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소통한 책, 안 읽혀도 돼

김지원 기자
[책과 삶] 시대와 소통한 책, 안 읽혀도 돼

옥스퍼드 책의 역사
제임스 레이븐 외 지음 | 홍정인 옮김
교유서가 | 632쪽 | 3만8000원

‘책은 읽혀야 하는가?’

이 질문은 도발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수천년 ‘책’의 역사를 돌이켜본다면 딱히 새로운 질문은 아니다. 중세시대 책에 실린 예수 그림엔 얼굴만 닳아있었는데, 기도를 할 때마다 매일같이 그림에 입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불과 몇세기 전까지만 해도 책을 읽어낼 수 있는 계층은 극소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책에는 큼직한 그림이 포함되어 있었다. 글자라기보다는 그림을 읽은 거다. 사람들은 순회 낭독자가 읽어주는 글을 ‘들었다’. 읽히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꽂아두기 위해 팔리는 책들도 많았다.

제임스 레이븐 등 문헌, 역사학자 열여섯명이 공동 집필한 <옥스퍼드 책의 역사>는 기원전 3200년경 바빌로니아의 점토판부터 오늘날의 전자책, 블로그까지 텍스트를 품은 그릇의 역사를 살핀다. 그것은 한때 두루마리로 둘둘 말려 있었고, 매듭의 모습을 하고 있고, 종이를 겹친 네모가 되었다가 오늘날엔 상당수 스마트폰으로 들어간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다.

책은 애초에 읽기 어려운 것이었고,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다. 아마 인간이 만든 창조물들 중에 가장 어색하고 기묘한 게 이 책이라는 물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열렬하게 책을 찍어냈고, 또 읽었다. 그중에는 좋은 책도 있었지만, 당연하게도 나쁘고 시시껄렁한 책들도 아주 많았다.

책의 역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것이 ‘책’에 대한 이야기에서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책은 단지 글자가 적힌 매체이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품고 역사의 흐름에 불을 놓아왔다. 심지어 책을 읽을 수 없는, 읽지 않은 동시대 사람들에게도 불가사의한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하게 된다. 오늘날 ‘책을 읽자’라고 했을 때 단지 좋았던 과거로 돌아가자는 정도의 안일한 권유라면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에 대해서다. 수천년 책의 역사 가운데는 애초에 좋았던 과거라는 것 자체가 없다. 차라리 오늘날 책의 가치를 찾고 싶다면 책이 아닌 것들, 시시껄렁한 책들, 읽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눈을 돌려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책의 역사는 코덱스 안에 갇힌 역사가 아니라, 끊임없이 책의 바깥으로 뻗어나가며 시대와 소통해온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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