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관리’ 강조하는 미디어…계급·정치 문제 빼놓으면 기만이다
언젠가부터 젊은 여성들의 희망 사항은 ‘귀여운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배경이 있다. 젊음을 찬양하는 사회는 노화를 막연하고도 집요한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노인이라는 존재는 개인의 특성을 모두 삭제한 기표 같다. 늙고 병들면, 그가 어떤 사람이었든 고유함이나 매력은 지금으로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과거의 영광으로만 남는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귀여운 할머니가 되겠다는 다짐은 노화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간절함의 발현이다. 최근 미디어에서는 기존의 정형화된 ‘노인’과는 다른 유형을 볼 수 있다. 배우 최화정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자신의 취향과 상큼한 매력을 뽐내며, 지인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모습을 유튜브에서 공개하며 큰 인기를 끈다. 아나운서 백지연은 자신의 환갑을 축하하는 생일 파티를 공개했는데, 드레스를 입고 케이크와 와인을 곁들여 온라인상에서 화제였다. 흔히 환갑잔치라고 하면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와 다른 장면은 노년의 문화를 구성하는 감각이 변화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생애주기별 발달과업 과제가 뒤로 늦춰지고, 의료 서비스와 영양 상태가 상향되면서 현대인은 이전 세대와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과거의 나이에 0.8 정도를 곱해야 이전 세대와 같은 수준의 발달과 신체 나이, 외모를 갖게 된다고. 지금의 노년 세대는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소비문화를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SNS에서는 스타벅스에서 노인 고객을 맞이한 점원이 커피를 누룽지와 다방 커피에 비유해 설명하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는 미담(?)이 있는데, 이 글에 대한 농담 하나. “할머니 : 무슨 소리야?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줘.” 물론 계급과 경험에 따라 노인의 스펙트럼 또한 다양하겠지만, 노년을 바라보는 편협한 시선은 재고할 만하다. 동시에, 이렇게 노년을 조명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끝사랑>(JTBC)은 지난 8월15일 첫 방송을 시작한 새로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아니, 또 ‘연프’(연애 프로그램)야? <끝사랑>은 50세 이상 중년 출연진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방송사의 공식 소개는 다음과 같다. “한국인 평균 기대 수명 82.7세. 우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다. 사랑의 섬, 제주에서 펼쳐지는 50세 이상 시니어들의 ‘끝사랑’ 찾기. 진정한 사랑은 인생을 이해할 때쯤 찾아온다.” 시니어는 65세 이상 노인을 일컫는 단어이지만 이 프로그램은 연령대를 조금 더 낮추었다. 외국어로 표기하면 익숙한 한국어에 배어 있던 정서나 이미지가 탈각된다. 중년이나 노년, 할머니·할아버지라는 단어는 어딘가 연애 프로그램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 말은 ‘쿨’하지 못하니까. 동시에 생물학적 나이로는 중·노년에 속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도저히 전통적인 의미의 할머니나 할아버지로 보이지 않는 출연자를 지칭할 표현이 필요했을 것이다.
연애 프로그램 출연진이 으레 그렇듯, <끝사랑>의 출연진 역시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들이다. 그리고 이들을 좀 더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단순히 예쁘고 잘생긴 수준을 넘어서 ‘젊어 보인다’라는 데 있다. <끝사랑>의 출연진은 꼿꼿한 자세, 좋은 피부, 세련된 스타일링, 품위 있는 화법이 공통점이다. 한 명 한 명 등장할 때마다 패널들은 그들이 ‘그 나이대로 안 보인다’며 감탄한다. 나이가 들면 매력 자본이 모두 소진되며, 삶의 열정도 재미도 퇴색한다고 가르치는 사회에서 ‘청춘’ 이후에도 여전히 매력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나,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설 만큼 열정적이라는 사실은 꽤 고무적이다. 아니 근데… ‘다른’ 표본이 소수의, 빼어난 예외에 제한된다면 노년과 노화에 대한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끝사랑>의 출연진은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한다. 한 여성 출연자는 자기 전에 목과 발, 손에도 빠짐없이 크림을 바르고 팩을 하는 등 정성을 기울인다. 남성 출연자들은 틈틈이 근력 운동을 한다. 3화에서 비바람을 개의치 않으며 조깅을 하는 여성 출연자의 모습을 보고 패널들은 “와, 자기 관리”라면서 감탄하기도 했다. 외모가 중요한 연애 프로그램에서 출연진의 외모 관리는 빠지지 않는 볼거리지만, <끝사랑>의 경우는 여기에 ‘노화 관리’라는 항목이 추가되었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출연자들
