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인플루언서>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influencer: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감화시키는 사람. 혹은 소셜 미디어 구독자가 많아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 지난 8월 6일, 8월 13일 2회에 걸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인플루언서>는 제목 그대로 현재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아프리카TV 등의 소셜 미디어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인플루언서 77명이 출연해 본인들의 영향력을 겨루는 서바이벌 쇼다. 그런데 쇼의 시작과 함께 나오는 내레이션은 인플루언서의 개념과 어딘가 모순된다. ‘당신은 방금 수많은 콘텐츠 중 <더 인플루언서>를 선택해 시청하기로 했습니다. 무엇이 당신의 관심을 이끌었나요? 이처럼 당신의 관심을 받아 탄생했고 동시에 당신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 그들을 ‘인플루언서’라고 부릅니다.’ 그들의 논리대로면 <더 인플루언서>를 시청자들이 보고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영향력이 아니라, 시청자의 선택을 받은 것 자체가 본인들의 영향력이 된다. 하지만 사실 수많은 콘텐츠 중 <더 인플루언서>가 선택된 건 프로그램 자체의 힘보다는 차라리 출연자 중 한 명인 아프리카TV BJ 과즙세연이 방영 얼마 전 미국에서 하이브의 수장인 방시혁과 함께 걷는 사진이 방영 직전 공개된 탓이 클 것이다.
우연성을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영향력을 대중의 선택을 받는 능력으로 한정할 때, 이 쇼가 그러하듯 각 인플루언서가 지닌 콘텐츠 생산 능력과 확장성은 오직 온라인 모객 능력으로 환원된다. 그것이 영향력인가? 차라리 그들을 선택하는 대중의 행위에 더 영향력이 있어 보인다. 실제로 출연자들은 게임의 거의 모든 순간마다 인플루언서로서의 상징 권력과 권위로 대중을 움직이기보다는 대중을 향해 제발 나를 봐 달라고 읍소한다. 이것으로 알 수 있는 서바이벌 쇼로서 <더 인플루언서>의 방향성은 두 가지다. 첫째, 출연자들은 활동 플랫폼이나 콘텐츠 스타일과 상관없이 모객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 둘째, 그들이 무엇을 하든 그에 대한 책임을 게임을 설계한 <더 인플루언서>가 아닌 그걸 굳이 선택해 영향력을 행사한 대중에게 돌린다. 이 둘을 요약하면 첫째, 저급하고 둘째, 무책임하다.
특별히 더 잔혹하거나 불공정하거나 자극적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앞서 말한 과즙세연을 통한 우연적인 홍보 효과를 비롯해 넷플릭스 비영어권 예능 수위권에 오른 화제성 덕에 언론 반응도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는데, 이 쇼가 주목경제 시대 미디어의 본질을 보여준다고 말하는 이들은 사기를 치는 중이고, 선정성과 노골적인 룰 때문에 해악이 너무 크다고 말하는 쪽은 엄살을 부리는 중이다(물론 사기보단 엄살이 훨씬 낫다). 이 쇼의 논쟁적 지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접근은 결과적으로 헛발질이 될 뿐이다. 이 쇼는 조금도 논쟁적일 게 없기 때문이다. 단지 논쟁적인 척 하는 것에 불과하다.
가령 출연자가 주로 활동하는 플랫폼의 팔로워 숫자를 돈으로 환산해 목걸이에 표시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계급에 대한 흥미로운 은유도, 인간을 몸값으로 규정하는 천박함도 아니다. 그냥 제작진의 겉멋일 뿐이다. 또 다른 두뇌 서바이벌 쇼 tvN <더 지니어스>의 가넷처럼 게임 내 화폐로 사용되긴 하지만 게임 내 영향력은 미미하며, 어차피 그 모든 액수는 최종 우승자에게 상금 3억으로 지불될 뿐 어떤 유의미한 차등도 만들지 못한다. 현재 가장 논란이 되고 화제성의 중핵을 이루는 선정성도 마찬가지다. 2라운드 라이브 방송 미션에서 과즙세연의 섹시 댄스나 거의 속옷만 입고 섹시한 유니폼을 갈아입는 표은지의 방송이 성 상품화 콘텐츠에 대한 문제의식 없는 재현이라거나 특정 플랫폼에서의 소위 ‘벗방’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는 온당하다. 다만 해당 장면들은 자극적이기보다는 너무 예측 가능해서 따분하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에 가끔 안쓰럽다. 쇼로서 <더 인플루언서>의 저급함이란 그저 출연자들이 바닥까지 드러내도록 유도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딱히 인상적인 순간이 만들어지지 않기에 저급하고 또한 무책임한 것이다.
