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미친 사람들
대놓고 다정하진 않지만
카렐 차페크 지음 | 각 이리나, 박아람 옮김
휴머니스트 | 각 232쪽, 224쪽 | 각 1만7000원
여행기를 두 가지로 분류한다면 여행지에 관한 실용적 정보가 담긴 가이드성 여행기, 자신의 여행 감상을 풀어낸 에세이식 여행기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가 쓴 스페인과 영국 여행기 <조금 미친 사람들>(스페인)과 <대놓고 다정하진 않지만>(영국)은 그 중간 어디쯤 있다. 1920년대 출간된 여행기인 만큼 현대에 정보가 될 만한 내용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여행지에서 느낀 감상을 가득 담았다기엔 다소 건조하다.
두 책은 100여년 전 스페인과 영국 풍경에 대한 차페크의 섬세한 ‘관찰일기’에 가깝다.
<조금 미친 사람들>에서 작가는 스페인 세비야의 알카사르 궁전과 정원, 히랄다 탑을 관람하고 투우 경기도 보러 다닌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찾는 유명 건축물에 대한 작가의 정교한 묘사, 투우 경기에 관한 실감 나는 소감을 읽는 것은 즐겁다.
하지만 이 여행기의 진짜 매력은 그런 관광지가 아닌 평범한 장소에 대한 작가의 고찰에 있다. 차페크는 세비야 아파트 창문이 하나같이 바깥으로 튀어나온 격자 형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발견한다. ‘레하스’라 불리는 이 형식 때문에 세비야의 집 창문은 새장 같기도, 그 안을 들여다보는 장식적인 액자 같기도 한 느낌을 준다. 창문으로 시작한 글은 그 안에 있는 보통의 스페인 가정 풍경에 대한 묘사로 이어진다. 누군가에겐 알카사르 궁전으로 가기 위해 지나치는 ‘경로’에 불과했을 세비야의 골목길이, 갑자기 조금 천천히 걸으며 감상하고 싶은 장소가 된다.
영국 여행기인 <대놓고 다정하진 않지만>은 조금 더 유머러스하다. 차페크는 유명인들을 본떠 제작한 밀랍 인형을 전시해놓은 마담 튀소 박물관에서 중절모를 쓴 신사를 인형으로 착각해 유심히 관찰하다 신사가 갑자기 움직여 깜짝 놀란다. 두 책 모두에 작가가 직접 그린 삽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