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지노도 놀란 실력파 초등학생들…어떻게 대형 음악 페스티벌에 초청됐나

대구 | 김한솔 기자

랩비트 2024 무대 서는 대구 대곡초등학교 전자음악 동아리 ‘키즈 일렉트릭 오케스트라’

대구 대곡초 자율 동아리 ‘키즈 일렉트릭 오케스트라(KEO)’. 맨 뒷줄부터 왼쪽부터 권세윤, 진소연, 최유리양이 서있다. 드럼 앞에 앉은 것은 김채원양, 마이크를 들고 있는 보컬 두 명은 (왼쪽부터) 우유민, 김가온양이다. 맨 앞줄은 (왼쪽부터) 남나령, 송채은양. 권도현 기자

대구 대곡초 자율 동아리 ‘키즈 일렉트릭 오케스트라(KEO)’. 맨 뒷줄부터 왼쪽부터 권세윤, 진소연, 최유리양이 서있다. 드럼 앞에 앉은 것은 김채원양, 마이크를 들고 있는 보컬 두 명은 (왼쪽부터) 우유민, 김가온양이다. 맨 앞줄은 (왼쪽부터) 남나령, 송채은양. 권도현 기자

박재범, 엄정화, 장기하, 키스오브라이프, 영파씨…. 다음 달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 <랩비트 2024>의 라인업은 화려하다. 힙합, R&B, 록, K팝 등 여러 장르의 유명 뮤지션들이 나온다. 그런데 익숙한 출연진들 사이에 생소한 이름이 하나 보인다. ‘키즈 일렉트릭 오케스트라(Kids Electric Orchestra, 이하 KEO)’. 무명의 인디밴드 같아 보이는 이들은 대구 대곡초등학교 전자음악 동아리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무대에 서게 됐을까. 지난 19일 페스티벌 준비에 한창인 대곡초 KEO 동아리실을 찾았다.

학급비 100만원으로 시작된 전자음악 동아리

대구 대곡초 ‘키즈 일렉트릭 오케스트라’ 학생들이 <랩비트 2024> 출연을 앞두고 연습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대구 대곡초 ‘키즈 일렉트릭 오케스트라’ 학생들이 <랩비트 2024> 출연을 앞두고 연습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아이들이 모두 하교해 텅 빈 초등학교. 천천히 걷는 발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복도의 제일 끝 교실에서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KEO의 연습실이다. 최유리(베이스, 서브신스), 권세윤(신스, 세컨 드럼, fx), 김가온·우유민(보컬), 진소연·남나령(서브 신스), 송채은(보컬, 리드 신스), 김채원(드럼)양은 요즘 방과 후 거의 매일 이 교실에서 ‘랩비트’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진소연·남나령·송채은·김채원 양은 초등학교 6학년, 최유리·김가온·권세윤·우유민양은 KEO 활동을 하다 졸업한 중학생들이다.

KEO는 2013년 초임이던 서수교 교사가 ‘학급 동아리비’로 받은 100만 원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면서 시작됐다. 서 교사는 과거에 잠깐 배웠던 전자음악을 떠올렸다. ‘누르면 소리가 나는’ 악기로 하는 전자음악은 생각보다 간단하고 재밌었다. 아직 악기를 다루는데 서툰 초등학생들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스터 키보드를 하나 구매했다.

악기는 생겼지만 ‘합창부’도, ‘관악부’도, 그렇다고 ‘춤’ 동아리도 아닌 ‘전자음악’ 동아리는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낯설었다. 서 교사는 사비를 들여 악기 종류를 조금씩 늘려나갔고, 홍보도 열심히 했다. 동아리 연습 장면을 직접 촬영, 편집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아이들이 마스터키보드와 MPD(미디)로 피프티피프티의 ‘큐피드’를 연주하는 20초 안팎의 영상은 두 달 만에 200만 명이 넘게 봤다. 래퍼 빈지노는 KEO의 영상에 ‘놀랍다’는 댓글을 달았다. 지금 KEO 멤버들은 꽤 치열한 경쟁을 통과한 이들이다. 김채원양은 무려 세 번 만에 오디션에 붙었다. “보컬로 세 번 오디션을 봤는데 계속 떨어지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여기 들어오려고 드럼 학원에도 다녔어요.”

