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새로운 문화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는 대구간송미술관의 개관전에서 눈여겨 봐야할 작품은 무엇일까.
‘제2의 간송미술관’ 역할을 하게 된 대구간송미술관은 지난 3일부터 개관을 기념해 ‘여세동보(與世同寶)-세상 함께 보배 삼아’를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전시 초기 반응은 폭발적이다. 시민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개관전에는 간송미술관의 전시품이 총망라됐다. 국보 12건과 보물 30건 가운데 운송 및 전시가 어려운 석탑 등 2건을 제외한 40건 97점과 간송 유품 26건 60점을 선보인다. 간송미술관이 개최한 역대 전시 중 최대 규모의 국보와 보물이 출품된다.
이를 두고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장은 “마치 올림픽 선수단의 입장식과 같은 전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국보와 보물이 즐비하니 어느 작품 하나 빼놓을 수가 없다.
경향신문은 추석 연휴를 맞아 대구간송미술관 측에 ‘그럼에도 놓쳐서는 안 될 작품’을 골라줄 것을 요청했다. 엄선을 거쳐 총 4개 작품이 선정됐다. 추석 연휴에 관람을 추천하는 간송의 보물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소개할 작품은 ‘풍악내산총람’이다. 가을의 금강산을 한 폭의 그림에 모두 담은 겸재 정선의 작품이다. 풍악산은 가을의 금강산을 부르는 이름이다. 초록색과 노란색, 붉은색, 흰색 등 다양한 색을 사용해 단풍에 물든 가을의 금강산을 나타낸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금강산의 아름다운 풍경과 명소를 최대한 많이 보여주려는 듯, 그림 속 40곳이 넘는 봉우리와 절에 하나하나 이름이 쓰여 있다. 바위 봉우리는 붓을 세워 뾰족하고 날카롭게 표현하고, 봉우리를 둘러싼 숲은 붓을 눕혀 점을 찍어 부드럽게 표현했다.
바위나 봉우리의 모습이 사실적이고 절의 구조가 매우 자세하고 정확하다. 정선의 금강산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장점과 특색을 모두 갖춘 작품이다.
화면을 꽉 채운 그림의 구성, 섬세한 표현과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금강산을 그린 조선후기 회화의 거장 정선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대구간송미술관 관계자는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더 재미있고, 찬찬히 감상하면 감탄이 나오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은 이번 국보·보물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작품답게 화려하고 세심한 문양, 우아하고 기품 있는 기형(器形)이 눈을 사로잡는다.
당당하게 벌어진 어깨에서부터 바닥까지 이어지는 곡선이 아름다운 고려 매병의 몸에는 구름과 학이 가득 그려져 있다. 마치 구름 가득한 하늘을 수십마리의 학들이 날아다니는 듯하다. 이렇게 구름과 학을 함께 그린 무늬를 ‘운학문’이라고 하며 장수를 의미한다.
동그란 원 안에 있는 학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원 밖에 있는 학은 땅으로 내려오고 있다. 매병 바닥에 연꽃의 무늬가 그려져 있어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도자기를 만들 때 겉부분을 파내고 파낸 부분에 다른 색깔의 흙을 채워 구우면 푸른 청자에 흰색과 검은색 무늬를 만들 수 있다. 이런 방법을 ‘상감’ 기법이라고 하는데, 이는 고려가 만든 특별한 기술이었다고 한다. 고려의 뛰어난 상감 기술을 보여주는 이 매병은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세번째 추천 작품은 김정희의 ‘대팽고회’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1856년 유치욱에게 주기 위해 쓴 글이다. 김정희는 금박이 뿌려진 냉금지라는 종이에 글을 썼다.
매끈한 종이에 쓴 글씨는 힘차고 거칠게 보인다. 고급스러운 종이와 다른 느낌을 준다. 김정희는 예서라는 오래된 글씨체를 주로 사용했는데, 초기 예서인 ‘고예’와 후기 예서인 ‘팔분서’를 함께 썼다. 가로선이 곧으면서도 글자가 움직이는 듯, 자연스럽고 자유로워 보인다.
기교와 장식을 모두 덜어내고 마치 천진한 자연의 상태로 들어선 듯한 글씨이다. 생의 마지막 해에 이른 김정희는 이 작품에서 어떤 가르침을 남겼을까. 두부와 오이처럼 흔한 반찬이 최고의 음식이고 남편과 아내, 자식과 손주들이 모인 자리가 최고의 모임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정희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두 번이나 유배를 당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일상에서의 평온한 즐거움이 최고라는 사실을 깨달았을지도. 천진한 분위기 속에서도 느낄 수 있는 필획의 힘과 글에 담긴 뜻을 곱씹다 보면 ‘역시 거장답다’라는 감탄이 나오게 된다.
마지막으로 손꼽힌 작품은 이정의 ‘삼청첩’이다. 삼청첩은 그림과 시를 함께 담은 책을 말한다. ‘삼청’은 매화·대나무·난초를 뜻하는데, 군자가 가져야 할 태도와 마음을 나타내는 식물들이다.
이정은 먹으로 검게 물들인 비단 위에 금가루를 아교에 갠 금니(金泥)라는 재료를 써서 그림을 그렸다. 검은 바탕에 금색으로 그려진 매화와 대나무, 난초는 차분하지만 화려하다. 이정은 특히 대나무를 잘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대나무 그림은 오랫동안 다른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삼청첩에는 뛰어난 서예가나 문장가들이 쓴 글이 있다. 석봉체로 유명한 한호가 쓴 글씨와 문장가인 최립과 차천로가 지은 글을 볼 수 있다. 시·문장·글씨·그림 모두 훌륭한 작품들로 만들어진 삼청첩을 사람들은 보물이라고 불렀다. 최고급 재료에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참여해 만든 ‘시대의 보물’인 셈이다.
이 작품은 임진왜란이 한창인 1594년에 그려져 병자호란 때에는 불에 타 사라질 뻔한 위기를 겪었다. 또 19세기에는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기도 했다.
이후 1936년 간송 전형필에 의해 우리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2015년에는 전면적인 수리와 복원을 거쳐 지금의 금빛 찬란한 모습을 되찾았다. 우리 미술품의 수난과 보존의 역사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작품이다.
대구간송미술관에는 개막일인 지난 3일부터 문전성시를 이루며 관람객 2255명이 몰렸다. 지난 3~8일 관람객 1만4200여명이 들었다. 1차 판매분(9월3~22일)의 예매율이 개관 3일차인 지난 5일 50%를 돌파할 정도로 관심도가 높다. 현재 평일 2000여명, 주말 3000여명이 찾고 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추석 당일인 17일을 제외하고 문을 연다. 전시는 오는 12월1일까지 이어진다. 2차 관람권(9/24~10/6) 예매는 지난 6일 시작됐다.
대구간송미술관은 2016년 간송미술문화재단과 대구시가 체결한 ‘대구간송미술관 건립·운영에 대한 계약’에 따라 국비와 시비 등 446억원을 들여 세운 공립미술관이다. 대구미술관과 접한 2만4000여㎡ 부지에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연면적 8003㎡)로 건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