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한 장’으로 채워진 집 한 채···오로지 ‘깊게 듣기’ 위하여

백승찬 선임기자

딥 리스닝 ‘타불라 라사: 침묵, 그 이전’

아르보 패르트의 기념비적 음반 ‘깊게 듣기’

딥 리스닝 ‘타불라 라사: 침묵, 그 이전’의 공간 구성. 관객은 빈 백에 자유롭게 앉아 고출력 스피커로 나오는 음악을 듣는다. 백승찬 기자

딥 리스닝 ‘타불라 라사: 침묵, 그 이전’의 공간 구성. 관객은 빈 백에 자유롭게 앉아 고출력 스피커로 나오는 음악을 듣는다. 백승찬 기자

에스토니아 출신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89)가 1984년 독일 레이블 ECM에서 내놓은 <Tabula Rasa>(타불라 라사·빈 서판)는 현대음악 역사에서 중요한 족적을 남긴 음반이다. 복잡하고 현란한 전자음악 실험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 현대음악 세계에서 미니멀리즘 방법론을 채택한 이 음반은 단순함과 영성의 가치를 다시 일깨웠다. 패르트는 “나는 한 음표가 아름답게 연주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한 음표, 혹은 조용한 박자, 혹은 한 순간의 침묵이 저를 깊이 위로한다”고 말했다.

<타불라 라사> 발매 40주년을 기념하는 독특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1일 4회, 회당 15명 안팎의 인원이 함께 공간을 이동하며 음반 수록곡을 ‘깊게 듣는’ 형식이다. 그래서 전시 제목도 <딥 리스닝 ‘타불라 라사: 침묵, 그 이전’>이다.

딥 리스닝 ‘타불라 라사: 침묵, 그 이전’의 한 공간. 이 공간에서는 오래된 카세트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다. 백승찬 기자

딥 리스닝 ‘타불라 라사: 침묵, 그 이전’의 한 공간. 이 공간에서는 오래된 카세트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다. 백승찬 기자

전시 장소는 가정집을 개조한 공간인 서울 ‘리빙룸 마이알레 이태원’이다. 거실, 침실, 부엌 등으로 추정되는 공간이 이어진다. 시각적 자극을 극소화해 음악에 집중하게 하려고 빈 백, 침대 등에 하얀 타이벡(합성섬유의 일종)을 깔았다. 창문과 천장에도 같은 타이벡을 둘렀다. 흰색과 회색으로 구성된 <타불라 라사> 음반 디자인과도 어울리는 실내 디자인이다.

관객은 공간을 옮겨 가며 음반 수록곡을 차례로 듣는다. 재생 방식과 매체도 각기 다르다. LP, CD, 카세트테이프, 디지털 스트리밍 등의 음원을 로파이, 하이파이 오디오로 듣는다. 디자인이 기괴하고 출력이 강력한 대형 뱅앤울룹슨 스피커, 출시된 지 50년 넘은 카세트 플레이어, 진공관 앰프를 물린 스피커도 있다. 벽에는 음반의 간략한 정보가 적힌 액자가 있다. 해설이 아닌 패르트나 프로듀서 만프레드 아이허의 직접 언급이 중심이다.

전시를 기획한 UNQP의 김현식씨는 “음악을 개인적으로 소비하는 시대, 음악을 같이 듣고 몰입해 깊게 이해하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27일까지.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4시 회차는 2만원, 오후 7시30분 회차는 5만원이다. 네이버예약에서 예매할 수 있다.

작곡가 아르보 페르트. ⓒECM Records

작곡가 아르보 페르트. ⓒECM Rec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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