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없다
제시 싱어 지음 | 김승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456쪽 | 2만3000원
지난달 24일 오전 경기 화성시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23명이 사망했다. 일주일 뒤인 지난 1일 밤 서울에서는 호텔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온 차량이 일방통행로를 역주행하다가 인도로 돌진해 9명이 사망했다.
두 사고는 피해 규모와 희생자들의 사연 등으로 인해 각별한 관심을 받고 있지만, 이와 유사한 사고들의 목록은 끝이 없다. 지난해 한국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은 598명,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2551명이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200만명 이상이 작업장 안전 및 질병과 관련된 원인으로 사망하고 있고 100만명 이상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있다.
산업현장의 참사부터 도심 한복판의 교통사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일들을 ‘사고’라고 부른다. 그러나 미국 저널리스트 제시 싱어는 <사고는 없다>에서 ‘불의의 사고’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고는 그저 불운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당신이 사고로 죽느냐 아니냐는 당신의 권력을, 혹은 권력의 부재를 말해주는 척도다.”
책은 20세기 이후 미국에서 발생한 산업현장 사망사고, 교통사고, 약물중독 사고, 총기사고 관련 담론의 배후에 숨어 있는 자본과 권력의 논리를 들춰냄으로써 ‘사고’에 대한 우리의 편견에 도전한다.
인적 과실이라는 요소가 개입하지 않는 사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의 실수보다는 ‘위험한 조건’, 즉 환경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물이 고여 있는 바닥에서 미끄러져 다쳤다면 미끄러진 사람이 아니라 바닥 관리 부실이 문제라는 것이다. “실수는 불가피하며 사람을 완벽하게 만들 수는 없다. 인적 과실 탓을 멈춰야만 사고 문제의 진짜 해법을 찾기 시작할 수 있다.”
사고를 인간의 실수 탓으로 돌리는 대표적인 수단 중 하나가 ‘무단횡단자’ ‘주의 산만 보행자’라는 표현이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무단횡단자라는 말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자동차 업계는 1923년 신시내티에서 자동차 속도제한장치 의무 설치 조례를 추진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차량 사고를 보행자의 과실로 몰아붙이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아메리카자동차클럽은 “보행자들은 종종 어리석거나 조심성 없게 행동하는데, 많은 보행자가 그렇다”고 선전했다. 1924년 전국자동차상공회의소는 언론사에 사고통계를 제공하면서 보행자의 잘못이 강조한 사례들을 부각했다.
자동차 업계가 자동차 안전규제 강화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수단 중에는 ‘운전석의 미치광이’라는 표현도 있다. 술이나 약물에 취한 운전자, 일부 무모한 운전자가 사고를 일으킨다는 논리다.
‘무단횡단자’와 ‘운전석의 미치광이’는 인간의 실수에 초점을 맞추면서 자동차 사고에 내재한 ‘위험한 조건’, 즉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차량을 안전하지 않게 설계하는 문제를 가려버렸다. “자동차 로비 세력이 차량 살인 내러티브를 어찌나 성공적으로 바꿔냈던지, 이제 우리는 속도에 대해 말할 때 거의 언제나 과속한 사람이 잘못했다고 말하지 자동차가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게 설계된 것이 문제라고 말하지 않는다.”
교통공학자들은 사람의 안전보다 차량 이동의 편의성에 방점을 찍는 방식으로 도로를 설계한다. 미국 도로의 제한속도는 “가장 빠른 15퍼센트가 운전하는 속도의 하한값”이다. 미국 차량들의 평균 무게는 2000년과 2018년 사이에 약 177킬로그램이 더 늘어났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00년과 2018년 사이에 도로에 있었던 모든 SUV, 픽업, 미니밴이 다 세단이었다면 오늘날 8131명이 살아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공장은 본래 안전한 곳인데 ‘사고 유발 경향성’을 가진 노동자들 때문에 사고가 발생한다는 논리도 만들어졌다. 1911년 위스콘신주가 최초로 노동자배상법을 통과시키자 미국 전역의 공장에서 안전교육이 실시됐다. 사고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서투르고 무책임하고 때로는 술에 취한 노동자”라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심리학도 동원됐다. 기업 후원을 받는 싱크탱크에서는 사고율이 높은 택시운전사들이 이혼, 음주, 도박 문제를 안고 있고 성장기에 무단결석, 갱단 가입 등 비행 전력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서들을 생산했다.