만약 <더 인플루언서>에 단 하나 흥미로울 뻔한 요소가 있다면 이 쇼가 시청자와 관계 맺는 방식이 쇼 안에서 출연자들이 대중과 관계 맺는 것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다. 관심을 끌되 알맹이가 없다는 점에서. 2라운드 라이브 방송, 3라운드 피드 제작, 4라운드 댓글 받기는 모두 대중의 즉각적 관심을 끌어 모으는 과제다. 이들 미션에서 뷰티 유튜버 이사배 정도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일종의 ‘낚시’로 관심을 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진용진은 자신의 모든 콘텐츠를 비공개로 돌린 뒤 굉장한 심경 고백이 있을 것처럼 관심을 끌고, 배우이자 유튜버인 장근석은 파트너가 된 코스프레 유튜버 마이부와 사진을 찍은 뒤 마치 둘 사이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 같은 텍스트로 판정단의 시선을 모았다. 이러한 전략에 어느 정도의 번뜩임이 있긴 하지만, 결국 이것들은 모두 관심을 끈 뒤 아무 것도 주지 않는 허위매물이다. 또한 일말의 번뜩임조차 매우 쉽게 베낄 수 있다.
피드 제작 미션에서 사진의 퀄리티보다 텍스트를 통한 ‘낚시’가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장근석이 보여주자, 오킹은 이를 해킹하고 극대화해 사진 없이 길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텍스트로 판정단의 시선을 잡아두는 것에 성공한다. 오킹의 빠른 적응과 변주 능력이 돋보이지만 그뿐, 관심을 끌고 끝인 허위매물이라는 것은 동일하다. 해당 미션에서 탈락한 진용진은 이런 식의 무책임한 ‘낚시’는 결과적으로 플랫폼 알고리즘을 통해 벌을 받고 배제된다고 적절히 지적했다. 단순한 ‘관종’이 아닌 콘텐츠로 좋거나 나쁜 반응을 이끌어내야 하는 인플루언서로서 지양해야 할 일이지만, 대중의 다양한 관심과 반응을 오직 모객으로 환원해버린 <더 인플루언서>의 납작한 세계에선 이런 식의 ‘어뷰징(abusing, 부당한 이득을 위해 교란하는 행위)’만이 남는다. 댓글 받기 과제에서 유튜버 장지수는 중복 댓글 상관없이 댓글을 최대한 많이 달면 치킨을 쏘겠다는 공약으로 압도적인 1위를 했다. 그의 재치는 증명했지만, 대체 여기 어디에 인물과 콘텐츠의 영향력이라는 게 있는가. 또한 <더 인플루언서> 역시 미션만 바꿔가며 대동소이한 ‘어뷰징’의 꼼수만 반복해 재현할 뿐 게임으로서 대체 어떤 다양한 재미와 캐릭터, 서사를 남겼는가.
그래서 <더 인플루언서>는 진용진의 ‘모든 비밀을 공개합니다’라는 라이브 방송 방제처럼, 마치 민망한 노출 사고가 있는 것처럼 꾸민 오킹의 텍스트 피드처럼, 일종의 허위매물이다. 다양한 플랫폼과 분야에서 활동하는 유력 인플루언서 77명을 모아 벌이는 쇼로서의 스케일을 강조하자만, 그들의 각기 다른 개성을 살리지 못하고 비슷한 필승 패턴만 유도하는 게임 설계 안에서 77명이란 규모는 크레디트 출연자 목록으로만 흔적을 남긴다. 새로운 직업군인 인플루언서를 다룬다지만 그들의 영향력을 오직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으로만 한정하고 대중의 영향력 역시 동원된 숫자로만 남으며 소셜 미디어를 바탕으로 한 영향력과 확장성, 후폭풍에 대한 다양한 담론과 갈등의 가능성도 닫아버렸다. 다행히 쇼 내내 가장 호감 가는 캐릭터와 서사를 만들어낸 이사배가 파이널 라운드까지 가서 크게 선전했지만, 디지털 시대의 산물인 인플루언서들의 최종 결전을 오프라인 관객 대상 무대로 꾸미는 이해할 수 없는 구성으로 마지막 회는 더없이 난잡해졌다.
유력한 글로벌 OTT 시리즈로서 <더 인플루언서>가 문제인 건 도덕적인 찜찜함 때문도, 선정성 때문도, 공정성 여부 때문도 아니다. 마치 논쟁적인 지점을 건드린 듯한 허세로 쇼 자체의 낮은 완성도와 부족한 재미를 가리고 대중을 동원해내는 어뷰징에 성공하기 때문이다. 기획에 대한 높은 기대치와 선정성에 대한 소문, 출연자에 의한 우연적인 호재와 우승자에 의한 덜 우연적인 악재가 겹쳐지며 이 프로그램은 화제의 중심에 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출연한 인플루언서들의 필승 전략이 그러했듯 이 역시 새 시대 콘텐츠 시장의 한 전략이 될 수도 있겠다. 다만 <더 인플루언서>의 미션들이 보여주듯 성공한 어뷰징은 빠르게 확장 및 변주되며, 시청자들이 ‘수많은 콘텐츠 중 <○○○>를 선택해 시청하기로’ 하는 이유들은 갈수록 콘텐츠의 만듦새와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 내용물이야 어찌 됐든 당신이 선택한 것이라는 알리바이와 함께.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더 인플루언서>가 남길 수 있는 가장 명백한 영향력일지도 모르겠다.
<위근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