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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사회주의 아래 ‘남녀평등’이 강조됐다는 중국에서도 수백년 가부장제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지 못한 것 같다. 9일 개봉한 영화 <내가 날 부를 때>는 중국에 잔존하는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의 현주소를 담아냈다. 이 영화가 <82년생 김지영>의 중국판이라는 수식은 그래서 생겼다.

중국 내 남아선호가 여전하다는 건 통계가 보여준다. 중국 당국이 올해 발표한 인구센서스 결과 3000만명이 넘는 결혼 적령기의 남성이 짝을 찾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아선호로 인한 ‘남초 현상’ 때문이다. 여성 100명당 남성 인구는 105.07명이었다. 이는 1979년부터 시행된 중국의 ‘계획생육정책(산아제한정책)’과 맞물려 있다. 중국은 지난 7월 정책 위반에 대한 처벌·벌금 등 불이익을 없애면서 산아제한정책을 사실상 폐지했다.

<내가 날 부를 때>의 주인공 안란(장쯔펑). 이 영화는 ‘중국판 82년생 김지영’에 비견된다. 제이씨엔터웍스·영화특별시SMC 제공

<내가 날 부를 때>의 주인공 안란(장쯔펑). 이 영화는 ‘중국판 82년생 김지영’에 비견된다. 제이씨엔터웍스·영화특별시SMC 제공

주인공 안란(장쯔펑)은 중국 내 남아선호와 가부장제 문화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로 그려진다. 이 이야기가 중국 관객 2300만명을 극장으로 불렀다. 영화 수입·배급사는 <내가 날 부를 때>가 중국의 2030세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젠더 이슈와 가족정책 등에 관한 사회적 토론을 촉발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연출과 각본은 1986년생 동갑내기 여성 인뤄신과 여우샤오잉이 각각 맡았다. 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인 감독은 지난 8일 경향신문 서면 인터뷰 답변을 통해 “안란 같은 여자아이에 대한 공감과 연민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했다.

안란의 부모는 둘째를 낳고자 했다. 아들을 원한다는 직접적 언급은 없었지만 한참 뒤에 생긴 안란의 동생은 아들이다. 부모는 ‘딸에게 장애가 있어 둘째를 낳길 희망합니다’라고 탄원하면서 안란은 어렸을 때부터 다리가 불편한 척을 해야 했다. 당국이 장애 여부를 확인하러 온 자리에서 안란은 하필 새 원피스를 입고 춤을 추고 있었다. 계획이 어그러지자 아버지는 안란을 때렸다. 안란은 의대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는 ‘여자는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며 의대 지원서를 안란 몰래 간호학과 지원서로 바꿔버렸다. 대학에 간 안란은 집과 왕래를 끊다시피하고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 살았다. 간호사 일을 하면서 베이징으로 대학원 공부를 하러 떠날 꿈을 꿨다.

그러던 어느 날 양친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스무살 가까이 어린 동생 안쯔헝(김요원)이 덜컥 안란의 삶에 끼어든다. 그와 동시에 안란이 ‘여자라서 느끼는’ 부당한 기분은 점점 커진다. 친척들은 ‘네가 누나이니 동생을 거둬야 한다’며 “아들이 잘 커야 집을 이끌지”라고 충고한다. 모두가 안란의 학업계획에는 무관심한 듯하다. “쟤를 키우면 내 인생은 끝나요”라고 항변하는 안란은 어떻게든 동생을 다른 집에 입양 보내려 한다.

미래를 약속한 안란의 남자친구는 베이징으로 떠나자는 안란의 제안에 우물쭈물한다. 제이씨엔터웍스·영화특별시SMC 제공

미래를 약속한 안란의 남자친구는 베이징으로 떠나자는 안란의 제안에 우물쭈물한다. 제이씨엔터웍스·영화특별시SMC 제공

그런 한편 미래를 약속한 남자친구는 같이 베이징으로 떠나자는 안란 앞에서 우물쭈물한다. 남자친구의 부모는 안란이 결혼 후 당연히 자신들과 같이 살 것이라고 믿고 있다. 집을 리모델링해 “아이 방도 만들어놨다”며 티 없이 웃는다. 베이징 계획을 확실히 전하라는 안란의 종용에 남자친구는 “동생 문제부터 해결하자”며 물러선다.

영화의 원제는 ‘나의 누나(我的姐姐)’다. 안란과 안쯔헝이 결국은 혈육의 정에 눈을 뜨게 될 것이라는 걸 원제에서 짐작할 수 있다. 남매는 서로를 밀어냈지만, 입양이 결정되기 전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가까워지고 애틋해진다. “내 인생에 너만 있는 게 아니야”라는 안란에게 안쯔헝은 “난 누나밖에 없어. 누나만 있으면 돼”라는 말을 돌려준다. 안란의 삶을 중심으로 여성 차별의 현실을 보여주다가 결말은 가족드라마의 모습을 띠는 듯도 하다.

남매가 서로 정드는 과정에서 다소 신파적 묘사가 등장한다. 안쯔헝의 동심, 누나를 향한 마음을 보여주는 장면 등에서 클리셰도 보인다. 장쯔펑의 설득력 있는 연기와 영상미가 영화의 아쉬운 점들을 보완해준다. 무엇보다 중국사회에 젠더 문제 논의를 촉발했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작품일 것이다.

남매가 서로 정드는 과정에서 다소 신파적 묘사가 등장한다. 안쯔헝의 동심, 누나를 향한 마음을 보여주는 장면 등에서 클리셰도 보인다. 장쯔펑의 설득력 있는 연기와 영상미가 영화의 아쉬운 점들을 보완해준다.제이씨엔터웍스·영화특별시SMC 제공

남매가 서로 정드는 과정에서 다소 신파적 묘사가 등장한다. 안쯔헝의 동심, 누나를 향한 마음을 보여주는 장면 등에서 클리셰도 보인다. 장쯔펑의 설득력 있는 연기와 영상미가 영화의 아쉬운 점들을 보완해준다.제이씨엔터웍스·영화특별시SMC 제공

이 부분에 대해 인 감독에게 직접 듣고자 서면 질문지를 보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질문들이 지워진 채 답변이 돌아왔다. 영화가 이끌어낸 중국 내 논의들, 젠더 이슈의 현주소, 2030 여성들의 생각, 성별 간 갈등 유무 등에 관한 질문에는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인 감독은 “외동딸로 자랐고, 안란과 같은 경험은 없었다”며 “대신 안란 같은 여성을 많이 목격했고, 이들이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는 상황은 매우 비슷했다”고 밝혔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대해서는 “매우 강력하고 현실적이며 솔직한 영화”라고 평가했다. 그는 “영화를 볼 때는 가족을 부양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동시에 영화인으로 커리어를 계획하고 있던 때”라며 “다행히 난 가족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서 하고 싶은 영화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난 감정이 매우 미묘했다”고 했다.


유경선 기자 lightsun@khan.kr


📌 '82년생 김지영' 일본에 이어 중국에서도 '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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