제공

익산토성에서 발굴된 묵서명이 있는 목기.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제공

익산토성에서 발굴된 목기에 ‘정사 금재(화)식’이란 먹으로 쓴 글자(묵서명)가 보인다.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제공

익산토성에서 발굴된 목기에 ‘정사 금재(화)식’이란 먹으로 쓴 글자(묵서명)가 보인다.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제공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익산토성의 운영 시기를 보여주는 명문이 있는 목재 유물도 확인돼 귀중한 학술자료로 평가된다. 집수시설 안에서 나온 목재 유물에는 ‘정사(丁巳) 금재식(今在食)’이라는 묵서명(먹으로 쓴 글자)이 남아 있다. ‘정사’는 597년 또는 657년을 의미하며. 이는 익산토성이 언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다. 597년은 백제 제29대 위덕왕(재위 554~598년) 때이며, 657년은 백제가 무너지기 3년 전으로 의자왕(재위 641~660년) 당시다.

‘금재식’은 ‘현재 남아있는 식량’이라는 의미로, 당시 성안의 식량 상황을 기록한 문서와 함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단은 “목재 유물은 문서들을 분류할 때 사용된 봉축의 조각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추가 연구를 통해 봉축으로 확인될 경우, 백제의 문서 보관방법은 물론 익산토성의 성격을 파악하는데도 귀중한 자료”라고 밝혔다.

유물들이 나온 집수시설은 직경이 동서 9.5m, 남북 7.8m, 최대 깊이는 4.5m에 이르러 비교적 대규모다. 원형 형태의 집수시설 바닥은 자연 암반을 인위적으로 깎고 다듬었으며, 돌들로 벽을 쌓았다. 또 물이 중앙으로 유입되도록 북동쪽 암반도 가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발굴단은 “현재 일부는 무너진 상태이지만 하단부가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은 것으로 봐 과거에 한 차례 보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집수시설은 자연 지형을 이용한 유수 관리방법과 이를 활용한 백제인의 토목 기술을 살펴볼 수있는 자료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집수시설 안에서는 도장을 찍은 기와인 인장와 조각을 비롯해 백제시대의 기와, 토기 조각들도 확인됐다.

익산토성은 오금산(해발 125m)을 둘러싸고 있는 산성으로 ‘오금산성’으로도 불린다. 지난 2017년 발굴조사에서는 익산토성이 돌로 쌓은 석성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백제 왕이 기거하는 궁궐에서 사용한 기와를 뜻하는 ‘수부(首府)’란 명문이 있는 기와, 성의 서쪽 문의 터 등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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