피부 관리·근력 운동 등 보여줘
패널은 “와, 자기 관리” 감탄 연발
한때 유행한 동안·몸짱 담론 연상
‘노화는 맞서 싸워야 할 것’ 메시지
그 이면엔 자기 경영과 성공 논리
신자유주의 통치성 원리 여실히
하지만 빈곤·사회 안전망 안 짚고
온전히 ‘노년’을 말할 수 있을까
일정 연령대를 넘어가면 대부분이 동의하는 말이 있다. 예쁘다, 잘생겼다는 말보다 기분 좋은 칭찬은 ‘어려 보인다’라는 것. 동안(童顔)은 아이의 얼굴을 뜻하는 의미로는 거의 쓰이지 않고,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사람에게 쓰이는 찬사로 통한다. “동안 담론은 ‘생물학적 나이(chronical age)’와 ‘보이는 나이(look age)’의 편차가 크게 나타나는 육체적 외양에 우월적 가치를 부여”하며, “우리 사회와 문화가 재구성한 몸과 나이의 결과물”이다. 미디어가 동안에 주목하기 시작한 뿌리는 2006년 시작된 <전국 동안 선발대회>(SBS)다. 이 프로그램은 설날이나 추석 연휴 때 SBS에서 시청자 참여 공개 프로그램으로 방송되었으며,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일반인 출연자가 등장했다. 이 중에는 30대인데도 10대처럼 보여서 회사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남성 출연자, 20대인데도 초등학생으로 오해받는 여성 출연자도 있었지만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역시 40~50대에도 ‘예쁜 얼굴과 탄탄한 몸매’를 유지해 20대나 30대처럼 보이는 여성 출연자들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2006년부터 2011년까지 5회 방송되는 동안 소위 ‘동안 아줌마’, ‘몸짱 아줌마’로 불린 여성 출연자들은 큰 인기를 누리며 타 방송까지 진출하거나, 동안 관리 상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동안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되었다는 사실은 노화가 적극적으로 맞서 싸워야 할 존재이자,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다양한 미용 상품과 의료 기술의 사용이 일상화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공포 마케팅이 활성화되기도 했다. 인터넷상에서는 선크림 사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얼마나 추하게 늙었는지’ 보여주는 자극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주름이 생기고 피부가 처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선크림이라는 선택지는 이를 관리 실패의 증거로 제출한다. 잘 관리된 소수의 사례는 성공 신화로 군림하며 개인의 자발적인 노화 관리를 부추긴다. 몸과 나이를 초월하려는 욕망은 결국 자신의 몸과 나이를 부정하고, 나이를 드러내는 외모를 혐오하게 된다.
현재 폭넓게 쓰이는 관리라는 말은 ‘통치성’의 중요한 기제이다. 통치성은 푸코의 용어로, 인간의 행위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합리성을 뜻한다. 흔히 권력이라고 하면 지배하고, 억압하고, 강제하는 힘을 상상하기 마련이지만 이는 고전적인 개념이고, 실제로 권력의 얼굴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통치성은 인구를 보호하는 안전과 개인의 복지를 보장하는 증진의 기술을 사용하기에 달콤하고 안락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권력의 기술이다. 삶의 모든 영역이 시장 경제의 논리에 편입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통치성은 이제 개인을 ‘자기 자신에 대한 기업가’(호모 에코노미쿠스)로 길들인다. 기업을 경영하듯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자기 자신을 경영하라는 신자유주의 통치성은 개인의 자발성을 강조하고, 최대의 성과를 내는 선택만이 가치 있다는 믿음을 유포한다. 그리고 구조적인 요인들을 표백하고, 모든 것을 철저히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개인은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에 따라 한다고 믿는-그러나 결국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판단하는 방향에 따르는- 실천을 다양한 차원에서 생산한다. ‘관리’ 담론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통치성의 중요한 기제 중 하나이다. 개인은 자기 자신을 잘 관리해야 한다. 그게 자신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듯하다. 실적, 인간관계, 건강, 외모, 기분… 노화 관리는 외모와 건강 관리가 시간성을 따라 확장된 분야이다. 데카르트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았다면,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너는 관리한다. 고로 존재한다.”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욕망 역시, 잘 ‘관리’된 노인 여성이 되고 싶다는 뜻이다. 당연하게도 관리는, 경제적 여유가 전제되어야 하는 행위이다. OECD 노인 빈곤율 1위인 한국의 현실에서, 계급과 정치의 문제를 떼어놓은 채 노년을 상상할 수 없다.
미디어가 노인 빈곤 문제와 사회적 안전망을 논하지 않으면서 (관리 잘된) 귀여운 노인의 표상만을 들이밀며 “야, 너도 이렇게 될 수 있어”라고 한다면, 이는 명백한 기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