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아이돌, 현 행사 가수...최희서가 말하는 가족의 의미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백승찬 기자
배우 최희서 | 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최희서 | 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일관계가 경색된 시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감독 이시이 유야)의 제작과정은 의미심장하다. 일본 감독이 일본 자본으로 찍은 일본 영화다. 주연은 일본 배우인데, 한국 배우도 거의 동등한 분량으로 출연한다. 촬영지는 전부 한국이다.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지난해 2~3월 서울과 강원도에서 촬영했다.

최희서(35)는 일본 감독·배우와 한국 배우의 가교 역할을 했다. <박열>(2017)에서 보여준 일본어 실력 덕분이다. 감독이 쓴 시나리오의 뉘앙스를 최대한 살려 번역한 뒤 동료들에게 전했고, 배우들은 저마다 자신의 말투에 맞게 고쳤다. 감독이 꼭 표현하고 싶어한 대사는 어색하더라도 직역했다. 극중 김민재의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예를 들면 사랑 같은”이라는 대사가 한 예다. 지난 25일 화상으로 만난 최희서는 “이시이 감독의 시나리오는 일본어로 봐도 극적이고 문어체일 때가 많아, 그 색깔을 지켜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암으로 아내를 잃은 소설가 츠요시(이케마쓰 소스케)와 어린 아들은 사업으로 잘나간다는 형 토오루(오다기리 조)를 찾아 서울에 도착한다. 그러나 형은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해 무일푼 신세다. 형은 강원도에 새 사업 아이템이 있다며 동행을 제안한다. 이들은 강원도로 가는 기차에서 한국인 3남매를 만난다. 착하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오빠 정우(김민재), 한때 아이돌이었지만 지금은 소규모 행사 가수로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둘째 솔(최희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막내 봄(김예은)이다. 두 나라 가족은 우연한 동행을 시작한다.

영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의 한 장면. 한국과 일본의 가족은 강릉의 바닷가에 도착한다.      디오시네마 제공

영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의 한 장면. 한국과 일본의 가족은 강릉의 바닷가에 도착한다.   디오시네마 제공

영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의 한 장면. 솔(최희서)은 한때 아이돌이었지만, 지금은 소형 이벤트 가수로 생계를 유지한다.      디오시네마 제공

영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의 한 장면. 솔(최희서)은 한때 아이돌이었지만, 지금은 소형 이벤트 가수로 생계를 유지한다.   디오시네마 제공

10여년 경력 동안 수많은 영화, 드라마, 연극에 출연했고 최근엔 단편(<언프레임드> 중 ‘반디’) 연출까지 한 최희서지만, 이번 영화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일단 현장에 촬영 분량을 확인하기 위한 모니터가 없었다. 감독은 배우의 연기를 눈으로 보고 괜찮다 싶으면 ‘오케이’ 사인을 냈다. 최희서는 “필름 시대 촬영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모니터로 자가진단을 하지 않고 연기하니 오랜만에 연극을 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일본 배우들의 성실성도 인상 깊었다. 일본에서 스타급인 두 배우는 스스럼 없이 동료를 배려하고 팀 전체를 위해 연기했다. 자신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데도 휴대폰 한 번 쳐다보지 않고 현장을 지켰다. 일본 배우들에게는 늦겨울 강원도 추위가 매서웠겠지만, 손에 핫팩을 든 채 한국 동료들을 응원했다. 최희서는 “경기 나가기 전 벤치에서 동료 선수를 응원하는 느낌이었다. 이후 작품에서 연기하고 연출할 때도 그 모습을 기억했다”고 회고했다.

영화는 오해하고 싸우고 미워하면서도 결국은 함께 밥을 먹는 가족의 의미를 탐구한다. 최희서는 이시이 감독이 한국 음식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강원도에서 짬뽕순두부를, 숙소에서 프로듀서인 박정범 감독과 냉동만두를 먹기도 했다. 밥을 같이 먹는 ‘가족’은 국경 너머로 확장된다. 츠요시 형제와 솔 3남매는 여러 차례 밥을 같이 먹는다. 엔딩 역시 식사 장면이다. 메뉴가 특이하다. 누군가는 컵라면, 누군가는 흰 쌀밥에 스팸, 누군가는 불고기 전골을 먹는다. 각자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서, 가끔 다른 사람의 주력 음식을 집어먹기도 한다. 한 테이블에 놓기 어색한 메뉴지만, 모두들 정말 맛있고 사이좋게 먹는다.

극중 정우는 조금 술에 취해 한국인과 일본인은 서로 미워해서 사귈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후 영화는 두 나라 가족이 서로 이해하고 친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대본 리딩을 하던 어느 날,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소식이 전해졌다.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1인치 자막의 벽을 넘으면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영화를 만들어 개봉하는 건 그 나라 관객을 만나러 가는 일입니다. 외교적으로는 여러 일이 있었지만, 문화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늘 소통하고 싶어했습니다.” 28일 개봉.

배우 최희서    | 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최희서  | 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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