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은 약자 위한 정치에 삶을 갈아넣은 분" 다큐 '노회찬 6411' 대담

백승찬 기자
다큐멘터리 <노회찬 6411>의 한 장면. 고인은 카메라 앞에 서면 언제나 웃는 대중정치인이었다.   | 명필름 제공

다큐멘터리 <노회찬 6411>의 한 장면. 고인은 카메라 앞에 서면 언제나 웃는 대중정치인이었다. | 명필름 제공

노회찬 의원은 2018년 7월23일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소속 정당인 정의당에 남긴 유서에는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으로부터 4000만원을 받고 정상적인 후원 절차를 밟지 않은 일을 두고 ‘어리석은 선택, 부끄러운 판단’이었다고 적었다.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거우며 법정형,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고도 했다.

생전 고인을 잘 알고 지낸 최봉근 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활동가는 노회찬을 “아는 것과 하는 것, 겉과 속이 일치하는 드문 사람”이라 평가한 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불일치”가 그를 막다른 선택으로 몰고갔다고 봤다.

<노회찬 6411>(감독 민환기)은 노회찬의 삶과 정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올해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시네마프로젝트로 선정돼 선보였고, 14일 개봉한다. 노회찬이 인천의 용접공으로 출발해 진보정치의 대중화를 꿈꾸다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까지를 그렸다.

부인 김지선씨, 심상정 의원, 박권호 전 보좌관을 비롯해 43명, 200시간의 인터뷰를 재구성했다.

제작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와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이 최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영화와 노회찬에 대해 대담했다.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다큐멘터리 <노회찬6411> 제작자 심재명 명필름 대표(사진 왼쪽)와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이 대담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다큐멘터리 <노회찬6411> 제작자 심재명 명필름 대표(사진 왼쪽)와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이 대담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 26년간 영화 42편을 만들어온 명필름의 첫 다큐멘터리다. 제작 동기가 궁금하다.

심재명 = “외국에는 정치인 다큐멘터리가 많은데 한국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다큐 말고는 없었다.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1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에 완성됐다.”

조돈문 = “의도적으로 노회찬 추모행사의 규모를 줄이던 참이었다. 1주기 때는 묘소에서 추모제를 하고, 여러 문화행사, 퍼포먼스도 했는데 2주기, 3주기로 갈수록 줄였다. 추모하는 마음이 있으면 됐지 행사를 크게 하는 것이 잘하는 일인가 하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문서 아카이빙은 어느 정도 진행됐는데, 영상 아카이빙은 손도 못 대고 있었다. 노회찬은 글도 글이지만, 현장 발언의 생동감이 있다. 명필름에서 먼저 다큐멘터리 제안을 해와서 고마웠다. 다만 유족의 심정을 우려했다. 혹시 노회찬의 죽음, 유서에 초점을 맞춰 ‘눈물 짜내기’ 하거나, 선정적으로 소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있었다.”

-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어느 곳이었나.

조돈문 = “노회찬의 ‘6411 연설’을 듣고 말을 잘한다고 느낀 사람이 많겠지만, 그건 노회찬의 삶에서 나온 말이었다. 노회찬이 이동장애인, 시각장애인 등을 위해 싸우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정치인들은 선거 앞두고 사진 찍은 뒤 잊지만, 노회찬은 꾸준히 약자를 위한 정책을 만들고 간담회를 했다. 그는 진보정치를 위해 자기 삶을 갈아넣은 사람이다.”

심재명 = “노회찬의 ‘사이다 발언’은 단순한 재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랜 숙고 끝에 평범한 언어로 핵심을 꿰뚫어야 할 수 있는 말이다. 그의 말 뒤에는 깊은 고민, 행동, 실천이 있었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고 상처 입히는 말이 아니면서도 대중적 언어를 구사했다. 지금 봐도 굉장히 미래적인 정치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 <노회찬 6411>의 한 장면. 부인 김지선씨는 음성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 명필름 제공

다큐멘터리 <노회찬 6411>의 한 장면. 부인 김지선씨는 음성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 명필름 제공

- 영화는 노회찬이 가진 대중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도 잘 그려냈다. 진보정치사에서 찾기 힘든 캐릭터였다.

조돈문 = “진보정치에는 평론가는 많고 전략가는 부족하다. 일이 안 되면 외부에서 원인을 찾고 남 탓을 한다. 노회찬은 현실적이면서 실천적인 전략가였다. 삼성 X파일을 폭로할 때는 의원직 상실 가능성도 내부적으로 검토했는데, 노회찬은 결단하고 밀어붙였다. 2010년 한명숙, 오세훈 후보와 서울시장 선거에 나섰을 때 사퇴 여론에도 혼자 고민하고 버텨냈다.”

심재명 = “노회찬은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남자였다. ‘형님’ 문화에 빠지지도 않았다. 페미니스트 입장으로 봐도 남다른 남성이었다.”

- 조 이사장은 2000년부터 노회찬을 알고 지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

조돈문 = “굉장히 수줍고 낯을 가렸다. 김밥만 먹고 다니고 옷은 단벌이었다. 그러면서도 TV에만 나오면 밝게 웃었다. 평소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말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진보대통합 과정에서 온갖 수모를 겪었다. 나는 뒤풀이 자리에서 화가 나 온갖 쌍욕을 했는데, 노회찬이 오히려 나를 위로해줬다.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었는지 모르겠다.”

심재명 = “요즘 유행하는 MBTI로 치면 I(내향)로 시작하는 사람 아니었을까. 과거 영화계에서 대규모로 민주노동당 지지선언을 하기도 했지만, 노회찬을 개인적으로 안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

- 영화는 노회찬의 죽음 전후 상황을 얼버무리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조돈문 = “스웨덴에 연구차 출국한 직후 소식을 들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대체하기 어려운 사람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의 결단, 선택을 존중하지만, 그런 고민이 있었다면 왜 같이 풀어내지 못했을까. 희망만 나눌 것이 아니라 고통도 함께 나누는 것이 중요한데, 노회찬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유서에서도 문제를 개인적인 것으로 만들어 진보정치를 살리려 했다. 왜 혼자 책임져야 했을까.”

심재명 =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미래정치인이 될 수 있었는데 원망스럽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도 그렇고, 세상 모든 죽음에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목숨을 부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의 각별한 죽음이 던지는 의미가 중요하다. 하루아침에 탁월한 영화제작자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한 명의 괜찮은 정치인이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진보진영이 제 2, 3의 노회찬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스스로 되겠다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Today`s HOT
400여년 역사 옛 덴마크 증권거래소 화재 APC 주변에 모인 이스라엘 군인들 파리 올림픽 성화 채화 리허설 형사재판 출석한 트럼프
리투아니아에 만개한 벚꽃 폭우 내린 파키스탄 페샤와르
다시 북부로 가자 호주 흉기 난동 희생자 추모하는 꽃다발
폴란드 임신중지 합법화 반대 시위 이란 미사일 요격하는 이스라엘 아이언돔 세계 1위 셰플러 2년만에 정상 탈환 태양절, 김일성 탄생 112주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