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순환원리에 순응할 것인가···우주의 신화 다시 쓰는 마블 새 영화 ‘이터널스’

백승찬 기자

·마동석, 앤젤리나 졸리 등 10명의 영웅 출연

·‘노매드랜드’로 아카데미상 휩쓴 클로이 자오 연출

<이터널스>는 지금까지의 그 어떤 마블 영화와도 다르다. 앞선 마블 세계와 연관성이 있고,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며, 액션 장면이 있다는 점에선 분명 마블 영화지만, 마치 다른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처럼 낯설다. <아이언맨> 시리즈, 혹은 지난 8월 개봉해 먼저 ‘마블 페이즈 4’로 소개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경쾌함을 사랑하는 기존 마블 팬이라면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 반면 마블 영화들의 반복된 구도와 인물에 질린 관객은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이터널스>는 악당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영웅담을 넘어선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타노스가 전 우주의 생명체 절반을 죽였다는 설정에서도 마블 세계는 우주로 뻗어나갔지만, <이터널스>의 스케일은 차원이 다르다. <이터널스>는 지구 차원을 넘어 우주의 신화를 다시 쓴다.

<이터널스>의 등장인물들. 왼쪽부터 킨고(쿠마일 난지아니), 마카리(로런 리들로프), 길가메시(마동석), 테나(앤젤리나 졸리), 이카리스(리처드 매든), 에이잭(셀마 헤이엑), 세르시(젬마 찬), 스프라이트(리아 맥휴), 파스토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드루이그(배리 케오간).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이터널스>의 등장인물들. 왼쪽부터 킨고(쿠마일 난지아니), 마카리(로런 리들로프), 길가메시(마동석), 테나(앤젤리나 졸리), 이카리스(리처드 매든), 에이잭(셀마 헤이엑), 세르시(젬마 찬), 스프라이트(리아 맥휴), 파스토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드루이그(배리 케오간).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이터널스>의 실질적인 주연 이카리스(왼쪽)와 세르시는 수천년에 걸쳐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 연인이다.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이터널스>의 실질적인 주연 이카리스(왼쪽)와 세르시는 수천년에 걸쳐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 연인이다.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이터널스>는 도입부에 우주의 초월적 존재 셀레스트리얼을 소개한다. 지적 생명체를 먹고 사는 데비언츠라는 괴물이 나타나 지구인들을 괴롭히자, 셀레스트리얼은 10명의 이터널스를 지구에 파견한다. 기원전 5000년 지구에 처음 나타난 이터널스는 데비언츠에 맞선다. 이터널스는 인간과 어울려 살면서 바퀴, 쟁기 등의 기술을 전수해 문명 발전을 이끈다. 모든 데비언츠를 물리친 이터널스는 고향 행성 올림피아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각자 조용히 살아간다. 사라진줄 알았던 데비언츠가 현대에 들어 다시 나타나자 이터널스도 하나둘씩 모인다.

각 캐릭터의 사연을 독립된 영화로 소개한 뒤 이를 <어벤져스> 시리즈로 합쳐낸 앞선 마블 영화들과 달리, <이터널스>는 생소한 우주 창조 신화를 설정하면서 시작한다. 낯설고 거대한 이야기이기에 소화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세계관 설정이 끝난 뒤에도 이야기는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데비언츠라는 적이 있긴 하지만, <이터널스>에서 적의 존재는 맥거핀에 가깝다. 이 영화는 이터널스와 데비언츠의 격렬한 대결 액션에 집중하기보다는, 이터널스 멤버들이 모여 각기 달라진 세계관을 논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중점을 둔다. 산 것은 죽고 죽은 것은 사는 만물의 순환원리에 순응할 것인가, 지금 옆에 살아있는 생명을 연민할 것인가. 이성의 원칙을 고수할 것인가, 감정의 흐름에 몸을 맡길 것인가. 지루한 불멸에 만족할 것인가, 고통과 쾌락이 뒤섞인 필멸을 받아들일 것인가. 하나씩 따져보면 매우 철학적인 주제들로 이터널스 멤버들은 충돌한다.

인간 틈에 섞여 살아가는 이터널스 멤버들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인간 틈에 섞여 살아가는 이터널스 멤버들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이터널스>에서 강한 완력을 가진 길가메시로 출연한 마동석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이터널스>에서 강한 완력을 가진 길가메시로 출연한 마동석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10명의 이터널스 멤버들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졌다. 누군가는 인간을 사랑하고, 누군가는 환멸한다. 누군가는 조직의 명에 따르고, 누군가는 반항한다. 한 영화에 소개하기에는 다소 많은 인물이지만, 역할이 겹치지 않고 개성이 뚜렷하다. 인종, 성 정체성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세심하게 조율돼 있다. 한국(마동석), 파키스탄(쿠마일 난지아니), 멕시코(셀마 헤이엑), 미국(앤절리나 졸리) 등 다양한 장소에서 태어난 배우들이 모였다. 실제 청각장애인인 배우 로런 리들로프는 마블 최초의 장애인 슈퍼히어로로 등장했다. 졸리가 연기한 테나는 일종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듯 묘사됐다. 위대한 발명가인 파스토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는 동성 연인과 아이를 가진 가정을 꾸린 것으로 설정됐다. 파스토스는 가벼운 키스신도 선보인다. 이토록 다양한 정체성의 인물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의식한 듯 억지로 끼워맞춰진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그려낸 것은 <이터널스>의 성취다.

10명의 이터널스 중 중심 인물은 물질을 변환시키는 능력을 가진 세르시다. 싸움으로 적을 이기는 전사가 아니라 아군을 방어하는 마법사 유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에서도 <이터널스>의 특징이 드러난다. 중국계 영국인인 젬마 찬이 관세음보살 같은 연민을 가진 세르시를 인상적으로 연기했다. 올해 오스카 시상식에서 <노매드랜드>로 작품상, 감독상 등을 받은 중국 여성 감독 클로이 자오가 연출했다. 상영시간 155분, 11월 3일 개봉. 12세 관람가.

영화 <이터널스>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이터널스>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Today`s HOT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황폐해진 칸 유니스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