라디오헤드가 누구야?···넓어지는 취향

송채은양(가운데)이 악보를 보며 연주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송채은양(가운데)이 악보를 보며 연주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emon Tree by Kids Electric Orchestra

“솔직히…어디서 이런 노래를 찾아오나 했어요.” 남나령 양의 말에 나머지 학생들이 박수를 치며 웃었다. “난 이게 정말 성공할 수 있는 노래인가 했어.” “선생님은 들어보면 좋을 거라고, 대중적인 노래라고 했는데 너무 낯설었어.” 여기저기서 나령의 말에 동의했다. KEO는 서 교사가 전자음악용으로 편곡한 곡들로 연습을 한다. 기존에 발표된 유명 뮤지션들의 노래를 아이들이 전자악기로 연주할 수 있도록 바꾼 것이다. 누자베스의 ‘아루아리안 댄스’, 풀스 가든의 ‘레몬 트리’, 라디오 헤드의 ‘노 서프라이즈’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아티스트들의 곡이 대부분이지만, 2010~2012년생인 학생들에겐 그저 낯설기만 한 곡들이었다.

아이들의 취향은 동아리 활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넓어졌다. 평소 록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던 진소연양은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듣고 록에 흥미를 갖게 됐다. “리듬감이 좋고, 노래 중간에 ‘빵’ 하는 부분이 되게 멋있어요.” 과거 가수를 꿈꿨던 김가온양에게 동아리는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였다. “원래 제가 듣던 음악과는 다른,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고 부를 수 있어 좋아요.” 우유민양은 “진짜 처음 들어본 노래가 있었는데,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고 좋았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때 밴드의 매력을 알게 된 최유리양은 중학교에서도 밴드부에 들어갔다. 물론 방과 후 밴드 연습하고 학원 가는 일상이 쉬운 것은 아니다. 권세윤양은 “학교, 학원 오가는 것만 반복하던 삶에서 지금은 동아리 활동이 가장 큰 일이 됐다”면서 “이런 무대를 준비하면서 더 부지런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채은양도 “연습량이 많을 때는 가끔 힘들 때도 있지만, 결국에는 하고 싶고, 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동아리 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KEO가 서게 될 <랩비트>의 2023년 무대 풍경. 랩비트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KEO가 서게 될 <랩비트>의 2023년 무대 풍경. 랩비트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어쩌다 음악 페스티벌 무대에까지 서게 됐지만 서 교사가 KEO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얻었으면 하는 것은 ‘창의적인 활동을 통해 성공해보는 경험’이다. 음악 실력이야 실용음악 학원에서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지만, 낯선 것에 대한 도전을 통해 자신감을 얻는 것은 학원에서 가르쳐줄 수 없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지도요. 다만 제 생각엔 지금 배워서 어른이 되었을 때도 도움이 되는 건 ‘새로운 일에 대한 자신감’ 인 것 같아요. 새로운 것이 나타났을 때 긴장하고, 피해버리는 게 아니라 부딪혀서 해볼 수 있는 그런 자신감을 키워주고 싶어요. 우리 학생들이 그걸 가지고 앞으로 만나는 일들을 대처했으면 좋겠어요.”

KEO가 출연하는 ‘랩비트 2024’는 내달 21~22일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다.

KEO가 출연하는 <랩비트 2024> 포스터. KEO는 첫날인 21일 출연이 예정돼 있다.

KEO가 출연하는 <랩비트 2024> 포스터. KEO는 첫날인 21일 출연이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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