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개국 작가들이 조각으로 그린 ‘공업도시’ 창원···창원조각비엔날레

김한솔 기자

창원조각비엔날레 ‘큰 사과가 소리없이’

크리스 로 <반복되는, 예언적인, 잠들지 않는 졸린 도시의 루시드 드림>. 창원문화재단 제공

크리스 로 <반복되는, 예언적인, 잠들지 않는 졸린 도시의 루시드 드림>. 창원문화재단 제공

크리스 로의 작품은 작품 속으로 관객들이 들어가 감상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김한솔 기자

크리스 로의 작품은 작품 속으로 관객들이 들어가 감상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김한솔 기자

창원은 공업도시다. 올해로 국가산단조성 50주년을 맞았다. 이 도시에서는 어느 쪽으로 움직여도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공장이 보인다. 도시는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다. 육중한 공장이 내뿜는 기계음 같은 것은 들리지 않는다. 공장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 시내는 날씨 좋은 평일 오후에도 한산하다.

지난달 27일 개막한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큰 사과가 소리없이’에 참여한 작가 크리스 로가 느낀 창원의 첫인상도 비슷했다. 그가 창원에 도착해 떠올린 첫 단어는 ‘침묵’, 두 번째 단어는 ‘졸림’ 이었다. 문신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작품 ‘반복되는, 예언적인, 잠들지 않는 졸린 도시의 루시드 드림’은 이 두 단어를 모티프로 만들어졌다. 비엔날레 제목인 ‘큰 사과가 소리없이’는 김혜순 시인의 시 ‘잘 익은 사과’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현시원 예술감독은 전시가 열리는 문신미술관, 성산패총, 동남운동장, 성산아트홀을 각각 하나의 큰 사과이자 전시 도면으로 보고 전시를 기획했다.

창원이 하나의 큰 사과라면, 로의 작품은 그 사과의 껍질을 잘 깎아 걸어둔 것 같다.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크림색의 얇은 설치물들이 어떤 것은 축 늘어진 채로, 어떤 것은 느슨한 격벽처럼 허공에 걸려 있다. 작가는 조용하고 졸린 도시에서 느낀 ‘여백’ 그 자체를 조각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조각과 공간의 경계를 허문다.

최고은의 <에어록>. 창원문화재단 제공

최고은의 <에어록>. 창원문화재단 제공

정현의 <목전주>. 창원문화재단 제공

정현의 <목전주>. 창원문화재단 제공

로가 무형의 느낌을 유형의 조각으로 구현했다면, 성산패총 유물전시관 2층 발코니에 설치된 최고은의 작품 ‘에어록’은 멀리 보이는 풍경을 작품의 일부로 끌어왔다. ‘에어록’은 거대한 용수철이다. 최고은은 발코니의 기둥과 벽을 지지체 삼아 발코니 전체를 꽉 채우는 대형 용수철을 만들었다. 근처 어느 공장의 부품이었던 용수철이 튕겨나와 이 발코니에 조용히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이 작품은 성산패총 주변의 산단 풍경과 함께 볼 때 완전해진다. 햇빛에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스틸 너머로 ‘LG 전자’ ‘한화’ 같은 대기업 공장 로고들이 보일 때, 왜 ‘에어록’의 설치 장소가 하필 여기여야 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창원복합문화센터 동남운동장에 있는 정현의 ‘목전주’는 과거 콘크리트 전봇대 대신 쓰이던 나무 전봇대, ‘목전주’로 만든 작품이다. 작가는 2006년 작품을 만들며 한국전력에 목전주를 구할 수 있는지 문의했는데, 전국에서 유일하게 창원변전소에만 폐목전주가 남아있었다고 한다. 경기도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던 작품을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창원으로 옮겨왔다. 언젠가 창원에서 쓰였다 폐기된 목전주가 작품이 되어 다시 창원에 섰다.

성산아트홀 외관 유리벽에 만들어진 홍승혜의 <모던 타임즈>. 창원문화재단 제공

성산아트홀 외관 유리벽에 만들어진 홍승혜의 <모던 타임즈>. 창원문화재단 제공

성산아트홀은 외관부터 작품이다. 홍승혜는 산업화를 풍자한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에서 주인공이 낙하하는 모습을 아트홀 정문 유리창에 시트로 표현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가 있는 시간동안 유리창 시트로 인해 생기는 그림자까지가 작품에 포함된다. 홍승혜의 작품 바로 앞에는 신민의 ‘대천사’ 작품들이 서있다. 종이로 빚은 대천사는 가난한 노동자와 아이,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어디까지가 조각일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 많다. 아트홀에서 상영되는 남화연의 ‘과도한 열정’은 샤인머스켓, 체리, 석류를 만지고 뜯어 입에 넣어 씹은 뒤, 음식물 쓰레기로 처리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7분짜리 영상물이다. 대량생산, 대량폐기의 악순환을 과일을 통해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이마즈 케이의 ‘사테네의 문’은 배설을 하면 진주, 사기 같은 보물이 나오던 소녀를 살해한 마을 사람들을 지하의 여신 사테네가 벌한다는 인도네시아 농경신화를 작품으로 재현했다. 관람객은 철로 만든 문을 통해 작품 안으로 들어가 감상할 수 있다.

창원조각비엔날레는 2010년 열린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이 모태가 돼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조각 비엔날레다. 2012년부터 매 짝수 해마다 열리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16개국 86명(63팀)이 만든 177점의 작품이 전시됐다. 신작 수가 33점으로 적은 것은 아쉽다. 전시는 내달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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