저자에 따르면 산업현장의 사고도 노동자 잘못인 경우는 거의 없다. 2005년 코흐인더스트리가 조지아퍼시픽 제지공장을 인수한 이후 사망사고가 급증하자 사측은 노동자들의 수칙 위반을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수칙 위반 배경에는 경영진의 작업 속도 강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게다가 노동자들은 잦은 업무 이동으로 작업에 숙달될 시간이 부족했다.
사고 피해는 백인·고소득층이 아니라 비백인·저소득층에게 집중된다. 라티노 보행자 사고 사망률은 백인보다 87퍼센트, 흑인은 93퍼센트 더 높다. 원주민 보행자는 백인 보행자보다 사고 사망률이 171퍼센트나 더 높다. “흑인은 길을 건너다 딱지를 떼일 가능성이 더 높고, 길에서 사망할 경우 가해자가 처벌될 가능성이 더 낮으며, 길에서 사망할 가능성도 더 높다.” 운전자가 보행자를 보지 못했다는 것은 자주 등장하는 변명인데, 주로 안 보이는 쪽은 흑인이다. “자동차 운전자에게 흑인 보행자는 보이지 않는다. 반면 총을 든 사람에게는 흑인 보행자가 아주 잘 보인다. 그래서 흑인은 총에 더 많이 맞는다.”
피해가 사회적 약자에게 쏠리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아리셀 공장 화재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23명 중 18명이 중국·라오스 국적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이 공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동자들은 언론에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고 비상구가 어딨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이들은 ‘폭발 위험이 있으니 배터리를 땅에 떨어뜨리지 말라’는 정도의 주의 사항만 듣고 작업에 투입됐다.
가해의 책임을 더 무겁게 지는 쪽도 비백인·저소득층이다. 보행자가 차량 사고로 사망할 위험이 가장 높은 10개 도시 중 하나인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 흑인은 전체의 29퍼센트에 불과하지만, 2011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경찰로부터 딱지를 떼인 사람의 55퍼센트가 흑인이었다. 뉴욕에서는 2020년 1월부터 3월 사이에 딱지가 발부된 사람의 99퍼센트가 흑인과 라티노였다.
1991년 9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햄릿의 임페리얼푸드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튀김 기계에서 발화한 불이 번지면서 노동자 25명이 사망했다. 공장 내부는 환기가 거의 되지 않았고 스프링클러도 작동하지 않았다. 공장은 규제를 적게 받는다는 이유로 가난한 흑인들이 사는 지역에 세워졌다. 사고 당시 사망자 대부분이 흑인 여성이었다.
이처럼 사고에 계급적·인종적 편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사고를 ‘우연한 불행’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강력한 방증이다.
사고가 시스템의 문제인 한, 사고와 관련해 특정한 사람을 비난하고 강한 처벌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저자는 “(처벌은) 시스템은 안전한데 이례적으로 인간의 실수가 발생한 것이라는 믿음을 지속시킨다”면서 “처벌과 예방은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래를 비난하지 말고 언제나 맨 위를 보자. 누가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책임을 제대로 묻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정부에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규제를 통해 위험한 환경을 안전한 환경으로 바꿀 수 있다. 교통사고를 예로 들어보자. 스웨덴은 1990년대 중반 효율성 대신 사망자를 제로(0)로 만드는 교통정책인 ‘비전 제로’를 추진했다. 20년 뒤 스웨덴은 교통량은 증가했지만 도로에서 죽는 사람의 숫자는 절반으로 줄었다. “스웨덴에서는 도로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해 책무성을 졌다. 그리고 책무성의 부담을 권력과 권한이 있는 사람들에게 부과한 이 간단한 조치가, 마침내, 사고를 막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사고를 막는 일을 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