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발레만 생각하는 남자, 전민철

백승찬 선임기자

내년 마린스키 입단…김기민 이어 두 번째

29일 ‘라 바야데르’로 전막 발레 데뷔

“발레는 답이 있는 장르…클래식 발레가 좋아”

전민철과 이유림이 <라 바야데르>를 연습하고 있다. ⓒKyoungjin Kim·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전민철과 이유림이 <라 바야데르>를 연습하고 있다. ⓒKyoungjin Kim·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유니버설발레단의 <라 바야데르>는 예매 5분 만에 매진됐다. 남성 주역의 전막 데뷔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주인공은 전민철(20).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이자 세계 최정상급 발레단인 마린스키발레단에 내년 입단을 앞둔 발레리노다. 한국인이 마린스키에 입단하는 것은 현재 수석무용수로 활약 중인 김기민에 이어 두 번째다. 전민철이 2017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주역을 뽑는 과정을 그린 SBS <영재발굴단>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성은 한층 증폭됐다. 전민철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섭외를 진행해온 유니버설발레단에는 마린스키 입단 소식이 금상첨화였다.

12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발레단 회의실에서 전민철을 만났다. 무대 아래 전민철은 그다지 재미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말투는 조곤조곤했다. 과장하지 않지만, 겸손을 가장하지도 않았다. 발레 이외에 관심 있는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답을 찾지 못해 한참을 머뭇거렸다. 시간 나면 집에서 쉬거나 친구들과 밥 먹고 차 마시는 게 전부다. 고등학교 때부터 거의 모든 시간에 발레를 하고 발레만 생각했다. 스승이나 선배가 ‘춤은 인생 경험에서 나온다. 놀기도 하고 사랑도 해야 한다’는 충고를 하지만, 아직 뚜렷하게 실천한 적은 없다. 국제 콩쿠르에 나가면 “외국 친구들은 발레하는 삶과 개인의 삶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국 무용수들은 발레가 삶의 전부”라는 점을 느낀다고 했다.

발레에 헌신해온 그 많은 시간 때문일까. 전민철은 전막 발레 데뷔 무대에 이렇다 할 부담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 보였다. 그는 “체력적으로 부족하진 않다. 다만 아무리 춤을 잘 추고 동작을 잘 구현해도 스토리라인을 연기로 끌어갈 수 없으면 주연 무용수가 아니다. 그 점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라 바야데르>는 힌두사원의 무희 니키야, 전사 솔로르, 공주 감자티의 삼각관계를 그린 대작 발레다. 이번 공연에는 150여 명의 출연진, 400여 벌의 의상이 등장한다. 솔로르 전민철의 파트너 니키야는 유니버설발레단 솔리스트 이유림이다. 아울러 유니버설의 간판 스타 강미선·콘스탄틴 노보셀로프를 비롯해 엘리자베타 체프라소바·이동탁, 홍향기·이현준, 서혜원·강민우가 각각 니키야와 솔로르로 등장한다.

전민철과 이유림이 <라 바야데르>를 연습하고 있다. ⓒKyoungjin Kim·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전민철과 이유림이 <라 바야데르>를 연습하고 있다. ⓒKyoungjin Kim·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전민철은 “<라 바야데르>는 남자 무용수라면 누구라도 해보고 싶어하는 작품”이라며 “특히 3막의 파드되(2인무)가 하이라이트”라고 말했다. 전민철은 이후 출연하고 싶은 작품으로는 또 다른 클래식 발레 <지젤>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꼽았다. <지젤>은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고 했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저도 로미오가 돼서 역할을 해석해보고 싶다”고 했다.

컨템퍼러리 발레에 관한 관심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지만, 전민철은 젊은 나이답지 않게 고전적인 안목과 가치관을 가졌다. 마린스키 입단을 지원한 것도 “러시아 발레단이 클래식 발레를 많이 다루기 때문”이다. ‘김기민 이후로는 동양인을 뽑지 않는다’는 소문에 ‘포기할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김기민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1주일간의 오디션을 거쳐 합격할 수 있었다. 마린스키에는 별도의 공개 오디션이 없다고 한다. 추천을 통해 초청받아 러시아 체류 기간 마린스키 단원들과 연습을 하면 자연스럽게 합격 여부가 판가름 난다. 전민철은 “마린스키 단장님이 ‘잘 가르쳐준 한국의 스승님께 감사의 마음을 가져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전민철은 “클래식 발레는 똑같은 역할이라도 무용수에 따라 다르게 연기한다. 정형화된 스토리에 자기 해석을 넣는 무용수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예술엔 정답이 없다고 하지만, 전민철은 “발레는 답이 나와 있는 장르”라고 말했다. “선생님들이 고치라는 걸 고치면 잘해 보인다. 차근차근 단점을 보완해 발레의 정형화된 동작으로 발전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발레는 ‘게으른 천재’가 나오기 힘든 ‘정직한 장르’기도 하다. 성실하고 꾸준하고 반복의 고통을 감내할 줄 아는 전민철 같은 이가 결국엔 빛을 발한다는 것이 이 오래된 예술의 특성이다. 전민철은 포부도 고전적이었다. “세계적인 무용수가 되고 싶습니다. 관객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는 무용수가 되고 싶습니다.”

<라 바야데르>의 전민철. ⓒKyoungjin Kim·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라 바야데르>의 전민철. ⓒKyoungjin Kim·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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