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서양식 온실 속…100년 걸쳐 열매 맺은 이야기꽃

최민지 기자
[책과 삶] 창경궁 서양식 온실 속…100년 걸쳐 열매 맺은 이야기꽃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창비 | 420쪽 | 1만8000원

창경궁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여느 궁처럼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자 당시 동양 최대 규모 유리온실이었던 창경궁 대온실은 시대별로 다른 시선과 마주해야 했다. 한때는 근대를 상징하는 화려한 건축물이자 제국주의의 상징이었고 어느 시기에는 모두의 밤꽃놀이 장소가 됐다. 해방 뒤에는 일제 잔재를 품은, 청산의 대상이 됐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대온실은 말하자면 ‘생존 건물’인 셈이다. 아름답지만 아프고 그래서 처연하기도 한 이 공간에 수없이 많은 삶과 이야기가 숨어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창경궁 대온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역사 소설이다. 소설은 30대 여성 ‘영두’가 창경궁 대온실 보수공사의 백서를 기록하는 일을 맡게 되면서 시작된다. 강화군 석모도 출신인 그는 중학생 때인 2000년대 초 창경궁 담장을 따라 형성된 오래된 동네에서 하숙을 하며 유학한 경험이 있다. 대온실 백서 작업으로 오랜만에 창경궁을 찾은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을 아프게 했던 어떤 사건을 마주한다.

이야기는 100여년의 시간을 아우른다. 영두가 대온실 보수공사 과정을 기록하는 현재에서 출발해 20년 전 그의 중학생 시절,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덮친 시기 한 일본인이 대온실을 만드는 20세기 초를 부지런히 오간다. 세 개 시점이 교차하는 과정에서는 대온실은 물론 상처입은 마음의 아픔마저 복원된다.

<경애의 마음> <너무 한낮의 연애>의 김금희가 썼다. 김금희의 이야기에는 과거의 미숙함을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아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의 인물들 역시 그렇고, 그래서 모두 품위를 지킨다.

가을 바람과 무척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나뭇잎 하나, 꽃잎 하나에 대한 김금희의 묘사를 보고 있으면 책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대온실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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