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이 높아 늘 궁금했던 곳, 53년 만에 열린 ‘하얀양옥집’

김창효 선임기자
전북 전주시 풍남동 한옥마을에 자리한 전북지사 관사가 건립 53년 만에 복합문화공간 ‘하얀양옥집’으로 탈바꿈했다. 김창효 선임기자

전북 전주시 풍남동 한옥마을에 자리한 전북지사 관사가 건립 53년 만에 복합문화공간 ‘하얀양옥집’으로 탈바꿈했다. 김창효 선임기자

“문턱을 넘어 첫 발걸음이 닿는 이곳은 늘 새로운 일로 분주합니다. 과거, 휴식과 담소의 공간이었던 응접실에 이제는 작품 한 점을 걸고, 라디오와 TV 소리 대신 예술가의 연주 소리가 있습니다.”

지난 13일 오전 전북 전주시 풍남동 한옥마을. 53년 만에 새 이름으로 시민에게 개방된 옛 전북지사 관사 ‘하얀양옥집’ 대문을 지나자 탁 트인 잔디밭이 펼쳐졌다. 하얗게 색칠한 건물 1층에 들어서자 사람으로 북적이고 예술이 있는 공간임을 알리는 글이 쓰여 있다. 벽면에는 ‘강원도 작가들의 전북 여행’이라는 주제로 강원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15명 작가의 그림이 전시됐다.

1층은 지역 예술인들의 ‘놀이터’로 쓰이고 있다. 이름은 ‘일의 터 문;턱’이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현대적 조명과 가구가 감각적으로 배치된 넓은 거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의 터 맞;이’라는 이름의 이 공간은 유종근·강현욱·김완주·송하진 등 관사를 썼던 역대 민선 전북지사 4명의 도정 역사를 볼 수 있게 꾸며졌다. 도지사 침실은 ‘이웃’으로 뽑힌 100명이 추천한 책으로 채운 ‘100인의 서재’로 단장했다.

관사는 권위주의 시대 산물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광역자치단체장 상당수는 관사를 개조해 시민에게 돌려줬다.

전북도는 도민들에게 높고 큰 성역이었던 전북지사 관사를 집이 지어진 지 53년 만에 철문을 떼어내고 담을 낮춰 누구나 문턱을 드나들 수 있도록 지난 5월 새롭게 문을 열었다. 전북도청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이곳은 2년 전만 해도 굳게 닫혀 있었다. 복합문화시설로 변신하기 전에는 역대 도지사가 사용했던 관사였다.

도지사 침실이었던 공간이 김관영 전북지사 등이 추천한 책으로 ‘100인의 서재’로 바뀌었다. 김창효 선임기자

도지사 침실이었던 공간이 김관영 전북지사 등이 추천한 책으로 ‘100인의 서재’로 바뀌었다. 김창효 선임기자

전주시 풍남동 한옥마을에 자리한 하얀양옥집은 애초 1971년 전북은행장 관사로 지어졌다.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연면적 402㎡ 단독주택이다. 전북도가 1976년 매입해 19년간 부지사 관사로 사용하다가 1995년 민선 이후 도지사가 입주했다. 관사 리모델링은 2022년 7월 취임한 김관영 전북지사가 “도민께 돌려드리는 게 도리”라고 폐지 방침을 밝히면서 추진됐다. 김 지사 부부는 현재 도청 인근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다.

시민들의 공간으로 변신한 하얀양옥집은 문을 연 지 석 달 만에 1만4000여 명이 다녀갔다.

전주 토박이인 이형민씨(80)는 “68년 만에 처음으로 이 양옥집에 들어왔다. 담이 높아 늘 궁금했는데 시민의 공간이 되어 만나니 반갑다”면서 “이곳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얀양옥집 운영을 맡은 전북문화관광재단 최영규 사무처장은 “한정된 자원으로 전시와 프로그램 운영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드는데 많이 고민했다”면서 “문화예술관광의 모든 콘텐츠가 도민이나 관광객들이 소외되지 않고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현재 전국 17개 시·도 중 대구·경북·강원 등 3곳은 여전히 관사를 사용 중이다. 김진태 강원지사가 쓰는 관사는 춘천시 봉의동 단독주택(연면적 414.8㎡)으로 광역단체장 관사 중 규모가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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